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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니면 맘몬 - 정수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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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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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기 3과 하나님 아니면 맘몬 - 정수희 목사

기억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Intro
오늘 제목이 ‘하나님 아니면 맘몬’이다. 하나님은 알겠는데, 맘몬이라는 것은 뭘까? 마 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재물’이 바로 헬라어로 ‘맘모나스’이다. ‘맘모나스’는 아람어 ‘마몬’에서 온 것인데, 일반적으로 재물이나 재산, 혹은 이 땅에서의 부를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부정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재물 자체라기보다는 ‘재물을 섬기는’(마6:24) 행위이다. 여기 ‘섬기다’라는 말은 ‘종이 되다, 복종하다’라는 뜻이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재물이 필요 없다거나 재물을 멀리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재물의 종이 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럼 과연 우리는 어떻게 재물의 종이 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청지기답게 재물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오늘은 바로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일요일 : 창조주이신 그리스도

우리는 종종 물질이나 재물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마치 물질 자체가 죄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물질’ 자체에 대한 그 어떤 부정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생각은 물질세계와 관념세계를 구분하는 플라톤 철학이나 물질적인 것은 배격하고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마니교의 가르침과 상통한다. 반면에 성경은 하나님을 모든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로 묘사한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창조된 만물들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4,10,12,18,21,25,31)라고 말한다. 들에 핀 꽃이나 나무, 하늘의 해와 달과 별,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들이었다. 이것이 ‘물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은 그분의 능력과 영광을 선포하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소망, 20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 사업 가운데 나타나셨다. 하늘을 펴시고 땅의 기초를 세우신 분은 그리스도이셨다... 이 땅을 아름다움으로 채우시고 공중을 노래로 채우신 분도 그분이시다. 그는 땅과 공중과 하늘에 있는 모든 만물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기별을 기록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그 속에 아버지의 사랑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인류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창조주의 사랑을 볼 수 있다. 단지 성경이 말하는 것은 물질 자체의 악함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마음, 재물을 숭배하는 마음, 다시 말해 맘몬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의  해악성이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의 핵심은 “섬김”이다. 하나님과 재물 중에 어느 편을 섬길 것이냐가 문제의 본질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섬기며 살게 되어 있다. ‘섬긴다’는 말은 ‘종이 된다’는 뜻이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되든지 아니면 재물의 종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다. 이것이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이다.

재물의 종, 돈의 노예. 우리는 그 결말이 어떠한지 수도 없이 보아 왔다. 믈질을 섬기며 사는 삶의 끝이 얼마나 비참한지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란 그분이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삶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다 이방인들이, 다시 말해 맘몬을 섬기는 자들이 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창조주로 섬기는 자들이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마 6:33이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과 재물을 섬기는 자들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을 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재물을 섬기는 자들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구한다. 반면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맨날 손가락만 빨고 산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 다시 말해 재물을 섬기는 자들이 구하던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삶이 풍족할 수 있는 이유이다.

결국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이다. 재물을 섬기는 자들은 물질을 추구한다. 그리고 실재로 그들은 많은 재물을 누리며 산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물질은 결코 신앙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자들에게 주시는 결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합 3:17)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여호와 그분 자신이기 때문이다.

월요일 :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마 19장에 보면 한 청년과 예수님과의 대화가 나온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라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에 대해 묻는 청년에게 먼저 ‘선한 이’에 대해 말씀하신다.

(마 19: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그 후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을 다 지켰다고 하자 이번에는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는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다. 자,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마 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 19: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 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제자들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왜냐면 당시 ‘부함’은 ‘축복’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재물이 많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부자가 천국에 못가면 도대체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제자들이 묻는다. 25절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이 때 예수님은 그에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대답하셨다. 이 대화를 잘 보라. 지금 ‘누가 구원을 얻는가?’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누가 구원을 하는가’를 말씀하셨다. ‘누가 구원을 얻는가’라는 질문은 처음 부자 청년이 한 질문과 같은 질문이다.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 대신 선한 이’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누가 구원을 얻는가?’라는 질문에 ‘누가 구원을 하는가?’로 대답하신 것이다. 결국 이것이 예수님과 부자청년 간의 대화의 핵심이다.

자, 그럼 여기서 ‘재물’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과연 재물의 많고 적음이 구원에 영향을 줄까? 그런 것 같다. 예수님께서도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마 19:24) 쉽다고 말씀하셨고, 부자청년도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마 19:22)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말은 가난한 사람이 천국에 가기가 더 유리하다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말씀은 우리의 재물과 영생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재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 여기 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청년에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하늘에서’라는 말은 ‘하늘 안에’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약속된 보화는 이 땅에서 누릴 보화가 아니라 하늘에서 누릴 보화를 의미한다. 그러자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갔’다. 여기서 말하는 재물은 땅의 재물이다. 결국 이 청년이 돌아간 것은 하늘의 보화보다 땅의 재물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예수를 떠나게 만든 원인이다.

정리하면 이날 예수님은 ‘선한 일’에 대해 묻는 청년에게 ‘선한 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누가 구원을 얻는가’라는 질문에 ‘누가 구원을 하는가’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재물은 구원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재물의 많고 적음 자체가 구원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만약 재물이 많은 것이 구원에 장애가 된다면 아브라함도, 욥도, 아리마대 요셉도 다 구원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지 문제는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하나님보다 맘몬을, 하늘의 보화보다 땅의 재물을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떠나게 만드는 이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물질에 대한 애정을 버리고 오히려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육신을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물질에 대한 사랑으로 영생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길이다.


화요일 : 구속주이신 그리스도

지난 일요일 소지에서는 ‘창조주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신 이유는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내 삶의 주인으로 섬기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내 삶의 주인이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속주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인간의 구원을 ‘거래’로 묘사하기도 한다. 인류는 죄로 인해 죽음이라는 빚을 졌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 빚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 없는 하나님이 그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신 것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여기 ‘속량’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헬라어로 ‘아폴뤼트로시스’인데, 그 뜻은 ‘몸값을 받고 놓아주다’이다. 이것은 노예가 된 사람을 위해 누군가가 속전을 지불하고 그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이 단어를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했다. 예를 들어 롬 3:24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라고 할 때, ‘구속’이 바로 ‘아폴뤼트로시스’이다. 또 골 1:14에서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할 때 속량도 이 단어고, 고전 1:30에서 “예수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라고 할 때 ‘구속함’ 역시 ‘아폴뤼트로시스’이다. 이처럼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신 속전으로 설명한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지불하신 것이다. 인류의 구원을 속전을 통한 거래로 묘사한 이유는 거기에 ‘가치’의 문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거래를 할 때, 다시 말해 내가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을 때, 거기에는 반드시 가치의 개념이 들어 있다. 사람이 거래를 한다는 말은 내가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얻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내가 핸드폰을 30만원 주고 거래를 했다는 말은 나에게 있어서 핸드폰은 30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 없는 것을 위해 거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속전을 지불하시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어떤 가치를 위해 그분은 십자가를 지신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인류의 구원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그것을 지불하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님께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우리의 영생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오히려 세상의 재물을 위해 영생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은 우리의 영생을 위해 온 하늘을 포기하셨건만, 우리는 그깟 잠시 있다 사라질 것들을 위해 영원한 생명을 뒤로 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느 유치원생 아이가 집에서 우연히 부모님의 결혼반지를 발견했다. 물론 이 아이는 그게 금인지, 은인지, 결혼반지인지 아니면 시장에서 파는 장난감인지 알지 못한다. 근데 이 아이가 그걸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는 지나가던 사람이 아이에게 500원 줄테니까 반지와 바꾸자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이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오백원을 받고 금반지를 건낸다. 왜냐면 그 아이는 그 반지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에게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을 수 있는 500원이 더 가치있게 보였다.

적용
어쩌면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사단은 우리에게 주어진 영생을 빼앗기 위해 온갖 세상의 것들로 유혹한다. 하지만 그 영생이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이 치러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너무도 쉽게 영생을 세상의 것들과 바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금반지를 500원에 얼른 바꿔버린 아이처럼 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약속된 영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 그 십자가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 있다 사라질 세상의 재물과 영생을 바꾸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수요일 : 질투하시는 하나님

성경은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이지만, 거기에는 분명 인간의 언어로 다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언어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의 결과이기 때문에 언어 자체가 그 사고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분이시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하나님은 언제나 그 이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인간 이성의 한계가 있음과 동시에 그 생각을 담아내는 인간의 언어의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랑이다’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인간의 언어에 갇히게 된다. 물론 사랑이라는 개념이 하나님의 품성의 일부분을 나타낼 수는 있지만, 그 단어가 하나님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수요일 소지에서 나오는 ‘질투’라는 단어 때문이다. 성경은 분명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인간의 질투와 같은 질투’를 하는 분으로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을 그렇게 이해할 때 하나님의 품성 중에 너무도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된다.

‘질투하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주로 ‘우상숭배’의 문맥에서 등장한다. 예를 들어 출 20:5에서 ‘질투하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은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섬기지 말라’는 문맥 속에서 등장한다. 또 출 34:14에도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고 하여 ‘질투’를 ‘다른 신에 대한 숭배’의 문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이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묘사하는 것은 단순히 상대를 부러워하거니 시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전 13장에서는 ‘질투와 시기’는 참된 사랑의 속성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질투와 그분의 품성인 사랑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질투는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열망하신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온 마음을 드리기 원하신다. 이것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질투하는 하나님’과 청지기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청지기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바로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청지기’하면 하나님께 재물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재능이나 노력을 드리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이 전제되어 있다. 사 1장에 보면 백성들은 날마다 제물을 바치고, 성전을 찾고, 봉사를 하지만 ‘마음이 내게서 멀도다’라며 탄식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뭘까? 그분은 우리의 ‘사랑을 열망하시기 때문’이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 교훈은 바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사랑을 열망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다른 우상들에게 쏠릴 때, 하나님은 질투하신다. 재물의 우상을 따르고, 성적과 취업의 우상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하나님은 질투하신다. 자식 대학 가는 일에, 승진하는 일에, 주식이나 펀드로 돈 모으는 일에 몰두해 있을 때 하나님은 질투하신다. 청지기란 단순히 십일금 잘 드리는 사람이 아니다. 일주일 중 하루를 구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핵심은 바로 우리의 사랑이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열망하신다. 그것을 드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합당한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기억하자.


목요일 : 진정한 소유권

우리는 두 가지를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 첫째는 창조요, 둘째는 구속이다. 그분은 우리를 만드신 자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분이시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자로서 우리는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나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고후 5:15)”살아야 한다. 이것이 자신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자들의 삶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소유권’은 우리가 하나의 물질로서 하나님께 속해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적이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능동성’에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나의 물질로서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면 거기에는 그 어떤 능동성도 없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고 할 때 그 소유는 단순히 물질적이고 기계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관계적이며, 거기에는 우리의 능동적인 선택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것을 내가 거절할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지만, 그것은 사랑의 관계로 연합되었을 때에만 의미를 갖게 된다. 내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경험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청지기가 되는 비결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소유권을 능동적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사람.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내 삶을 온전히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청지기이다. 결국 청지기란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참된 청지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마무리
성경은 물질이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물질을 섬기고, 재물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가르친다. 반대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그분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 그것이 참된 청지기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나타내신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사랑을 열망하신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창조로, 구속으로 우리의 주인이 되신 것은 우리의 능동적인 사랑을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맘몬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하되, 진심을 다해,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청지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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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01-1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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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76 *태초부터 복주신 안식일에 창조주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들의 가정에 충만하소서!* 댓글[1] 정무흠 2018-09-21 57 1
47175 예수님의 5병2어의 기적을 부인하는 안식교 마귀 XX들. 복습시간 2018-09-21 55 1
47174 숯가루 천연치료 외용법 - 이정라 영양사 댓글[1] 정무흠 2018-09-21 67 1
47173 답변글 이제는 하다하다 숯가루 천연치료법으로 SDA 광고하시는가? 성프란시스코 2018-09-21 62 0
47172 마귀 사탄 루시퍼보다 더 악질적이고 사악한 에혀 복습시간 정신병 또라이 샊기 ㅎㅎㅎ 인기글 아리랑고개 2018-09-21 128 3
47171 다미선교회보다 더 악질적인 안식교 마귀 XX들. 복습시간 2018-09-21 56 1
47170 오늘도 안식교 마귀는 당신의 지갑을 노립니다. (안식교 내부자 고발) 복습시간 2018-09-21 61 1
47169 CBS기독교방송이 밝히는 이단의 실체 - 안식교(SDA), 안상홍(장길자), 신천지, JMS 등 복습시간 2018-09-21 51 0
47168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일요일 주일의 등장!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후업령! 댓글[2] 정무흠 2018-09-21 66 0
47167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마 15:3)! 십계명 위조는 참람죄!!! 댓글[2] 정무흠 2018-09-21 63 0
47166 중국 가정교회들의 외침, “더 이상은 안 된다” 구월 2018-09-20 58 0
47165 복습시간 에혀 요 놈은 한 놈인데 에혀 로그인해서 지가 쓴 복습시간에 추천을 누르네 미친놈 ㅋㅋㅋ 인기글 아리랑고개 2018-09-20 100 2
47164 에혀 복습시간 이 미친마귀새끼 사탄 루시퍼놈아 사기는 네 놈이 1년 365일 밤낮 치고 있노라 ㅎㅎ 인기글 아리랑고개 2018-09-20 116 2
47163 1844년 10월 22일 예수가 재림한다고 사기친 안식교 마귀XX들이 너무 뻔뻔하네요. 복습시간 2018-09-20 7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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