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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가는 여정 - 정수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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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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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기 13과 로마로 가는 여정

기억절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행 27:24)

Intro
바울은 이제 드디어 로마로 떠나게 되었다. 그가 그토록 가기 원했던 로마를 이제야 가게된 것이다. 물론 자유인의 몸이 아닌 죄인의 신분이었지만, 바울에게는 그게 큰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황이 아니라 복음 전파였기 때문이다. 그가 로마에 복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죄인의 신분이든, 자유인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약 2년간 가이사랴에 구금되었던 바울은 마침내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떠났고, 그 여정 가운데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다. 오늘은 이번 기 마지막과로서 바울이 로마로 가는 여정 가운데 일어난 일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인도하셨으며,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일요일 : 로마로 가는 항해
가이사랴에서 죄인의 신분으로 약 2년간 구금되었던 바울은 자신의 재판을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서 그는 이제 로마로 이송되어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울에게 더 유리할지, 아니면 불리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신분으로 로마로 향하는 바울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셨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죄인을 실어 나르는 배에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함께 승선했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비록 죄인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도울 종들을 데리고 다닐 수 있었다. 결국 이 배에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함께 탄 것은 바울의 종의 신분으로 오른 것이다. 죄수들이 가득한 그 배에 탈 이유가 전혀 없는 두 사람이 오히려 죄인의 종으로서 그를 섬기기 위해 한 배에 오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골 4:10에서 아리스다고를 ‘함께 갇힌 자’라고 표현했다. 죄 없는 자가 죄인을 섬기기 위해 죄인의 종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떠올리게 한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의 종으로 오셔서, 도리어 죄인들을 섬기시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신 그 모습을 우리는 누가와 아리스다고를 통해 다시 한번 보게 된다. 결국 이렇게 해서 바울은 사랑하는 두 명의 동역자와 함께 로마로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든든했을까?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역자가 있는 한, 자신을 묶어둔 족쇄도, 죄인이라는 신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동역의 힘이다.

이렇게 해서 가이사랴에서 아드라뭇데노라는 배를 타고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른 바울일행은 백부장의 인솔에 따라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로 갈아탔다. 그들이 처음 타고 온 배는 그리 큰 배가 아니라 지중해를 횡단할 수 있는 큰 배로 갈아탄 것이다. 그 배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로 곡물을 운반하는 운반선이었는데, 여객선 역할도 해서 그곳에 무려 276명이나 되는 사람을 태우게 되었다. 그렇게 무라 시를 출발한 배는 여러 날 후에 그레데 섬의 미항이라는 항구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바울은 죄수를 책임지고 있는 백부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항해를 하는 것이 위험하니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다시 로마로 출발하자는 것이었다. 행 27:11에 보면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보다 바울의 말을 더 믿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항구는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했기 때문에 서쪽으로 약 64km정도 떨어진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는 의견이 우세하였다. 그래서 결국 배는 미항을 출발하여 뵈니스를 향해 나아갔다. 처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어서 쉽게 가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얼마 안 되서 섬 가운데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배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유라굴로라는 이 광풍은 지형의 영향으로 생기는 바람인데, 일단 이 바람을 만나면 배는 방향을 조절할 수없는 상태가 되어 속수무책으로 밀리다가 모래톱이나 암초에 부딪히면 파선하게 된다.

바울이 탄 이 배 역시 유라굴로에 휩쓸려 몇 날 며칠을 해도, 별도 보지 못한 채 표류하였다. 표류 이틀 째, 사공들은 배에 싣고 있던 곡물들을 다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흘 째 되는 날에는 배의 기구들까지도 다 바다에 버렸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다. 그러나 광풍에 휩쓸린 배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고,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구원의 여망머저 잃어버리게 되었다.

(행 27: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바울 말을 들을걸. 바울 말대로 미항에서 겨울을 보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여기서 잠시 이 배에 타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지위가 높은 백부장부터 시작해서 선장, 선원, 돈 많은 상인들, 가난한 일꾼들, 그리고 심지어 바울과 함께 탄 죄인들도 있었다. 이 들 중 어떤 죄인들은 로마에 도착하여 곧 사형 판결을 받게 될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폭풍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그러한 구분 자체가 무의미했다. 모두가 다 표류하는 배 위에서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바울이었다. 그는 사람들 눈에는 가장 낮고 천한 죄인의 신분으로 배에 올랐다. 하지만 표류하는 배 위에서는 오히려 가장 담대하고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정확한 구분이 아니었을까? 땅 위에서는 백부장이라는 지위가, 또 상인들이 가진 부유함이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었을지 몰라도, 밀려오는 푹풍 앞에서는 그런 구분이 무의미했다. 표류하는 배 위에서 일어나는 유일한 구분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그 구분만이 존재했다. 오히려 바울과 그의 일행들은 폭풍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때에 있을 그 영원한 구분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예가 아닐까. 왜냐면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기 위해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날, 사람을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될 것이다. 그 믿음이 오늘 우리 마음에 뿌리깊이 자리잡게 되길 바란다.


월요일 : 파선

이렇게 배가 몇 날 며칠을 표류하자, 사람들은 더 이상 삶에 대한 여망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바로 이 때,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그 어둠 속에서 오히려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바울이다. 그는 절망 가운데 빠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행 27: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행 27: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행 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삶의 여망이 사라진 자들에게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한 사람이 담대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두려움과 절망에 있는 275명의 사람들을 앞에서 너무나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리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리라 약속하셨다. 그러니 안심하라’라고 외치는 바울의 모습.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희망의 말의 중요성’이다. 이 배에 탄 사람들 중 대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희망에 찬 말이 사공들뿐만 아니라 그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의 불꽃을 전달한 것이다.

행적, 443
사도는... 가장 어두운 시간에 희망의 말을 하였고 모든 위급한 경우에 도움의 손이 되었다... 이 말을 듣자 희망이 소생하였다. 여객들과 선원들은 무감각에서 깨어났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었고 파멸을 막기 위하여 저희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였다.

이렇게 해서 다시 힘을 낸 사공들은 점점 배가 육지로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그들은 몰래 거룻배를 내려 자기들만 빠져나가려고 하였다. 왜냐면 암초들이 많아서 이 큰 배를 타고 해안으로 가기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계획을 눈치챈 바울은 백부장에게 이야기해서 거룻배를 다 잘라 버리도록 했다. 이렇게 또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14일동안 표류하면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밥맛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들이 육지로 가는 길은 수영을 하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고 힘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바울은 다시 일어났다.

(행 27: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행 27: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행 27: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행 27: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바울은 또 다시 사람들에게 격려의 말을 하였다.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음식을 먹고 힘내자. 우리는 살 수 있다. 분명히 살아서 갈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안심하고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는 수영할 수 있는 사람은 수영해서, 수영 못하는 사람은 널조각이나 배의 물건을 의지해서 무사히 육지에 도착하였다. 정말 바울의 말대로 한 명도 죽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말 한마디가 듣는 자들의 마음을 소생시키기도 하고, 절망하게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경험을 자주 하지 않는가? 몹시 걱정되는 일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염려할 때, 누군가 옆에서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 문제를 해결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이끄신다.’라는 말을 해 주면, 걱정의 마음이 오히려 확신으로 돌아서지 않는가? 이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희망의 말,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다들 포기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믿음의 한 마디’가 온 가정과 교회를 다시 일으킬 것이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입술에도 불신과 불평의 말 대신 확신과 희망의 말이 전달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파선의 경험’이 오히려 ‘구원의 경험’이 되길 바란다.


화요일 : 멜리데에서

14일간의 표류 끝에 마침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멜리데라는 섬이었다. 모두가 절망속에서 삶을 포기한 그 순간에 바울의 말 한마디가 그들을 다시 움직였고, 마침내 멜리데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사실 바울이 이렇게 확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행 27: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에게는 그가 가이사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전에는 결코 죽을 수 없기에, 바울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였고, 그 믿음이 그와 함께 한 275명의 사람들에게 구원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는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경험이었다.

이렇게 어렵게 멜리데 섬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처음에 그들이 도착했을 때 날이 추었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주었다. 그런데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집어서 불에 넣었는데, 거기 독사가 있다가 바울의 손을 물었다. 그걸 본 원주민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행 28: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그들도 아마 바울의 신분이 죄인인 걸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하는 말이 ‘저 사람은 살인자가 분명해. 운 좋게 바다에서는 살아났지만, 결국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하는구나’. 뱀에 물려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이것이 신의 심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바울이 죽지 않았다. 보통은 뱀에 물리면 몸이 붓기도 하고 갑자기 쓰러져 죽는데, 바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자 그들의 생각이 이렇게 바뀌었다.

(행 28: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조금 전에는 뱀에 물리자 ‘저 사람이 살인자가 분명하다’고 생각한 그들은, 바울이 죽지 않자 이번에는 ‘야~ 그는 신이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의 집에 가서 사흘을 머물렀는데,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로 누워있었다. 그 때 바울이 그에게 안수하고 기도하자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러자 온 섬에 있는 아픈 사람들이 다 몰려들어 고침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석 달을 머문 후에 다시 봄이 되자 사람들은 배를 타고 로마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이 때 멜리데 섬 사람들은 후하게 그들을 대접하고는, 로마로 갈 때까지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다 배에 실어 주었다. 정말이지 바울 덕분에 그 배에 오른 모든 사람들이 후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바울은 비록 죄인의 신분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는 사도의 삶을 살았다. 표류하는 배 위에서는 절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외쳤으며, 멜리데 섬에서는 아픈 사람들의 병을 고쳐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가 있었다. 이처럼 바울은 죄인이라는 자신의 신분이나, 폭풍이라는 열악한 상황이나, 멜리데라는 낯선 장소에 상관없이 언제나 복음을 전하는 그 일념으로 살았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사명은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을 때에도 이어졌다. 정말이지 바울은 오직 선교, 선교일념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수요일 : 마침내 로마에 도착한 바울

멜리데 원주민들의 따뜻한 배웅 속에서 배는 다시 로마로 출발하였다. 순한 남풍의 도움을 받아 이번에는 안전하게 로마에 도착하게 되었다. 드디어 로마 땅에 발을 내딛었을 때, 바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토록 복음 전파를 위해 오려고 애썼던 로마. 이제 마침내 바울이 로마에 온 것이다. 그곳에 도착한 바울은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비록 죄수이지만 그를 따로 지키는 한 명의 군인과 함께 따로 지낼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그렇게 로마에서의 삶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바울은 시차를 적응할 겨를도 없이 또다시 자신의 본분에 몰입하였으니, 로마에 도착한 지 사흘 후, 그는 유대인들 중에 높은 사람들을 모은 후에 자신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으며,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난 교과를 통해서도 살펴보았듯이 바울이 선교할 때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유대인들의 회당이었다. 마찬가지로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가장 먼저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자신이 회당에 갈 수 없으니, 회당을 자기 집으로 부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로마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행 28: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바울은 많은 유대인들을 모아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경을 강론했다.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 되심을 증명하였다. 이처럼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를 만나도 예수를 이야기했다. 그 사람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지위가 높든 낮든, 바울의 입에는 예수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빌립보서에 보면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는 동안 네로의 집 사람들 중에도 예수를 받아들인 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빌 1: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빌 4: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이처럼 바울은 오히려 죄인의 신분으로 로마에 있는 것이 그가 평소에 만나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되었다.

행적, 462
2년도 채 못되어 복음은 죄수의 천한 집에서 황제의 거실로 가는 길을 찾았다. 바울은 악인처럼 속박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딤후 2:9)였다.

권력은 바울의 몸을 속박할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묶어 놓을 수는 없었다. 그가 있는 곳이 감옥이든 왕궁이든, 표류하는 배 위든 처음 가 보는 섬이든, 하나님의 말씀은 바울을 통하여 모든 자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전해 주었다. 아마 당시 로마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로마에 왔다는 소식에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신분이 죄인임을 알았을 때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그를 통해 당시 최고의 도시인 로마에 복음이 전해질 것을 기대하였지만, 바울이 처한 현실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바울은 갇혀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적, 464
궁정의 관심이 그리스도교로 이끌린 것은 바울의 설교가 아닌, 그의 속박이었다... 오랜 부당한 감금의 기간에 바울의 인내와 명랑함, 그의 용기와 신앙은 끊임없는 설교였다. 세상의 정신과 매우 다른 그의 정신은 세상의 능력보다 더 높은 능력이 그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즉 그의 능력과 유용성이 단절되고 모든 형세로 보아 그가 최소의 일밖에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을 때, 그는 그가 전적으로 제외된 것처럼 보인 밭들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단들을 거둬들였다.

사람의 눈에는 실패로 보이는 상황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힘있게 일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갇혀 있는 바울은 오히려 그가 자유인이었을 때 보여주지 못했던 인내, 명랑함, 용기, 신앙을 보일 수 있었으며, 그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지울 수 없는 설교를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단절된 것 같은 그 순간에도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이것을 바울은 믿었기에, 로마의 감옥도 전도회 장소가 될 수 있었다. 결국 바울은 우리에게 내가 처한 상황이나 여건이 선교를 못하는 핑계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하고자 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통해서 일하실 것이다.


목요일 : 복음의 승리

로마에 있는 동안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기대와는 달랐다. 24절에 보면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자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행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행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바울은 복음을 거절한 유대인들에게 사 6:9-10의 말씀을 인용하여 외쳤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상태를 꾸짖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하므로 인해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 보내어질 것이며, 그들은 그 복음을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로마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 사람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이야기했다.

(행 28: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행 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은 약 2년간 로마에 머문 것으로 보인다. 근데 감옥이 아니라 자기 셋짐에 머물렀다고 되어 있는데, 아마 이것은 석방되기 전까지 자택연금 형태로 지낸 것을 말할 것이다. 이것은 재판이 2년 동안이나 열리지 않고 연기되었거나, 판결이 지연되었음을 뜻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법정고소 만료일이 18개월이었다. 그러므로 많은 학자들은 2년간의 자택연금 이후에 바울은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때가 A.D 63년경이다. 그 후 A.D 64년 로마 대 화재를 기점으로 네로의 기독교 박해가 심해지자 바울은 재차 체포되어 A.D 67-68년경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바울은 목숨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선교사로 살았다. 로마서의 가장 마지막이 ‘바울의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전파’로 끝나는 이유도 그를 통해 시작된 복음 전파의 불꽃이 여전히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도행적은 바울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행적, 511
사도는 불확실성이나 두려움으로서가 아니요 즐거운 희망과 사모하는 기대감으로 위대한 내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순교의 장소에 설 때에 형리의 검이나 곧 그의 피를 받을 땅을 보지 아니하고 그 여름날의 조용하고 푸른 하늘을 통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았다.

네로는 바울의 목을 자를 수는 있어도 그의 희망을 자를 수는 없었다.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보좌를 향한 푸른 희망은 마지막 순간에도 그의 마음에 평안을 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복음 전파의 역사는 약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사도행전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며, 우리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 바울과 함께 영광스럽게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감격에 함께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마무리
오늘 우리는 바울의 마지막 여행인 로마로 가는 여정을 살펴보았다. 비록 죄인의 신분으로 배에 올랐지만, 그는 단 한번도 스스로를 죄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자유롭게 복음을 전했으며, 그의 말이 닿는 곳마다 희망이 전해졌다. 폭풍 가운데 표류하는 배 위에서도, 간신히 도착한 멜리데라는 낯선 섬에서도,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로마에서도 바울은 언제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았다. 그리고 마지막 그의 피를 쏟는 그 순간까지 그는 삶으로, 순교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하였다. 이러한 그의 아름다운 삶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 전해지길 바란다.
추천 1

작성일2018-09-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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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36 2030 재림 날짜 시리즈(4) 요5:25에서 공개하신 재림의 때 새글첨부파일 김운혁 2018-10-22 19 0
47735 다미선교회보다 더 악질적인 안식교 마귀 XX들. 에혀 2018-10-22 19 0
47734 사이비 시한부 종말론 사기를 치면 안 되는 이유 에혀 2018-10-22 14 0
47733 새예루살렘에서 "사망"이 멸망당하는 이유 김운혁 2018-10-22 12 0
47732 [김경호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학당 31강] 교회의 시작과 선교 (상) 에혀 2018-10-22 14 0
47731 [김경호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학당 31강] 교회의 시작과 선교 (하) 에혀 2018-10-22 12 0
47730 얼마나 낯짝이 두꺼우면 신천지 이만희나 안식교 앨렌 화잇이나 JMS 정명석이를 우상숭배하는걸 자랑하겠니? 에혀 2018-10-22 27 0
47729 야 안식교 사기 그만쳐라. 누가 앨렌 화잇 마귀X에게 속겠니. 복습시간 2018-10-22 18 0
47728 안식일 준수의 모본은 예수님! 율법주의 바리새인이 아니다! 태초부터 복주신 안식일은 행복한 시간의 궁전!!! 댓글[2] 정무흠 2018-10-22 32 1
47727 예수는 제자들이 살아있을 때 “다시 온다”고한 약속대로 54일후 ‘오순절 날에 재림’했다,-- 이 바보넘 댓글[1] 유구유언 2018-10-22 19 0
47726 왜 안식교 마귀 앨렌 화잇은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사기를 쳤을까요? 에혀 2018-10-22 14 0
47725 안식교 마귀XX들 중에 안식일 지키는 놈이 단 한 놈이라도 있을까? 에혀 2018-10-22 14 0
47724 창조주 하나님께서 왜 안식일에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쉬셨을까? 댓글[1] 정무흠 2018-10-22 36 1
47723 앨렌 화잇이 친 사이비 시한부 종말론 사기를 저도 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안식교 마귀XX들. 복습시간 2018-10-22 17 0
47722 CBS기독교방송이 밝히는 이단의 실체 - 안식교(SDA), 안상홍(장길자), 신천지, JMS 등 복습시간 2018-10-22 17 0
47721 다미선교회보다 더 악질적인 안식교 마귀 XX들. 복습시간 2018-10-22 18 0
47720 복음화란 무엇인가? kasda.com 자유게시판에 실린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글) 정무흠 2018-10-22 25 1
47719 연합의 비결 - 정수희 목사님 정무흠 2018-10-22 28 1
47718 “위구르족(維吾爾族),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종교를 비난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다” 구월 2018-10-22 14 0
47717 CBS기독교방송이 밝히는 이단의 실체 - 안식교(SDA), 안상홍(장길자), 신천지, JMS 등 복습시간 2018-10-21 19 0
47716 왜? 앨렌 화잇도 잘 해먹었는데 나는 사기치면 안되? 오늘도 사기치는 안식교 마귀XX들. 복습시간 2018-10-21 22 0
47715 1844년 10월 22일 예수가 재림한다고 사기친 앨렌 화잇을 우상숭배하는 미친 안식교(SDA) 마귀XX들. 복습시간 2018-10-21 19 0
47714 어떻게 해서든지 일하지 않고 사기치며 남 등쳐먹고 살겠다는 안식교 마귀XX들 복습시간 2018-10-21 2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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