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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잠 못드는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 할수없이 일어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보니, 커다란 나무들에 가려졌지만 반쪽짜리의 달과 총총한 별들이 반짝인다. 오랜만에 올려다 보는 밤하늘이다. 집 기둥 모퉁이에 걸어놓은 노란색 풍경은 작은 바람에도 얇은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고, 어디선가 먼 고양이의 울음 소리도 들린다. 뒷집 수영장 물 소리도 들리는게 아마 작은 짐승들이 그 속에서 놀고 있나 보다. 평화로운 한밤중의 풍경이다. 다만 혼자 여러생각에 넘쳐 잠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밖으로 나와 있으니 머리도 마음도 맑고 시원하다. 언제나 매달 중순이면,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고객들에게 보낼 청구서를 만들어 보내 그 한 달을 마무리한다. 일을 계속하는 보람도 있지만 가끔은 힘들고 어려운 오늘처럼, 유난히 뭔지 모르게 잘 풀리지 않는 날도 있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고 있으면서, 갖가지 생각들은 엉뚱한 예전 고등학교때 친구들이랑 몰래 갔었던 해수욕장 근처의 결핵 요양병원 골목에서 헤매이고, 눈은 숫자의 더하기와 빼기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실수투성이로 엉망진창인 것이다. 넘치는 많은 생각들을 멈출 수 없어 차라리 하던 일들을 멈추고 집으로 일찍 돌아와 버렸다. 그냥 그 생각의 끝을 따라 어디까지인지 가볼까 하다, 이럴 때는 다 놓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많은 생각들을 다 던져놓고 잠시 다른 것들을 바라보다 보면, 세상 어려운 일들도 어쩌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편안해지며 어쩌면 새로운 평화스러운 밤을 보내게 된다. 밤하늘, 나무, 달, 별, 풍경 소리, 고양이 소리, 물소리,,,,,, 무언가 잘 풀리지 않거나 매일 하고있는 일상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복잡할 땐,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이라도 고개 들어 하늘도 보며 크게 숨도 쉬어 보면서 쉬었다가 가보자. 그렇다고 크게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니까. 조금 늦고 서툴러도 괜찮을 거다. 분명 내일 아침 일어나면, 꼭 해야만 하는 많은 청구서의 숫자가 잘 맞아 마감 날짜도 어기지 않게 될 것이며, 청구서 위의 많은 이름도 전혀 틀리지 않을 것이며, 하나씩 제대로 봉투에 잘 넣고 각각의 우표를 붙인 체 날아가, 새로운 다음 달의 나의 일을 만들어 주며, 그것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늘 그랬듯이. 또 가끔은 많은 생각들 때문에 미처 잠들지 못한 체 서성이다, 문득 밤하늘의 달과 별도 보며 또 한편으로 안도할 것이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9-02 파라다이스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나는 창가에 기대어 선다. 손 끝에 전해지는 머그잔의 따뜻함에 기분이 좋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싱그러운 시간, 작은 뜰 안으로 빛을 따라 들어온 달팽이가 풀잎 끝에 달려 있는 이슬을 마시고 있다. 어디선가 갑자기 사마귀 닮은 곤충 한 마리가 튀어 오르자 경쾌하게 아침 체조를 하던 무당벌레는 놀라서 그만 뒤로 나동그라진다. 이 아침에 나는 살아 숨쉬고 있는 작은 생명체들을 들여다보며 그 신비로움에 마음이 들떠 있다. 지금은 뜰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버려진 맷돌을 찾아오는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평소 맷돌은 작은 분수대였는데 날이 뜨거워 물이 증발해 버리자 어느 날부터인가 파충류가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곳 캘리포니아는 지천에 깔린 게 도마뱀이라 발에 채여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큰 성이라 여겨졌을 분수대 안에서 한 쌍의 연인들은 매일 꿈결 같은 허니문을 즐기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멋진 맷돌 궁궐에서 앙증맞은 공주와 왕자를 만들어 냈다. 네 마리의 가족들은 어찌나 맷돌성을 좋아하는지 여름 내내 부지런히 인 엔 아웃을 한다. 문득 내가 작은 뜰 안에 숨어 있는 요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공상이 나는 매우 즐겁다. 내가 가끔 준비 없이 집을 훌쩍 떠나 다녀오는 곳이 있다. 스캇벨리에 있는 레드우드 숲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산새들의 지저귐과 삼단 폭포에서 떨어지는 맑은 물소리가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넓디 넓은 산등성이 곳곳에 가득히 피어있는 수국과 민들레, 맨드라미와 들꽃들의 향연은 그리운 고향집 엄마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하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빽빽한 레드우드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신선함을 깊이 들이 마시는 순간 이곳까지 버겁게 싸 짊어지고 온 등 짝의 근심 덩어리 보따리가 솜털처럼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살면서 그렇게나 힘들었던 내려놓음의 문제들이 일순간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자 텁텁한 생각들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이다. 때때로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나를 죽이기 위해서다. 여전히 팔팔하게 활개치고 있는 못된 성깔들을 죽이지 않고는 결코 만족함이 없어서다. 현재 주어진 환경과 형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는 커녕 더 못가져 안달하는 것이 문제다. 어느덧 자연이 주는 기쁨과 기운으로 새로운 힘이 생기면 거룩할 정도로 내가 착해진다. 그러니까 내 눈 안으로 들어온 세상은 예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보고 듣고 만지고 느껴지는 것 모두가 파라다이스다. 숙제처럼 남아있는 껄끄러운 사람과의 관계고리에서도 용서 못할 일이 전혀 없으니 잠시동안 머물다 가야 할 나그네 인생길에서 오직 사랑만을 퍼 주고 싶은 열정으로 삶에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어느새 커피 잔이 다 비워졌다. 나는 다시 향기로운 커피를 내리면서 나의 집 작은 뜰 안에서 단지 하루의 일용할 양식에 기뻐하는 귀여운 생명체들을 감상하며 낙원에 빠져든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8-07 바다와 아버지의 추억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한국의 남쪽 끝 작은 바다가 있는 곳이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 사시다 전쟁을 피해 내려온 아버지는 낚시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낚시하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 짧디짧은 단발머리 팔랑거리며 두 손 꼭 잡은 채 따라나서면, 이 세상 부러울 것도 원하는 것도 없이 행복했었다. 엄마 없이 아버지랑 단둘이서만 있는 것도 좋았었고, 향긋한 파이프 담배 물고서 바다만 바라보며 아무런 말 없이 앉아 있는 아버지의 냄새를 바람결에 마음껏 맡을 수 있는 것도 참 좋았었다. 늘 따라나섰던 그 바다는, 어릴 적의 내 마음처럼 편안하며 거의 파도가 없는 잔잔한 호수 같은 곳이다.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생선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떤 여름날, 그 비린내 나는 선창가 구석에서 신문지 몇 장을 겨우 덮고 잠들었다가, 잠이 덜 깬 체 새벽 아침 햇살에 한가득 잡혀있는 파란 빛깔의 생선들을 보며 무서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푸르디푸른 생선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어 내 눈을 찌르는 그때의 모습은, 가끔 꿈속에서도 나타나며 그 눈부신 푸른 빛으로 선명하다. 그 바다는 이제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내 삶 속에 남겨져, 늘 반짝이며, 늘 눈부시며, 늘 평화로운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하나의 은신처로 만들어 있어, 언제나 자유로이 숨기도 하며 울기도 하며 위로받으며 살아간다. 가끔 산다는 것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누군가의 진정한 위로가 필요한 때면 난 무엇보다 바다가 먼저 보고 싶다. 정말 그곳에 가기만 하면, 늘 언제나 내 편이셨든 아버지가 계시면서 내 손 잡고 웃어주시며 "괜찮다, 괜찮다" 해주실 것만 같으다. 어른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와지니, 그저 나 하나 있는 그대로 봐주는 영원한 나의 편이 그립다. 그 옛날처럼 제대로 - 어리광 한번 크게, 투정 한번 크게 - 콧등에 잔뜩 주름 잡아가며 부려보고도 싶다.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오고 또 더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그 고향보다, 이제는 가깝지만 더없이 넓디넓은 태평양 바다를 찾아간다. 짙은 회색 바다의 색깔과 끝없이 밀려오는 거센 파도와 그 기다란 띠를 두른 하얀색의 거품들은 내 마음속의 어릴 적 고향의 바다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와 다 자란 지금의 나처럼, 바다도 또 그렇게 뚜렷이 전혀 다른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누어져 기다리고 있다. 내가 여전히 똑같은 나인 거처럼, 바다도 그렇게 영원히 바다일 거라 생각하며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들을 찾아간다. 이젠, 아버지보다 어느듯 더 나이가 들어 버렸지만, 무엇보다 그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를 내 마음속에 만들어 주고 가신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초여름 오후의 나른함에 기지개 펴본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8-07 바람 바람 바람
"야 야 야,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야 야 야…" 매일 90도가 넘는 폭염으로 누구라도 마음과 몸이 지쳐 가고 있는 이 때에 남과 달리 나는 노래 가사처럼 마음도 하나요 느낌도 하나인 일에 흠뻑 빠져 회춘한 나날이다. "사랑에 무슨 나이가 있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야 야 야.." 참으로 묘한 매력으로 와 닿는 노래가락을 흥얼거리며 도착한 곳은 준바 댄스교실, 문밖으로까지 흘러 나오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벌써부터 내 몸을 들뜨게 한다. 학생 수는 19명, 전체가 아줌마들인데 엄마 손을 잡고 따라온 6살 아이의 춤 솜씨는 절로 'Bravo'가 외쳐진다. 동양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비록 내 나이가 가장 많지만 전혀 기죽지 않는다. 몸에 착 붙는 래깅스 대신 언제나 꽃무늬 캉캉 치마를 입고 수업에 임하는 나의 삼바 댄스실력은 국적을 브라질로 오해할 만큼 클래스 안에서 인기 짱 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나 보다. 한 시간 동안 멈춤이 없이 칼로리와 지방 연소를 위해 미친 듯이 전신을 흔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몸의 균형과 심폐 지구력이 강화되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고 어떤 일에든 자신감이 넘치게 된다. 평소 부끄럼이 많고 몸치였던 내가 큰 용기를 내어 생소한 스포츠로 타인종과 친근하게 어울려 즐거움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이 노래 덕분인 것 같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준바 스포츠 댄스로 온 몸이 땀에 절어지면 바로 수영장으로 달려간다. 수영은 전혀 못하지만 WATER AEROBICS 을 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스포츠다. 물 속에서는 아무리 난리를 쳐도 다칠 염려가 없다. 야외라서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클래스 인원은 30여명, 풍채 좋은 남녀 어르신들인데 이곳에서도 한국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 준바 댄스에 비하면 쉬울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물 속에서 앞으로 달리거나 뒤로 걷는 것 그리고 운동기구를 가지고 동작을 따라 하는 것은 마디마디 관절운동이라서 에너지가 총동원 된다. 때때로 나는 강사의 눈을 피해 내 임의대로 칸추리 리듬에 맞춰 물 속에서 우리 고유의 태권도와 강강수월래의 춤을 추는 것에 쏠쏠한 재미를 느끼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모두가 뒤집어지는 일이 있었다. 팝송이 아닌 싸이의 '강남 스타일' 노래를 에어로빅 음악으로 틀어준 것이다. 전부다가 미국인인 학생들은 이 음악에 신바람이 났다. 선생님의 랩에 따라 물 안에서 말춤을 추며 입을 모아 "오빤 강남스타일"을 부르니 수영장 물이 바다가 된 듯 파도가 넘실거린다. 멈출 수 없는 후렴구의 마력에 끌려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오 오 오 오…오빤 강남스타일"을 힘차게 합창하는 은발의 인어들은 황금빛의 석양과 대비를 이루어 싱싱한 청춘이다. 아, 세월을 비껴간 나는 어떡하지? Eh, Eh, 섹시 레이디가 돼 버린 내 마음에도 심장이 뜨거워지는 바람, 바람이 분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7-04 레드우드 숲에서
늘 한결같은 삶을 사는 것은 진정 축복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있는 그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애쓰고 수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잦은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내 자리를 지키며 꿋꿋이 자라고 있는 나무들처럼,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세상의 숲을 만들고 어우러지면서 그렇게 같이 가는 것이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레드우드 숲이 있다. 우연히 따라나선 길에서 만난 이 수많은 나무들은 얼마나 키가 크고 높은지 거의 하늘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울퉁불퉁 거치른 나무의 덮개인 겉껍질은 붉은 황토색으로 두껍고 단단하게 적당히 말라 있다. 너무 긴 키 때문인지 괜스레 애처롭다. 그 나무들은 가까이에서 두런거린 채 마주하며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듯 다정한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 넓고 빨간색의 커다란 숲을 이룬체 살아간다. 나무와 나무들의 공간이 좁아 단숨에 그 숲을 건너가는 것은 힘들다. 바람이 불어오면 그 기다란 나무들이 함께 작은 미동으로 리듬을 맞추면서 윗가지들이 흔들린다. 쏴 하는 바람으로 흔들리는 나무의 향기가 코에 닿으며 순간으로 보여지는 조각 하늘빛이 유난히 푸르르다. 그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젖힌 나도 덩달아 그 바람을 느끼며 작게 흔들린다. 그 순간 나도 나무이고 싶다. 이들은 날 때부터 뿌리가 깊지 못한체 키만 멀뚱히 자라는 운명으로, 작은 바람에도 곧잘 쓰러지곤 해서, 곳곳에 넘어져 누운 채로 기다란 몸통의 배를 내놓고 있는 나무들도 있다. 숙명적으로 뿌리가 깊지 않음을 알기에, 수분과 영양분도 아껴가며, 서로 서로가 가까이에서 기대고 살아야만, 오래오래 기다란 몸을 키우면서 자신이 지켜내며 끝내야 하는 몫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함께 나누며 의지하며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본능을 터득한 나무들만이 살아남아서, 긴 세월 동안 커다란 숲을 이루면서 오늘도 나 - 레드우드를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너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삶의 이치를 깨달은 나무들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도 늘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 백 년을 천년을 살 거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고 또 사랑도 주고받으며, 스스로 수분과 영양분을 만들어 가면서 살아간다. 늘 곁에 있으리라는 당연함으로, 피차의 사과와 용서도 없이 지내다, 어느날 문득 바람에 쓰러진 빈자리의 누군가를 보게 되면 후회한다. 조금만이라도 더 많이 사랑해줄 걸 하며, 제발 이 후회를 잊지 않고서 기억하며 살아야지 하면서도 다시 그 당연함으로 외면한다. 비록 더없이 연약하며 또 세찬 바람에 잘 흔들리며 넘어지는 얕은 뿌리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함께 기대며 서로를 보듬고 사랑하며, 끝없는 새로운 탄생과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다시 세대를 넘겨 가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7-04 오늘의 포커스
얼마 전 존경하는 지인 부부와 점심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1시간 30여분이 지나서야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도착하신 분들은 트래픽 시간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체된 도로사정을 설명하기에 애썼고 나는 기다림의 인내를 웃음으로 답하느라 입가가 피곤했다. 비록 때늦은 점심을 먹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참으로 유익한 대화를 나누며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와 일상을 정리하고 TV 앞에 앉았다. 늘 그렇듯이 오늘의 지역 로컬뉴스부터 틀었다. 680 프리웨이에서 있었던 교통사고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순탄하게 프리웨이를 잘 달리고 있던 자동차 행렬 안으로 갑자기 도로변에 서있던 거대한 나무가 자동차를 덮치면서 쓰러졌다고 한다. 그일로 J병원에 근무하는 오십대 후반의 여의사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고소식이다. 등골이 오싹한다. 그 지역의 같은 시간대 도로에서는 오늘의 만남을 위해 나에게 달려 오고 있던 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후 사고의 경위를 설명하는 리포터는 멀쩡하게 보여진 나무는 실상 가뭄으로 바싹 말라 있다가 견디지 못하고 넘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까지 아득해진 나는 잠시 TV를 끌수 밖에 없었다. 뜻밖에 생명을 잃은 사람은 아마도 스케줄에 따라 출근길이었을 테고 집을 나서면서 가족들과는 저녁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경쾌하게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커피한잔을 들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출발하면서 계획된 하루의 바쁜 일과를 머릿속에 그렸겠지. 어쩌면 그녀는 좀 더 편안한 운전을 위하여 자동차 오디오에 씨디를 넣고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했을지도 모른다. 몇 분 후 끔찍하게도 나무에 맞아서 목숨을 잃을 일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전혀 상상조차 못했을 테니까. 이후에도 나는 종종 생면부지인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라서 마음이 슬펐다. 오늘도 나는 분주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TV앞에 앉는다. 채널 7 ABC뉴스에 초점을 맞춘다. 브레이크 뉴스가 화면에 뜬다. 나흘 전에 발생한 LAKE COUNTRY에 큰 화재가 아직까지 전혀 진압이 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예 OUT OF CONTROL 이란다. 지난 해에 소노마 카운티에 있었던 대형화재는 또 얼마나 끔찍했던가. 마음이 아파서 다른 채널로 돌린다. 지난 5월 하와이섬 킬라우레아 화산이 폭발하여 여전히 용암이 분출되고 있으며 유독 가스가 난무하고 있다는 뉴스다. 이 현상은 앞으로도 몇 달이 더 지속될 것이라고 전한다. 또 6월 초에 발생했던 과테말라의 푸에고 화산의 폭발로 인한 이재민의 실태도 함께 비추어 준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모습 속에 미래를 알 수 없는 내 모습이 투영되어 다가온다. 정말 싫다. 절대 나는 아닐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몸서리를 친다. 그러나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는 불의 고리가 아니더라도 지구 곳곳에서는 산이 터지고 땅이 꺼지고 쓰나미가 덮어 버리고 바람과 불이 쓸어 버리는 속수무책의 자연재해가 나날이 빈번해지고 있음을 본다. 이러다가는 일본의 후지산과 한반도의 백두산, 이곳 미국의 엘로스톤이 한꺼번에 터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심히 걱정이 된다. 누구라도 하늘 높이 피신할 수도 없고 땅속 깊이 숨을 수도 없다. 나는 이 시점에서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지 심각해진다. 오랜 고심 끝에 그냥 오늘 하루를 잘 살기로 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그렇게 잘 살다 보면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그 날에 후회 같은 것은 덜할듯 싶다. 그래서 오늘도 어렵지만 관용과 배려와 사랑을 내 마음에 철칙으로 삼고 부지런히 감사거리를 찾는다. 단 1분 후의 일을 알 수 없는 인생을 오늘도 살아 숨쉬게 하는 하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니 환경에 상관없이 지금의 내 자리가 에덴동산이 된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6-06 자연인 신드롬
나는 농작물을 제법 잘 기른다. 어떤 종류의 씨앗이던지 내 손을 통해 땅에 심기만 하면 때에 맞춰 만족하리만큼 수확을 하게 된다. 농작물뿐만이 아니라 나무나 꽃, 선인장 까지도 아주 잘 키워낸다. 남들이 노력하다 결국 포기해버린 화초들도 내 손을 타면 방긋 웃으며 되살아난다. 이런 신통한 재주를 우 쭈쭈 치켜 세워주는 이웃들의 박수에 밭에서 보내는 나의 시간들은 황홀하기만 하다. 평소 우리 집엔 문지방이 닳도록 사람이 들락거린다. 예고도 없이 손님이 들이닥칠 때라도 나는 전혀 당황해 하지 않는다. 먹거리가 가득한 텃밭으로 쪼르르 달려나가면 만사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자라 있는 부추랑 깻잎, 쪽파를 솎아 내어 먹음직스럽게 파전을 부치면 되고 물 오른 돌나물은 새콤달콤한 고추장과 매실 엑기스 한 방울로 그 향기로움을 살려낸다. 알맞게 퍼진 아욱 잎은 마른 새우를 넣어 구수하게 된장국을 끓이고 오이와 방울토마토, 쑥갓은 밭에서 뜯어온 그대로 식탁에 올려야 상큼함이 더 실감난다. 나물로는 연한 근대와 시금치를 데쳐서 마늘 없이 간장에 조물조물 감칠맛 나게 무치고 통 보리밥에 열무김치를 곁들여 내면 뚝딱 건강한 시골 밥상이 차려진다. 어느 결에 그릇이 다 비워지면 나는 담장을 타고 올라와 있는 농익은 멜론을 따서 디저트로 내 놓는다. 단 물이 뚝뚝 떨어지는 멜론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아! 그냥 한마디로 살 맛이 난다. 이렇게 이른 봄부터 여름, 늦가을의 해가 기울어 호박씨와 여주씨, 들깨 씨 등을 추수하게 될 때까지 나는 첩첩 산중의 자연인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달포전 직장을 그만 둔 김에 나는 실지로 이주할 귀농에 집착했다. 뉴스에서 들어본 '아미시 타운'을 그리며 남은 인생을 그들처럼 문명사회를 벗어나 초원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보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하지만 엄격한 규율에 따라 18세기로 돌아가 고립된 생활을 한다는 것엔 영 자신이 없다.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웰 컴 투 마이 힐링 홈" 을 외치며 내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는 꼭 밥을 지어 먹여 보내고 싶은 예의와 기쁨을 어찌 내려 놓을 수 있단 말인지. 게다가 고립된 그곳은 재래식 화장실에 마차를 타고 다녀야 한다니 차라리 꿈인 것이 다행이다. 평소 자연인 신드롬 가슴앓이를 하고 있던 나는 어쩌면 매일 손바닥만한 텃밭에 앉아 자연인의 모습을 연습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인종 전시장이라 할만한 이 복잡하고 혼탁한 미국 땅에서 현실의 고달픔을 내던지고 가능한 한 멀리 도피하려던 나의 속내를 존경하는 지인은 단 한마디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셨다. "세상에 머물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의 형태로 살아라."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진정한 자연인은 도망치듯 깊은 산사에 칩거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 없는 세상가운데서 지지 볶고 살지라도 바른 가치관으로 지조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호미를 들고 다시 텃밭에 나가 앉은 나는 잡풀을 뽑아내고 불필요한 돌을 골라내며 좋은 땅을 일구기에 땀을 흘린다. 문득 내 마음의 밭은 정작 형태인지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바뀐 관점으로 이해한 오염된 세상은 매우 흥미롭다.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시끌시끌한 이 도시 한가운데가 내가 뿌리 내릴 터전임에 감사하다. 바라기는 심은 대로 거두는 농작물의 법칙처럼 공의와 정의, 사랑을 뿌리내려 반딧불의 삶이 되기를 결단해본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6-05 인생 사용 설명서 김홍신
제목이 참 좋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든 "사용 설명서"이다. 결코 전혀, 작지도 않은 나이인데도 여전히 배우고 느끼고 또 감동 받는다. 그 책 한 권을 들고서 다시금 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그 자체가 고맙다. 물론 작가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늘 우리가 주변 어디에선가 들었었고 또 읽었던 평범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떻게 살아갈 거라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 나름 품고 있었던 생각들을, 쉽게 풀어서 설명서로 만들어 놓았다. 나를 사랑하라고 오직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라고, 감사의 마음을 품고 세상의 일들을 받아들이라고 누누이 이야기해준다. 그렇지만 삶은 커다란 일보다 작고 사소한 일들에 더 많이 상처받고 속상해하며 마음속 안에 상처와 흉터를 남겨 놓는다. 내게도 오래전 절대로 아물지 않을 거라는 상처와 흉터가 있었다. 전혀 대항할 마음이 없었기에 작은 방패조차도 들지 않은 채로, 무수한 화살을 제대로 오랫동안 받은 채 쓰러져 한동안 많이 아팠었다.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고 건강도 좋지 않아 매일매일을 간신히 버텨가며 사춘기의 아들 하나 껴안고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상황에,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자신의 편안함과 부유함과 건강함을 마음껏 뽐내며 자랑했었다. 말 한마디에 몸짓 하나에 눈빛 하나로 그토록 인간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시간은 많이 흘러갔고 나도 많이 변했고 물론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그 가슴 속에 박혀있었던 화살들은 세월 때문인지 아니면 나 자신이 성숙해지면서 치유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 흉터조차도 남아 있지 않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돌보지 않으면, 세상 누구에게도 그렇게 대접을 받을 거라고 받아들이면서, 이해하며 용서했다. 내가 변해야 세상도 변하고 내가 행복해야 세상살이도 행복해진다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진리도 배웠다. 그 어떤 공부와 훈련과 연습보다 더 값지게 내 인생의 사용 설명서를 터득한 것이다. 지금도 때때로 비가 오는 날이면 슬슬 흉터 자리가 가렵다. 날씨 탓인지 괜스레 그 가려운 자리를 다시 열어서 보게 된다. 그러나 더이상의 상처가 아닌 교훈으로 그 자리를 바라보게 된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5-02 반 고흐의 노란색
노란색, 그 색깔은 불타는 태양과 한여름의 해바라기와 고흐를 떠올리게 한다. 그 이름은 또한 아픔으로 전해진다. 그 색깔은 이 세상의 어떤 색과 함께 있더라도 유난히 눈에 띄고 더없이 화려한 듯하지만, 왠지 모르는 서글픔은 아마 고흐의 슬픔으로 기억된 채 굳어져 버린 생각 때문이리라. 고흐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37년을 살다간 그는 생전에 단 1점의 유화 작품을 팔았었고, 제대로의 그림 공부를 받아보지 못한 채 어떠한 기교와 선입감과 어떻게 해야만 한다는 시류의 통제 없이, 끊임없는 습작과 늘 새로운 시도와 훈련으로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상을 변형하고 재구성하고 전환해서 그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깜깜한 자신 속에서 길을 찾으려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방향을 잃고 헤맬 때도 있었기에, 그는 고뇌하며 또 의문을 품으며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버텨갔을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더 세상과는 동떨어진 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많은 정신적인 고통과 커다란 병을 얻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난 그림을 그리려 캔버스 앞에 앉으면, 순간 텅 빈 공간이 두렵다. 무엇을 그리며 어떻게 무슨 색상으로 시작해야 하며 왜 꼭 이렇게 이 하얀 사각의 물체 앞에서 뭔가를 그려야만 할까 하는, 그런 두려움이다. 그렇듯 서로의 기를 보여주는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대립이 아닌 하나로 동화되어 작은 형체가 보여지고 갑자기 색상들은 서로에게 조화되어 편안해지면서, 어느덧 나름의 작품으로 변해간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곳에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만족감은, 내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이유가 되어주고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사후에 누리게 될 그토록 화려한 명성과 작품에 대한 찬사를 생전에는 전혀 가져보지 못한 채로, 세상에서의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고 떠난 반 고흐의 아픈 삶과 예술은 여전히 노란색으로 내게 보여지고 있다. 나는 세상의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신을 위한 진정한 예술의 묘미를 열렬히 음미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찬양한다. 나 역시 늘 그 언저리에서 맴돌다 되돌아오고 다시 시작할 거지만, 오늘은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를 그려보고 싶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4-04 톰과 제리의 여행
직장에 사표를 냈다. 아주 쿨 하게 미련 같은 것은 남겨 두지 않기로 했다. 근 6년간 충실했던 직장을 그만두기까지는 갈등의 연속이었지만 실력을 쌓고자 노력했던 내 분야 쪽의 일은 이만큼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눈물을 뿌려가며 배운 그간의 생생한 의료 체험을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일부러 사서 한 고생일지 모르나 나름대로 성취와 보람이 강렬한 직업을 고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판단된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해 몰두한 시간들은 참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회사에 작별을 하면 나는 다음 날 곧바로 여행길에 오른다. 단 하루도 지체할 수 없는 것은 심지 약한 내가 혹시 변덕을 부려 그대로 주저앉게 될까 봐 빡빡하게 스케줄을 짜 두었다. 장장 40여 일을 계획한 나 홀로의 여행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흥미로운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잔뜩 부푼 마음으로 여행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곁에서 지켜보던 딸 아이가 일침을 놓는다. "엄마 혼자 가는 여행은 절대 허락 못해. 어디든지 꼭 나랑 함께 가야돼, 알죠?" "무슨 그런 억지가 있냐, 이번엔 기필코 나 혼자 가고야 말겠어." 그러나 딸과의 신경전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음을 나는 예감한다. 어쩌자고 딸 아이는 청년의 시기인 지금까지도 껌 딱지처럼 찰싹 내 옆에 붙어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제 또래 친구들은 기회만 되면 어떻게든 부모의 집을 떠나려고 한다는데 내 딸 아이는 유독 집 밖으로 나가 독립하는 것을 절대 반대 또 반대하고 있다. 아이의 말로는 궁궐이든 초가든, 스테이크를 썰든 보리죽을 먹든지 간에 오직 엄마가 있는 공간은 행복이라고 달콤한 이유를 쏟아 놓는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엄마의 자리를 내려 놓고 홀가분해지고 싶을 때가 많다.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딸 애의 관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거다. 공교롭게도 우린 혈액형도 같고 식성과 분위기, 좋아하는 스타일도 꼭 닮았다. 게다가 정의로운 일엔 몸 사리지 않고 불 같은 성깔을 드러내는 것 조차 같다. 이런 딸과 줄곧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으니 충돌이 잦은 수 밖에. 그런데 금 쪽 같은 이번 여행에도 딸 아이는 나를 참견하고자 발 벗고 나섰다. 도대체 누가 엄마이고 누가 자식인지 모를 일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건 하나를 털어 놓겠다. 꽤 오래 전에 우린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갔었다. 엄마와 딸의 그림이 그렇듯 우린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는 하하 호호 거리며 아주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딸과 나는 대판 싸우고 말았다. 예약해 둔 멋진 워터 쇼를 재미있게 구경하고 난 뒤 나는 호텔 내부의 아름다움에 취해 딸을 놓쳐버렸고 또 딸은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밤새 헤 메고 다녀야 했던 것이다. 사건 이후 집에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잠도 따로 자고 밥도 따로 먹고 구경도 각자 하면서 입술을 악물며 남아있는 3박 4일을 참담하게 보냈다. 평소 오늘의 해가 지나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주던 나의 가르침은 스스로 밴댕이 소갈딱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게 된 셈이다. 일생 부끄럽기 짝이 없는 슬픈 기억이 되고 말았다. 지나친 관심이 간섭으로 느껴져 버거워하는 나와 늘 우물 곁에 놓아 둔 아이처럼 불안해 보이는 엄마를 보호하려는 딸과의 팽팽한 줄 다리기는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 그렇다면 번번히 참패를 당해 땅을 치는 한이 있더라고 똑 소리 나는 딸과의 여행을 시작해볼까 한다. 그러나 길을 떠나기 전 여행가방을 꾸리면서도 우린 에니메이션의 톰과 제리처럼 서로 아웅 다웅 하고 있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4-04 행복
무심코 책 한 권을 꺼냈는데 그 안에서 신문지 한 조각이 후두둑 떨어진다. 뭘까 하는 마음에 새삼 접힌 주름을 펴고서 천천히 읽어본다. "베풀면 행복해진다"는 칼럼이다. 사랑하는 분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의 행복을 혹시라도 덜 감사하면서 살아갈까 하는 염려의 마음으로, 일부러 만나는 날짜를 기다리며 건네주신 것이다. 몇 달이 지나갔지만 잊고 있었던 감동이 다시 가슴을 흔든다. 신문 속 칼럼의 연구 결과는, 가벼운 물질의 작은 베풂도 뇌를 자극하여 그 순간부터 움직임이 매우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남을 위해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다르며 - 걱정, 근심, 우울감 대신 환한 행복감으로 차 있으며 - 베푸는 사람들은 결국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단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은,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베푼다는 것은 지독한 중독이며 그 이유는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아니 남아있는 나날들도 사실은 모두가 행복해지려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늘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싶은 욕심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베푸는 마음보다 가진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훨씬 더 크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만족해하면, 곁도 보여지고 뒤도 돌아봐 지면서, 바로 그것이 행복을 가지는 가장 쉬운 지름길일 것인데도,,, 어떤 날은 유독 어깨 내리고 힘들어하면서 나보다 더 가진, 남의 행복만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곤 한다. 그렇게 오랜 반복의 날들을 습관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늦지 않게, 가슴이 떨리며 살아있다는 행복을 다시 느끼고 싶다. 베풀면서 행복해지련다. 비록 많이 모자라더라도, 작은 물질도 베풀고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도 보여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도 전하면서 다른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나도 같이 더 많이 행복해지자꾸나.
2018-03-07 위대한 인간 승리 – “사도 바울의 일생” 김종수
두껍고도 긴 "사도 바울의 일생"을 1년의 시간으로 책을 덮었다. 성경 속에 있었던 사도 바울이 어느 틈인가 나에게로 걸어 들어왔다. 크게 꾸짖지도 않았고 나무라지도 않았지만, 부끄러움에 눈시울을 적셨다. 태어나 요람에 쌓여서 아니 엄마의 탯줄에서부터 시작되어진 나의 신앙은, 습관처럼 아니면 어떤 죄의식의 부담으로 늘 나의 일상에 간신히 매달려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다. 굳이 고해하듯 하는, 억지의 죄를 생각해내고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 아니라,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는 스스로의 수치와 부끄러움에 흘린 작은 속죄일 것이다. 어쩌면 너무 깊은 신앙으로 인해서, 세상살이의 간편한 죄들이 오히려 더 커다란 구속으로 묶여질까의 두려움과, 모르고 짓는 죄에 대한 나름의 적당한 면죄부를 주고 싶었던 것일 거다. 아는 만큼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알아야겠다. 과연 무엇이 어떤 마음이, 이렇게도 긴 한 역사 속의 인물을 알리기 위해 수없이 많은 정보와 고증과 그리고 작가로서의 문체까지 더하며, 이토록 긴 책을 집필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참을 수없다. 깊은 신앙인으로서의 작가의 모습은, 개인적인 몇 번의 만남으로 처음 만나는 순간에 느꼈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난 후 더없는 새로운 존경심과 인내와 열정에 고개 숙인다. 짧은 문장 하나도 제대로 끝을 맺지못하고 서성이던 많은 시간들을 기억하는 나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나도 어쩌면 내 인생의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다. 커다란 어떤 계시와 불같은 성령으로 변화되어지는 모습은 아닐지라도, 어느 날 내게도 변화 아니 인생의 거센 설레임과 뜨거움과 욕심을 만났다. 누군가가 알아주는 그런 변화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마지막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것을 감히- 예술을 만났다고 하고싶다.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야하는 지는 알았다. 아는 만큼 살아간다고 아니 그렇게 살아진다고 믿기에 더욱더 많이 알려고 노력한다.
2018-03-07 쉼표가 머문 자리
그까짓 것 쯤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필수 영양제를 한 움큼씩 챙겨 먹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나는 은근슬쩍 혀를 찼다. 기본적인 비타민 C 조차 달 포에 한번 정도 먹을까 말까 하면서도 잔병치레 없이 튼튼하다고 자랑질을 하다가 큰 코를 다친 셈이다. 착한 일 한답시고 이웃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병문안을 다녀 온 뒤 감기 바이러스를 끌고 온 것이 화근의 시초였다. 이 후 염려했던 대로 할머니로부터 전달된 바이러스는 내 안에 침투하여 독살스럽게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목이 따끔거리더니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고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셨다. 하지만 나는 그 따위에게 절대 질 수 없다는 집념아래 맨투맨 전투전에 들어갔다. 우선 콩나물국에 매운 청양고추 팍팍 넣어서 몇 사발 들이키고 진한 쌍화탕으로 몸살기를 달랜 뒤 종합감기약을 꿀꺽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솜이불을 뒤집어 쓰고 억지로 땀 밖으로 녀석을 뽑아내고자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번엔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일주일을 못 버티고 병원에 실려갔다. 담당 의사는 유행성 독감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열이 오르면 또 다시 응급실로 달려 와야 한다며 문밖 출입을 삼가 하고 집에서 격리요양을 할 것을 당부했다. 그까짓 것으로 뭐 그리 유난을 떠나 싶더니 웬걸 몇 날이 못되어 나는 아예 침대에서 내려 올 수 없는 중환자가 되고 말았다. 덜컥 겁이 났다. 잊고 지냈던 인생에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오직 성공하기 위해 뛰고 달려온 길 뒷편엔 성숙한 모습은 찾아 볼 수도 없었고 행복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자리에 거룩한 그림자는 애당초 삭제돼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밝았던 주파수보다 낙담과 번민에 사이클을 맞춰 고독과 적막으로 낭비해버린 시간들이 엄청 슬펐다. 또 다시 한 주가 흘렀다. 이젠 뭔가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인생은 딱 두 갈래뿐임을 생각했다. 믿고 가느냐 안 믿고 가느냐에 달려 있기에 속히 심각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마침내 "에스더는 이미 회복되어 건강해졌노라" 고 외치며 나는 내 영혼에게 멋진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급격히 하강하고 있던 병세는 신기하게도 돌연 상승곡선을 탔다. 폭풍 속에서 추락하던 비행기가 그 모진 바람을 가르고 다시 하늘로 역 비상하듯 지쳐 있던 나의 세포들이 명령에 따라 활기차게 제 역할을 시작한 것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슈나벨은 "내가 치는 음표는 다른 피아니스트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음표 사이의 정지, 바로 그곳에 예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삶의 쉼표가 머문 자리 그 곳에 예술이 존재한다면 호되게 앓고 일어난 나의 변신은 참말로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나는 두 가지를 선물로 받았다. 첫 번째는 내 안에 장전돼 있었던 걱정과 미움과 상처의 핀들을 안전하게 뽑아낸 일이다. 마치 클리어한 대나무 속처럼 말이다. 또 하나는 부잣집 마나님의 넉넉했던 나의 풍채가 쭉쭉 빵빵 'S'자의 섹시한 몸매로 탈바꿈한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내가 나한테 홀딱 반했을 정도다. 고치 속의 애벌레가 껍질을 벗어내고 호랑나비가 되듯 욕심의 옷을 훌훌 벗어 던진 나는 이 아름다운 봄날 나비가 되어 푸른 창공을 가볍게 날아오른다. 그리고 못된 감기부대를 송두리째 꽁꽁 묶어서 하늘까지 끌고 올라가신 사랑하는 내 이웃친구, 스웨덴 할머님의 명복을 빈다.
2018-02-07 사랑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다시 사랑이라는 뜻이 알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찾아본 사전에서의 뜻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며 또 보고 싶어하는 열렬한 마음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강아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 그대로- 자꾸만 보고 싶고, 곁에 없음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하루라도 못 보는 날은 비릿한 살 내음도 어느덧 그리워진다. 차가운 겨울 해가 너웃하며 넘어간다. 낡은 지붕과 마당에 한가득 쌓여있는 낙엽과 세월에 취한 듯 불그스레한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내 곁에, 털북숭이 강아지도 제법 심각한 얼굴로 하늘을 보고 있다. 아침에 데려다 놓고 저녁이면 데려가는 아들의 강아지이다. 온종일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오직 나 하나만 세상에 있는 듯, 입 맞추고 눈 맞추면서 온갖 사랑의 표현을 해준다. 강아지에게는 곁에 있는 내가, 그때의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며 우주인 것이다. 문득 이 강아지를 바라보며 사랑을 되돌아본다. 누구에게나 어느 하나 그 무엇이든, 절대적이며 무조건 저절로 내가 낮추어지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욕심내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가 요구하는 구속을 하지 않으며 언제나 베푸는 마음과 넓은 자유를 주는 것들. 그것이 진정 사랑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나만 바라보며 나만 사랑하는 그 강아지는, 저녁 끝 무렵에 돌아온 아들의 "집에 가자"는 한마디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따라나서며 사라져 간다. 그렇게 그 사랑도 매일 밤 끝난다…..
2018-02-07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바쁘다. 정말 되게 바쁘게 산다. 웬일인지 나이 들면서는 일 욕심이 더 많아졌다. 자진해서 오버타임까지 찾아내는 나를 향해 미국인 직장 동료들은 한국사람은 부지런하다 못해 강한 민족이라는 말을 한다. 질투인지 아님 부러움인지 잘 모르겠지만 툭하면 결근하는 그들과는 달리 어쩌다가 몸이 아프더라도 끝내 주어진 책임을 완수 하려는 나의 근면함에 회사측은 열렬한 박수를 보내준다.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소띠 도 아닌데 왜 그토록 일에만 몰두하며 사느냐"고. 나는 지체 없이 대답한다. "그저 일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라고. 아니 솔직히 재미를 넘어서서 일할 수 있는 내가 나 자신한테 참으로 고맙다. 나 스스로 기특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이 낯 설은 이민의 땅에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매끄럽지도 못한 영어 실력으로 달러를 벌어 잘 사는 것이 대견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예쁘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회사를 땡땡이 쳤다. 이유는 단지 비가 와서다. 이런 날엔 나는 꼭 그 찻집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창문 넓은 찻집에 앉아 유리창에 뿌려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것은 여간 한 행복이 아니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작은 물방울들이 또르르 풀잎의 알집 속으로 굴러 떨어 지는 것도 마냥 신기하고 굵은 비와 가는 비의 강약의 조화로움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그리고 마침내 투명한 유리 안으로 초대된 빗방울과 커피 향의 하모니는 절정에 다달음을 느낀다. 와 우, 바로 이 맛이다. 이런 매력과 마력에 빠져 나는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무한한 행복에 젖는다. 애타게 기다릴 님과 임이 없어서 좋고 온 종일 카페인만 마셔도 속이 쓰리지 않아서 즐겁다. 오늘까지 원고 마감이라는 월간지측의 독촉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마음 편함이 다행이고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진 것까지 안심이다. 문득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인디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가끔씩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나의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뒤를 지켜보는 것' 이라고 한다. 우리도 인디언처럼 내 안에 있는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또 내가 달리는 속도는 적절한 것인지 한번쯤 뒤돌아보면 좋겠다는 메시지였다. 내 안에 내가 충분히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한 오늘, 나는 아주 잘 놀았다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러나 남은 숙제 하나는 오늘 밤 안으로 약속한 원고를 제출하는 일이다. 부담이 되지만 돈도 안 되는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내 안에 있는 다른 나와 공감하고 싶어서다. 공감한 그 소통으로 많은 사람을 얻어 친하게 잘 지냈으면 싶기에 늦은 시간 나는 컴퓨터를 연다. 그리고 오늘의 일기노트에는 '커피랑 완전 행복했음' 이라고 적는다.
2018-01-05 ENTER
유독 신앙심이 투철한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신년초가 되면 어김없이 신(神)을 바꾼다. 매번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면서까지 용하디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 다닌다. 하지만 단 한번도 속 시원한 답변을 들어보지 못하고 오히려 혹부리 영감처럼 커다란 근심 덩어리를 매달고 돌아오곤 한다. 그리고는 가정에 악운이 끼었다는 점술인의 말을 곱씹으며 새로운 한 해를 힘겹게 걸어간다. 그런 그녀의 고운 얼굴은 일년 내내 벌레를 씹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도 한때는 인생이 영화처럼 예고편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재빨리 마음을 바꾸었다. 막상 그렇게 된다면 예정된 인생에 꼼짝없이 질질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녀가 훌륭한 남편과 똑똑한 아이들, 넉넉한 재정과 멋진 미모까지 갖췄지만 왜 그토록 미친 듯이 점을 치러 다니는지 잠시 생각해 봤다. 단정하건대 마음이 온통 허해서 그렇다. 심리 상태가 뒤죽박죽인 그녀의 내면엔 왜 사는지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없기에 상황에 따라 자기가 믿었던 믿음까지도 홀드하고 본인의 입맛에 따라 다른 신을 골라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내면이 정돈 되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 당기고 있는 무당과 역술 인이2016년 언론 자료에 의하면10년 만에 2배로 증가, 무려 100만 시대에 돌입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2012년부터 대한 경신 연합회는 ' 무속심리상담사 자격시험'을 시행했다고 하니 나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귀신을 섬겨서 길흉을 점치고 그 결과에 따라 예언과 질병을 치유하는 것으로 굿판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 요즘 세태로 젊은 취업준비생, 주부, 정치인, 공무원이 다수란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매 해 그랬던 것처럼 '대박 터지는 꿈'은 이제는 접었으면 좋겠다. 이미 받은 복을 헤아려 복을 나눠 주기에 동분서주 했으면 한다. 만사형통도 그리고 어떤 요행도 기대하지 말고 그저 정직하고 밝은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보기로 하자. 뛰고 달리는 우리 앞길에 예기치 않은 빨간 신호등이 켜졌을 때는 지혜로움과 인내로 다음 신호등을 기다리고 초록 불이 들어왔을 때는 전투자세를 갖추고 용수철처럼 앞으로 돌진하자. 그리고 노란 신호등 앞에 섰을 때는 급한 마음을 접고 겸허하게 자기를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갖자. 그리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착각하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찌 귀하고 귀한 자신의 인생항로를 고작 잡신이 일러주는 사주풀이와 점으로서 결정 하는가 말이다. 바라건대 당장의 해 갈음에 속아 가짜 모조품의 기쁨에 사기 당하지 않길 바란다. 담배 맛을 아는 사람은 결코 니코틴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아예 처음부터 그 일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 컴퓨터에는 ENTER 키가 있다. 2018년을 맞이하여 쓸데 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를 결단했다면 지금 당장 마음의 ENTER 키를 힘차게 누르자. 엔터를 치는 순간 당신이 선물로 받은 새로운 365일은 상황에 상관없이 화이팅 이며 내면 세계는 잘 정돈된 행복과 기쁨이 넘쳐 날 것이다.
2018-01-05 새해 감상 (感想)
새로운 해가 또 왔다. 스스로 말해준다, 점점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고 있다고. 눈가의 주름은 깊어져 가고 가끔 해야 하는 일들을 깜박깜박 잊어버려 가며 나이를 하나씩 쌓아가지만, 더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다고 믿으련다. 청춘의 반질거리며 눈부시고 아름다운 어쩌면 손끝만 닿아도 쨍하며 소리가 날 것 같은 팽팽한 모습보다, 지금의 편안한 주름과 빈틈이 보여지는 모습이 훨씬 더 이쁘다고, 역시 믿으련다. 삶이라는 걸 커다란 원으로 그려보며, 새로운 해를 맞아들이면 조금씩 그 가운데로 - 자신에게로 다가가고 있다고 상상한다. 끝의 넓은 곳에서 차츰차츰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인연을 맺고 살다, 어느덧 가운데의 점 하나로 다가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다. 오랜 세월 안에서 많은 이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기쁨과 상처와 사랑과 후회로 남아있지만, 여전히 뜨거운 열정에 가슴을 열면서 더없이 자신에게 열중하는 이를 만나면, 어느새 전염되어 다시금 뭔가를 꼭 해야 할 것 같아 새롭게 마음이 설레인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 너도 약해지지 마" 일본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가 98세에 여전히 꿈을 꾸어가며 언젠가 다다르는 자신의 끝자락과 멀지 않은 자리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그렸고 용기를 전해준다. 그렇게 나도 한참의 세월을 걸어가고, 무한한 상상 놀이를 하고 멋진 나를 꿈꾸며, 내게로 가까워진다. 결코 가볍지 않은 적당한 인생의 무게와 스스로가 측정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지혜가 더해지니 훨씬 더 많이 행복해진다, 포기가 아닌 적당한 화해로. 나이와 행복의 감정이 서로 어깨동무해가며 나란히 걸어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새해의 또 하나의 무게가 들어가면, 우리는 그만큼 더 좋은 걸 하나씩 얹어가는 것이라 믿으련다.
2017-12-06 성장
아직도 자란다. 여전히 조금씩 자라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내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조용히 안도한다. 오늘을 건넜으며 또 내일의 다리를 건너갈 거라고. 그러면서 안다, 난 세상에 하나뿐이고 나의 삶도 하나이지만 그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어느 날, 계속되는 출혈에 놀라 갑자기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좋지 않은 상상을 하고 또 죽음을 생각해보며 나를 뒤돌아보는 며칠이 있었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을 법한 일인데도, 막상 나에게 닥쳐보니 무섭고 두렵고 또 어느 누구도 대신해서 함께 기다려주지 못하는 철저한 혼자만의 초조함이었다. 무엇을 정리하며 누구를 제일 먼저 찾으며 어떻게 떠나는 것이 가장 최선일지 생각하면서, 더 잘하지 못한 후회와 어쩌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새로운 욕심도 떠올랐다. 그러면서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주위의 모든 것에 미안했다. 다시 아무런 일 없이 모든 것이 잘 되어준다면 마음껏 사랑하고 또 무엇보다 착하게 살 거라고 약속했다. 일주일 후, 물론 지나친 걱정과 상상으로 웃으며 끝나는 결과였지만, 그 며칠 동안의 삶의 속도는 느렸고 지금은 다시 일상의 보폭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또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며 새롭게 자라는구나 하는 절절한 감사함을 가졌고, 산다는 것은 힘들거나 기쁘거나 그 무엇이 다가오든, 땅에 두발 붙인 체 스스로의 보폭을 맞추면서 가는 것이라 배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래도 끝없이 사랑하라고 한다. 그 사랑은 유통기한 아니 유효기간이 필요하지 않으니 그냥 오래오래 사랑하면 된단다. 사랑도 내게 맞으면 백년도 천년도 사랑하면서, 성장하는 것에 끝이 없는 거처럼 그렇게 하루를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2017-12-06 소원을 말해 봐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이 창문을 세차게 후려치더니 곧 바람까지 합세해 큰 나뭇가지들이 힘 없이 툭 부러져나간다. 잿빛 하늘엔 찢겨진 잔해들이 풍선처럼 나부끼어 정신마저 사납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이곳 캘리포니아의 우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물이 부족한 이 지역의 단비를 두 손 들고 환영해야 하련만 나는 그다지 반갑지가 않다. 이처럼 추운 날엔 더욱 그들 생각에 마음이 시리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줄기차게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끊어 놓을 수는 없을까 하는 안타까운 싶은 심정으로 나는 자동차에 오른다. 오늘은 DVC 근처 공사장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평상시 눈 여겨 봐둔 건물의 구석진 곳에서 어렵지 않게 사람을 만났다. 예상대로 비에 흠뻑 젖어 있는 사람은 비 바람의 냉기에 온 몸을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준비해간 침낭을 풀어 그를 감싸주고 따뜻한 음료와 빵을 손에 들려 주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몸을 흔들면서도 순식간에 음식을 먹어 치운 그는 다시 손을 내민다. 또 다른 양식꾸러미를 건네준 뒤에야 나는 자리를 뜬다. 등 뒤로 고맙다고 외치는 인사가 민망하고 미안해서 더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그와 멀어진다. 곧 다른 장소에서도 사람을 만났다. 신발이 없는 그녀의 맨발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두툼한 수면 양말을 신기려는데 부풀어난 발등 땜에 양말이 잘 껴지지 않는다. 억지로 양말을 신기고 급한 대로 내 목도리를 풀어 두 발을 감쌌다. 그리고 낡아서 구멍이 난 그녀의 침구 위에 새 이불을 넣어주고는 돌아섰다. 발걸음이 천근 같다.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몇 차례 동네 주변을 더 살핀 후에야 나는 집으로 향했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어져 자동차의 윈도우 브러시가 소용이 없을 정도다. 오늘은 왜 그런지 쏟아져 내리는 비처럼 내 가슴에도 그렇게 비가 흐른다. 아마 몇 해 전의 그 일이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다. 밤새 내린 비는 일요일 아침까지도 그칠 줄을 몰랐다. 평소 냉장고를 채워놓지 않고 사는 습관으로 가족들에게 먹일 양식이 없음을 발견한 이른 아침 나는 부랴부랴 마켓으로 향했다. 마켓에 도착 후 파킹을 하려는데 자동차 불빛 속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팔짱을 낀 채 공처럼 뭉쳐 있는 모양새로 보아 밤새 추위와 싸운 듯싶었다. 갑자기 걱정이 되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Hello, Hello, Are you okay?" 그러나 몇 번을 불러봐도 미동이 없다. 덜컥 겁이 났다. 그때 마켓에서 장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어떤 행인이 내게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 행인은 침착하게 신고를 했고 곧 응급차가 달려왔다. 그리고 움직임이 없는 그 사람을 쓰레기처럼 플라스틱 백에 둘둘 말아서는 어딘가로 실어갔다. 그 날 아침의 충격 이후 나는 마음의 시선을 바꾸게 되었다. 어떻게든 더 찬란해지길 꿈꾸던 나 개인의 안목에서 관심 밖의 이웃을 이해하며 염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예전 같으면 내 주머니에 돈 채우기에 급급했으나 지금은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지갑을 활짝 여는 일에 쏠쏠한 재미가 있다. 2017년 올 한 해의 마지막 달력 앞에 서서 나는 불과 얼마 전에 발생했던 사건들을 되짚어 본다. 음악공연장에서의 총격사건과 교회에서 예배 중 끔찍한 살인총격,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이 지역의 대형화재, 그리고 '묻지 마 ' 사건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를 실감한다. 나는 그저 어제처럼 오늘 하루도 달달 한 도넛 한 개와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즐기고 출근하여 열심히 일하다가 저녁나절 무사히 집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얼큰한 김치찌개에 삼겹살을 깻잎에 싸 먹을 수 있는 평안을 바란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의 지진 지대에 살고 있는 내가 언제 어느 때 세상과 작별할지 모르기에 ' HERE AND NOW ' 지금 여기 내 자리에서 넉넉히 퍼주고 충분히 사랑하여 후회 없는 인생의 발자국을 남기고자 한다. 문득 조금 전에 만났던 발에 동상이 걸린 여인네가 마음에 몹시 걸린다. 급히 핸들을 돌려 그 장소로 달려갔다. 아! 그러나 웬일인지 그녀가 기거했던 자리는 말끔히 치워져 있다. 그녀가 새 부츠를 신고 있는 내 발을 얼마나 부럽게 응시하고 있었는지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낌 없이 나눠주기를 희망한다던 나는 이처럼 여전히 내 것에 집착해서 절호의 찬스를 종종 놓치고 만다. 이만큼 살았으면 제발 이제는 좀 불필요한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하건만… 더 잘 훈련 된 기쁨과 행복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영영 한 감격을 선물하고픈 것, 그것이 곧 새로운 해를 맞이할 나의 바램이다.
2017-11-01 달빛 소나타
유난히 잠 못 드는 밤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쓸쓸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한 이런 날에 전 같으면 깔끔하게 소주 한 잔으로 고독을 마셔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도 없다. 알코올이 나를 거부하기도 하고 생각을 마비시키는 거짓음료가 완전 싫어졌기 때문이다. 보름날이 가까운 밤 하늘은 금빛과 회색의 중간이다. 그 빛이 창문 밖의 아름드리 나무에 스며 들어 해리포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상야릇한 장엄한 분위기 속으로 나를 이끈다. 뭔지 모를 그 느낌은 점점 소나타의 악장으로 연결되어 내 마음을 몰입시키려 한다. 그러나 잠시 잊고 있었던 직장에서의 일이 갑자기 떠 오른다. 환상이 깨지고 말았다. 오늘 스테파니와 다퉜던 일로 마음이 영 찜찜하다. 의견 충돌의 원인제공은 그녀가 먼저 시작 했지만 단어 선택을 잘못해 소견머리 없음을 보인 것은 참을성 없는 나의 부족한 처사였음이 후회된다. 이제는 웬만큼 이방인의 삶에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여전히 이곳 이민의 땅에서 다른 민족과 겨루어 살아 가는 일이 왜 그리 고달픈지. 그러나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내일의 출근을 위해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창문의 커튼을 닫으려는 순간 달빛 사이로 옆집에 사는 '챙'의 자동차 문이 열리고 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 부품 사업을 하는 그가 출장을 다녀온 듯하나 자동차에서 물품을 꺼내고 있는 모습은 왜소한 그와 많이 다르다. 스포츠 머리에 울퉁불퉁 건장한 몸집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개의 박스를 바닥에 내려 놓는 것으로 보아 밤 손님이 침범한 것으로 판단 된다.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벌렁벌렁 뛴다. 착하고 부지런한 챙의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하는데 내 몸은 그만 얼어버렸다. 그 순간 작업을 끝낸 듯 한 사람이 우리 집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때에야 절대 절명의 위급한 사태임을 파악한 나의 몸은 이미 중국배우 성룡처럼 순식간에 허공을 날라서 현관문을 열어 젖히고 있었다. "야, 이 도둑 놈아. 꼼짝 마" 전혀 예기치 않은 출현에 놀란 녀석은 내 자동차 문을 열려다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이때였다. 순발력 빠른 나는 날렵한 동작으로 잔디용 수도를 틀어 세찬 물줄기를 녀석에게 거세게 쏟아 부었다. 졸지에 물 벼락을 맞은 그가 어기적거리며 일어나더니 뒤뚱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도 놓칠세라 그의 뒤를 발 빠르게 쫓아가며 힘을 다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거기 서. 당장 서란 말 야, 이 나쁜 놈아." 고요한 밤에 적막을 깨는 천둥 같은 소리에 그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나는 단 한 명만을 쫓고 있었는데 도망치고 있는 녀석은 도합 네 명이었다. 아! 그때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온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곧 방향을 바꾸어 집을 향해 뛰었지만 야속하게도 발바닥은 제자리 걸음이다. 이후 어떻게 집까지 돌아왔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야 내 모습을 살펴보니 가관이 아니다. 맨발은 찢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풀어 헤쳐진 잠옷에선 땀이 물이 되어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산발한 긴 파마머리는 온통 얼굴을 뒤덮었고 손에는 다 닳아빠진 빗자루까지 들려 있었으니 그들이 혼비백산 줄행랑을 칠만도 했다. 한국 말을 전혀 알리 없는 그들이 무덤에서 살아나온 것 같은 동양귀신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선 목숨을 걸고 뛰었을 게다. 잠시 후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차는 무려 다섯 대나 되었다. 리포터를 작성하던 경찰이 진지한 어조로 나에게 묻는다. "혹시 우리와 손잡고 일해 보진 않겠소?" 잠시 후 소나타의 연주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달빛은 더욱 총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