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년 만에 말끔한 자태 드러낸 ‘창경궁 자격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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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중종 때 만든 물시계 국보 229호
ㆍ물 받는 청동 항아리 표면 복원
ㆍ제작 참여자 4명 이름 추가 확인
ㆍ‘승천하는 용’ 문양도 3D로 복제
세종 때(1434년) 제작한 자격루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1536년(중종 31년) 다시 제작한 창경궁 자격루의 몸통 부분만 남아 국보(제229호)로 지정됐다. 최근 3D 스캔과 초음파 진동처리 등을 활용한 보존처리를 통해 몸통(수수호) 표면에 새겨진 용문양을 평면으로 펼쳤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4명의 제작자 이름을 읽어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제공
[경향신문] 승천하는 용 문양이 확연해졌고, 보이지 않던 제작자 이름까지 다 찾아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2일 “창경궁 자격루(물시계·국보 제229호)를 제작 484년 만에 보존처리 작업을 벌여 말끔히 복원했다”고 밝혔다. 자격루는 1434년(세종 16년) 세종이 장영실 등에게 영을 내려 제작한 조선의 표준시계다. 백성들에게 제때 농사철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었다. 물시계(아날로그)의 물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다시 일정한 시차로 구슬과 목각인형을 건드려 자격장치(디지털)가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사람의 수고 없이 물의 증감에 따라 자동으로 시각을 알려준 물시계였다. 하지만 세종 때의 것은 사라졌고, 1536년(중종 31년) 다시 제작한 자격루 몸통 부분인 파수호(물을 보내는 청동 항아리) 3점, 수수호(물을 받는 원통형 항아리) 2점만 남았다.
2018년 10월부터 1년7개월 동안 국보 229호 자격루의 복원처리 작업을 벌인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수수호에 새겨진 명문에서 1536년 자격루 제작에 참여한 12명 중 지금까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없었던 4명의 이름을 찾아냈다. 이공장(李公檣·?~?), 안현(安玹·1501~1560), 김수성(金遂性·?~1546), 채무적(蔡無敵·1500~1554)이다. <중종실록> 등에 따르면 이공장은 자격루 제작 시기에 사복시정(정3품), 안현은 사헌부 집의(종3품), 김수성은 사헌부 장령(정4품), 채무적은 장악원(궁중음악 및 무용 담당 관청) 주부(종6품) 등의 직함을 맡고 있었다. 특히 중종은 문신이지만 천기에 밝은 안현과 김수성에게 천문관측을 전담시키는 전교를 여러 차례 내렸다. 이 중 김수성은 간의(簡儀·천체관측기기)와 규표(圭表·막대기의 그림자로 24절기를 파악하는 관측의기)를 수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임금(명종)으로부터 말 1필을 받기도 했다. 장성윤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연구관은 “초음파 진동의 미세흐름을 이용해 표면의 오염물질을 제거한 끝에 보이지 않던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또 수수호 표면의 ‘하늘로 솟아오르는 용 문양’을 3차원 입체(3D) 스캔과 실리콘 복제방법으로 펼쳐봤다. 그 결과 수수호 왼쪽과 오른쪽 용 형태가 대부분 같은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얼굴, 수염이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용 문양에 겹쳐진 구름 문양이 관찰됐다. 파수호 표면에는 자격루 제작 시기를 알려주는 ‘가정병신유월 일조(嘉靖丙申六月 日造)’가 세로로 새겨져 있다. ‘가정’은 명나라 가정제의 연호(1522~1566년)이며, ‘병신’은 자격루가 완성된 1536년을 가리킨다. 이번 파수호 비파괴분석 결과 검은색 명문에서는 은(銀) 성분이 다량 검출됐다. 은입사(금속 그릇에 은실을 이용하여 새기는 문양기법)된 명문은 부식 때문에 검게 보였지만 보존처리를 통해 은백색의 본래 빛을 찾게 됐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미 15~16세기에 조선은 자동제어시스템에 의해 아날로그와 디지털 변환기로 접속되는 디지털 시계를 발명했다”면서 “사람의 수고 없이 농사와 밀접한 절기를 자동으로 알려준 선조들의 경천애민 정신이 녹아 있다”고 밝혔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ㆍ물 받는 청동 항아리 표면 복원
ㆍ제작 참여자 4명 이름 추가 확인
ㆍ‘승천하는 용’ 문양도 3D로 복제
세종 때(1434년) 제작한 자격루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1536년(중종 31년) 다시 제작한 창경궁 자격루의 몸통 부분만 남아 국보(제229호)로 지정됐다. 최근 3D 스캔과 초음파 진동처리 등을 활용한 보존처리를 통해 몸통(수수호) 표면에 새겨진 용문양을 평면으로 펼쳤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4명의 제작자 이름을 읽어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제공
[경향신문] 승천하는 용 문양이 확연해졌고, 보이지 않던 제작자 이름까지 다 찾아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2일 “창경궁 자격루(물시계·국보 제229호)를 제작 484년 만에 보존처리 작업을 벌여 말끔히 복원했다”고 밝혔다. 자격루는 1434년(세종 16년) 세종이 장영실 등에게 영을 내려 제작한 조선의 표준시계다. 백성들에게 제때 농사철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었다. 물시계(아날로그)의 물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다시 일정한 시차로 구슬과 목각인형을 건드려 자격장치(디지털)가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사람의 수고 없이 물의 증감에 따라 자동으로 시각을 알려준 물시계였다. 하지만 세종 때의 것은 사라졌고, 1536년(중종 31년) 다시 제작한 자격루 몸통 부분인 파수호(물을 보내는 청동 항아리) 3점, 수수호(물을 받는 원통형 항아리) 2점만 남았다.
2018년 10월부터 1년7개월 동안 국보 229호 자격루의 복원처리 작업을 벌인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수수호에 새겨진 명문에서 1536년 자격루 제작에 참여한 12명 중 지금까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없었던 4명의 이름을 찾아냈다. 이공장(李公檣·?~?), 안현(安玹·1501~1560), 김수성(金遂性·?~1546), 채무적(蔡無敵·1500~1554)이다. <중종실록> 등에 따르면 이공장은 자격루 제작 시기에 사복시정(정3품), 안현은 사헌부 집의(종3품), 김수성은 사헌부 장령(정4품), 채무적은 장악원(궁중음악 및 무용 담당 관청) 주부(종6품) 등의 직함을 맡고 있었다. 특히 중종은 문신이지만 천기에 밝은 안현과 김수성에게 천문관측을 전담시키는 전교를 여러 차례 내렸다. 이 중 김수성은 간의(簡儀·천체관측기기)와 규표(圭表·막대기의 그림자로 24절기를 파악하는 관측의기)를 수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임금(명종)으로부터 말 1필을 받기도 했다. 장성윤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연구관은 “초음파 진동의 미세흐름을 이용해 표면의 오염물질을 제거한 끝에 보이지 않던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또 수수호 표면의 ‘하늘로 솟아오르는 용 문양’을 3차원 입체(3D) 스캔과 실리콘 복제방법으로 펼쳐봤다. 그 결과 수수호 왼쪽과 오른쪽 용 형태가 대부분 같은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얼굴, 수염이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용 문양에 겹쳐진 구름 문양이 관찰됐다. 파수호 표면에는 자격루 제작 시기를 알려주는 ‘가정병신유월 일조(嘉靖丙申六月 日造)’가 세로로 새겨져 있다. ‘가정’은 명나라 가정제의 연호(1522~1566년)이며, ‘병신’은 자격루가 완성된 1536년을 가리킨다. 이번 파수호 비파괴분석 결과 검은색 명문에서는 은(銀) 성분이 다량 검출됐다. 은입사(금속 그릇에 은실을 이용하여 새기는 문양기법)된 명문은 부식 때문에 검게 보였지만 보존처리를 통해 은백색의 본래 빛을 찾게 됐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미 15~16세기에 조선은 자동제어시스템에 의해 아날로그와 디지털 변환기로 접속되는 디지털 시계를 발명했다”면서 “사람의 수고 없이 농사와 밀접한 절기를 자동으로 알려준 선조들의 경천애민 정신이 녹아 있다”고 밝혔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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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4-23 22:57
ssamdi님의 댓글
ssamdi
세종대왕 최고. 한국인들의 천재성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