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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밑천 다 드러났다, 식물기구 전락한 유엔·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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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린폴리시(FP)는 지난 8일(현지 시각) 유엔 등 국제기구들이 코로나 상황에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뒤 파리기후협약 등에서 전격 탈퇴하면서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긴 하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미국의 리더십이 사라진 뒤 전 세계가 리더십의 진공 상태로 빠져들었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리처드 고완 국제위기그룹 유엔국장은 FP에 "이번 위기는 미국도 중국도 유엔체제를 이끌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미국은 코로나 책임을 중국으로 돌리는 옹졸함을 보였고, 중국 또한 위기에 대처하는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로 안보리가 최근 유엔 사무총장 주도로 코로나와 관련한 비공개 브리핑을 열려고 했던 시도는 중국에 막혔다. 중국은 자신들의 책임론이 커질까 봐 코로나가 전 세계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강대국들이 답답한 행보를 보이자 발트해 소국으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에스토니아가 "코로나 팬데믹은 국제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엔 안보리는 회의를 온라인으로 여느냐 마느냐를 놓고도 결론을 제대로 내리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러시아가 회의장에서 만나자고 고집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유엔의 모습은 과거 대규모 질병 발발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로 서아프리카에서 1만명 이상이 사망했을 때 오바마 미 대통령은 안보리를 통해 유엔 평화유지군과 미군이 에볼라 차단을 위해 활동하도록 했다. 이후 전 세계에서 의사와 연구자들이 서아프리카로 파견돼 에볼라 퇴치에 나섰다. 2000년 에이즈가 아프리카에 확산되자 안보리는 에이즈를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평화유지군을 통해 콘돔을 배포하는 등 공동 대처에 나섰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국제적 리더십의 진공 상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우왕좌왕하도록 만드는 데 일조했다. 미국이 국제기구에 관심을 줄이면서 그 빈틈을 파고든 것은 중국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2017년 중국의 지원을 받아 선출됐다.

중국은 코로나 사태 초기 WHO를 이용해 코로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도록 만들었다. WHO는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사람 간에 전염은 없다'는 중국 정부의 거짓 주장을 되풀이했고, 결정적인 예방 시점을 놓치게 만들었다고 미국의 시사지 애틀랜틱은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WHO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WHO에 대해 '중국 편향성'과 '정보 은폐'를 이유로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의 자금 지원 중단은 미국 내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WHO로 돌리기 위한 측면이 컸다.

이런 강대국의 정치게임에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WHO에 의료 지원을 의존하는 가난한 나라 국민들이라고 애틀랜틱은 보도했다. WHO가 현실적으로 빈국들에 의료지원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유일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10국엔 인공호흡기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의료 사정이 열악하다. 남수단의 경우 부통령이 5명이지만 인공호흡기는 4대뿐이다. 아무리 중국과 WHO가 밉다고 해도, 미국이 지원을 끊으면 결국엔 힘없는 저개발국 국민들만 죽어간다는 것이다.

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이번 코로나 위기는 전환점이 아니라 (기존의 흐름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미국의 지도력은 쇠약해지고, 국제적 협력은 더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는) 무정부적인 사회가 되고, 세계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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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4-1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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