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목사 가톨릭 개종 체험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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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계약을 맺는 것이며, 바로 성사이고, 세례를 포함하는 계약갱신이라고 신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쳤는데 모두 그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저는 요한복음 6장의 참으로 풍요로운 말씀이 특별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저는 그 복음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10가지의 다른 각도로 그 대목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서에 대한 해설서를 모두 구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은 비유적으로 해석하라고 배웠는데 예수님은 상징을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육체와 피는 그분의 피와 몸에 대한 상징에 불과하다고...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는 그런 해석은 아무 설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씀을 들은 유태인들이 모두 떠났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수 만 명이 예수님께서 “내 살은 참된 음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갑자기 대부분이 그분 곁을 떠났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저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이라면, “잠깐, 나는 단지 비유로 설명했을 뿐이다.“ 라고 하실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던가요?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분은 열 두 사도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홍보요원을 고용해야겠다. 내가 그 사람들을 쫓아 버렸구나. 내가 오직 비유와 상징으로 말했다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듣겠느냐?”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기에 나는 너희에게 참된 진리를 가르쳤다. 이제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베드로는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예 수님, 당신은 아십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우리는 당신 말씀을 잘못 알아듣겠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요? 혹시 당신께서 우리에게 추천해 주실 랍비가 있으십니까? 이제 너무 늦었어요. 당신의 말씀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를 하지 못해도 우리는 다 믿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한다면 당신께서는 우리가 액면 그대로 그 말씀을 다 받아들이게 할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저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임을 장로교회 신자들도 깨닫게 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개신교 신자들에게 천주교인들처럼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의 만찬과 성찬식에 중점을 두고 알아본 결과, 예수님께서는 “계약”이라는 말을 공생활 중에는 사용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실 때까지 그 말씀을 유보하셨다가 “이것은 새로운 계약을 맺는 나의 잔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계약이 가족을 의미한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만들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새 계약을 하신다는 것은 새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당신의 새 살과 새 피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이셨습니다. 저는 초대 교회에서 왜 7백 여 년이 넘도록 아무도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해 논쟁을 하지 않았는지를 알았습니다. 모든 초대교회 교부들은 예외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성체안의 예수님의 현존을 믿고 가르쳤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도대체 어느곳을 선택해야 할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 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세미나에서 제가 예측하지 못했던 에피소드가 발생했습니다. 천주교신자였던 존이라는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이었던 트렌트 공의회에 대한 세미나 발표를 막 끝낸 후였습니다. 존은 한 시간 반이나 트렌트 공의회에 관한 것을 하고 싶은 대로 조명했습니다. 존은 그 들의 논쟁 중에 많은 것들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죠. 학생들이 몇 가지 질문을 할때 존이 내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제가 먼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당신은 루터가 두 가지 슬로건을 내걸었던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는 ‘믿음만으로’ 뿐 아니라 로마 가톨릭에 대항하여 두 번째로 ‘성경 만으로’도 내세웠지요. 그런데, 도대체 성경 어디에서 그런 말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제 질문입니다.”
저는 눈을 껌벅이며 존을 쳐다보았습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이전에 저는 교수님이 가장 곤란해 하는 질문을 하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질문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존, 그건 바보 같은 질문이야.”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존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럼 교수님이 바보 같은 대답을 해주시죠.” “좋아, 같이 노력해보지. 존, 디모데오 후서 3장 16 절이 열쇠예요.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이므로, 가르치고, 꾸짖고, 올바르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 유익해요.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런데 존이 다시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스캇 교수님, 그것은 성경이 옳은 것에 대한 영감이 있고 유익하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성경만이 영감을 받았다거나, 성경만이 그런 것들에 유익하다는 것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에겐 기도와 같은 다른 것들도 필요해요. 데살로니카 후서 2장 15절은 어때요?” “그게 뭐지?” “바오로는 데살로니카 사람들에게 자신이 말이나 글로 써 보낸 전통을 따르고 지켜야한다는 말이 적혀 있어요.” 전 그 때 존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말했습니다. “그래, 존, 이 문제는 다음 주에 논의하기로 하고 이제 질의응답을 계속 진행하도록 하면 좋겠다.”
제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었는지 그들은 몰랐을 겁니다. 저는 차를 몰고 집을 향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하느님께 물었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전에는 제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지?... 왜, 나는 존에게 대답을 하지 못했는지를... 다음 날, 저는 미국 내의 신학자들과 교수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말한 ‘믿음만으로와 성경만으로’가 성경 어느 구절에 나와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서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라고 가르치고 있나요?“ 어느 신학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왜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십니까?” 저는 존이 제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그분에게 했습니다. “교수님, 그럼 당신이 저에게 어리석은 대답을 해주시겠습니까?” 그런 혼란 중에 있을 때, 제가 매우 존경하는 옥스포드 대학의 신학자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성경 안에서 ‘성경만으로’ 라는 단어를 찾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것은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정한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접근할 때 추정하는 것일 뿐이지요.”
그분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마치 크게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당혹스러워서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수님, 참 이상한 일이군요. 우리는 신자들에게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다니요? 그럼,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온 것이 성경에는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 말씀은 마치 그동안 속해 있던 가지를 잘라 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스캇 교수님,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다른 선택이 있나요?” 그렇습니다!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인 신학교수가 제게 말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당신이 천주교로 개종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 인가요?” “글쎄요. 아서 교수님, 나는 천주교로 가는 걸 고려해 본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믿는 진리의 기초와 기둥이 무엇인가요?” 신학교수가 대답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우리 모두에겐 성경이 진리의 기초이고 기둥이지요.” “아서 교수님, 그런데 왜, 디모데오 전서 3장 15절에서 진리의 기초와 기둥은 교회라고, 믿는 사람의 집이라고 말했나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분이 말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당신은 그 문제로 나를 함정에 빠트리고 혼란을 주는군요.” 그분에게 제 심정을 말했습니다. “아서 교수님, 지금 나는 여러 가지 문제로 함정에 빠진 것 같이 느껴져요.” “스캇 교수, 그러면 어떤 교회인가요? 교회는 많잖아요?” 저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 진리의 기초와 기둥이 되도록 도와주는 교회가 몇 개나 되나요? 제 말은 만약 당신이 우리가 진리의 기초와 기둥이 된다고 하는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우리와 당신을 돌아보세요.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가르치는 것을 듣게 되나요? 그런 것을 하는 곳이 얼마나 되나요? 제가 알기로는 오직 하나! 로마 가톨릭 천주교회예요. 그리스도가 세우신 교회라고 가르치고 설립된 지 2천년정도 됐고 거기서 주장하는 것이 디모데오 전서 3장 15절과 기분 나쁘도록 유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저는 제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제가 가르치는 세미나의 이사장인 스티브에게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사장이 식사 초대를 하는 것은 제가 천주교에 대한 것을 가르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약속 장소로 가면서도 그가 어떤 말을 할지 매우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사장은 제가 가르치는 과목이 매우 성황이고 학생들의 등록이 크게 늘어났다고 하며 이사회에서 저에게 신학교 학장을 맡기는 것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뜻밖의 소식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26살밖에 안된 저를 보고 신학교 학장을 맡아달라니… 이사장은 “우리는 당신이 원하는 과목을 잘 가르치도록 모든 지원을 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강사도 고용 . 스캇 교수님, 당신이 원한다면 신학박사 공부를 하시고 비용도 저희가 지불하겠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근처에 신학 박사 학위를 할 대학이 있나요?” 이사장은 “네, 카톨릭 대학교가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아니야, 나는 가톨릭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아.” 하고 나의 내심을 부정하면서 스스로 달랬습니다. 대답을 못하고 있는 저에게 이사장이 말했습니다. “교수님, 저희가 제시하는 신학교 학장직에 대하여 기도해보시겠어요?” 저는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스티브 이사장님, 아마도 저는 못하겠다는 대답을 드릴 거 같군요. 왜 그런지는 지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를 기다리고 있던 아내 킴벌리가 물었습니다. “학교 이사장이 무슨 말을 하던가요?” “나보고 신학교 학장이 돼 달라더군..” 킴벌리가 놀란 얼굴로 말했습니다. “스캇, 당신 지금 장난하는 거예요?” “아니…” “그럼, 뭐라고 대답했다구요?” “싫다고 그랬어.” 킴벌리가 놀란 음성으로 다시 말했습니다. “ 스캇! 잠깐 잠깐만… 지금 뭐라고 말했어요? 싫다니요? 왜, 학장직이 싫다고 했어요?”
“킴벌리, 나는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 학생들에게 무얼 가르쳐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성경이 가르쳐주는 게 뭔지 언젠가 예수님의 심판대에 섰을 때, 단순히… ‘예수님, 저는 스승들에게 배운 대로 가르쳤을 뿐입니다. 그들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 참되다고 보여주었고 저는 그들이 보여준 것을 신뢰해야만 했어요.’ 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 밖에는 모르겠어…” 킴벌리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꼭 포옹해 주었습니다. “스캇, 그런 점이 바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예요,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당신과 결혼했어요, 그렇지만, 우린 기도해야하겠지요” 그녀는 나의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이사장의 제안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성장하는 교회였고, 참 행복했던 그 교회의 목사직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복음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10가지의 다른 각도로 그 대목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서에 대한 해설서를 모두 구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은 비유적으로 해석하라고 배웠는데 예수님은 상징을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육체와 피는 그분의 피와 몸에 대한 상징에 불과하다고...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는 그런 해석은 아무 설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씀을 들은 유태인들이 모두 떠났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수 만 명이 예수님께서 “내 살은 참된 음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갑자기 대부분이 그분 곁을 떠났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저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이라면, “잠깐, 나는 단지 비유로 설명했을 뿐이다.“ 라고 하실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던가요?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분은 열 두 사도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홍보요원을 고용해야겠다. 내가 그 사람들을 쫓아 버렸구나. 내가 오직 비유와 상징으로 말했다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듣겠느냐?”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기에 나는 너희에게 참된 진리를 가르쳤다. 이제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베드로는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예 수님, 당신은 아십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우리는 당신 말씀을 잘못 알아듣겠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요? 혹시 당신께서 우리에게 추천해 주실 랍비가 있으십니까? 이제 너무 늦었어요. 당신의 말씀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를 하지 못해도 우리는 다 믿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한다면 당신께서는 우리가 액면 그대로 그 말씀을 다 받아들이게 할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저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임을 장로교회 신자들도 깨닫게 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개신교 신자들에게 천주교인들처럼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의 만찬과 성찬식에 중점을 두고 알아본 결과, 예수님께서는 “계약”이라는 말을 공생활 중에는 사용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실 때까지 그 말씀을 유보하셨다가 “이것은 새로운 계약을 맺는 나의 잔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계약이 가족을 의미한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만들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새 계약을 하신다는 것은 새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당신의 새 살과 새 피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이셨습니다. 저는 초대 교회에서 왜 7백 여 년이 넘도록 아무도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해 논쟁을 하지 않았는지를 알았습니다. 모든 초대교회 교부들은 예외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성체안의 예수님의 현존을 믿고 가르쳤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도대체 어느곳을 선택해야 할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 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세미나에서 제가 예측하지 못했던 에피소드가 발생했습니다. 천주교신자였던 존이라는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이었던 트렌트 공의회에 대한 세미나 발표를 막 끝낸 후였습니다. 존은 한 시간 반이나 트렌트 공의회에 관한 것을 하고 싶은 대로 조명했습니다. 존은 그 들의 논쟁 중에 많은 것들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죠. 학생들이 몇 가지 질문을 할때 존이 내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제가 먼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당신은 루터가 두 가지 슬로건을 내걸었던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는 ‘믿음만으로’ 뿐 아니라 로마 가톨릭에 대항하여 두 번째로 ‘성경 만으로’도 내세웠지요. 그런데, 도대체 성경 어디에서 그런 말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제 질문입니다.”
저는 눈을 껌벅이며 존을 쳐다보았습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이전에 저는 교수님이 가장 곤란해 하는 질문을 하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질문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존, 그건 바보 같은 질문이야.”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존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럼 교수님이 바보 같은 대답을 해주시죠.” “좋아, 같이 노력해보지. 존, 디모데오 후서 3장 16 절이 열쇠예요.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이므로, 가르치고, 꾸짖고, 올바르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 유익해요.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런데 존이 다시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스캇 교수님, 그것은 성경이 옳은 것에 대한 영감이 있고 유익하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성경만이 영감을 받았다거나, 성경만이 그런 것들에 유익하다는 것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에겐 기도와 같은 다른 것들도 필요해요. 데살로니카 후서 2장 15절은 어때요?” “그게 뭐지?” “바오로는 데살로니카 사람들에게 자신이 말이나 글로 써 보낸 전통을 따르고 지켜야한다는 말이 적혀 있어요.” 전 그 때 존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말했습니다. “그래, 존, 이 문제는 다음 주에 논의하기로 하고 이제 질의응답을 계속 진행하도록 하면 좋겠다.”
제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었는지 그들은 몰랐을 겁니다. 저는 차를 몰고 집을 향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하느님께 물었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전에는 제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지?... 왜, 나는 존에게 대답을 하지 못했는지를... 다음 날, 저는 미국 내의 신학자들과 교수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말한 ‘믿음만으로와 성경만으로’가 성경 어느 구절에 나와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서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라고 가르치고 있나요?“ 어느 신학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왜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십니까?” 저는 존이 제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그분에게 했습니다. “교수님, 그럼 당신이 저에게 어리석은 대답을 해주시겠습니까?” 그런 혼란 중에 있을 때, 제가 매우 존경하는 옥스포드 대학의 신학자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성경 안에서 ‘성경만으로’ 라는 단어를 찾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것은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정한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접근할 때 추정하는 것일 뿐이지요.”
그분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마치 크게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당혹스러워서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수님, 참 이상한 일이군요. 우리는 신자들에게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다니요? 그럼,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온 것이 성경에는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 말씀은 마치 그동안 속해 있던 가지를 잘라 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스캇 교수님,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다른 선택이 있나요?” 그렇습니다!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인 신학교수가 제게 말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당신이 천주교로 개종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 인가요?” “글쎄요. 아서 교수님, 나는 천주교로 가는 걸 고려해 본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믿는 진리의 기초와 기둥이 무엇인가요?” 신학교수가 대답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우리 모두에겐 성경이 진리의 기초이고 기둥이지요.” “아서 교수님, 그런데 왜, 디모데오 전서 3장 15절에서 진리의 기초와 기둥은 교회라고, 믿는 사람의 집이라고 말했나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분이 말했습니다.
“스캇 교수님, 당신은 그 문제로 나를 함정에 빠트리고 혼란을 주는군요.” 그분에게 제 심정을 말했습니다. “아서 교수님, 지금 나는 여러 가지 문제로 함정에 빠진 것 같이 느껴져요.” “스캇 교수, 그러면 어떤 교회인가요? 교회는 많잖아요?” 저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 진리의 기초와 기둥이 되도록 도와주는 교회가 몇 개나 되나요? 제 말은 만약 당신이 우리가 진리의 기초와 기둥이 된다고 하는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우리와 당신을 돌아보세요.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가르치는 것을 듣게 되나요? 그런 것을 하는 곳이 얼마나 되나요? 제가 알기로는 오직 하나! 로마 가톨릭 천주교회예요. 그리스도가 세우신 교회라고 가르치고 설립된 지 2천년정도 됐고 거기서 주장하는 것이 디모데오 전서 3장 15절과 기분 나쁘도록 유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저는 제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제가 가르치는 세미나의 이사장인 스티브에게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사장이 식사 초대를 하는 것은 제가 천주교에 대한 것을 가르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약속 장소로 가면서도 그가 어떤 말을 할지 매우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사장은 제가 가르치는 과목이 매우 성황이고 학생들의 등록이 크게 늘어났다고 하며 이사회에서 저에게 신학교 학장을 맡기는 것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뜻밖의 소식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26살밖에 안된 저를 보고 신학교 학장을 맡아달라니… 이사장은 “우리는 당신이 원하는 과목을 잘 가르치도록 모든 지원을 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강사도 고용 . 스캇 교수님, 당신이 원한다면 신학박사 공부를 하시고 비용도 저희가 지불하겠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근처에 신학 박사 학위를 할 대학이 있나요?” 이사장은 “네, 카톨릭 대학교가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아니야, 나는 가톨릭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아.” 하고 나의 내심을 부정하면서 스스로 달랬습니다. 대답을 못하고 있는 저에게 이사장이 말했습니다. “교수님, 저희가 제시하는 신학교 학장직에 대하여 기도해보시겠어요?” 저는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스티브 이사장님, 아마도 저는 못하겠다는 대답을 드릴 거 같군요. 왜 그런지는 지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를 기다리고 있던 아내 킴벌리가 물었습니다. “학교 이사장이 무슨 말을 하던가요?” “나보고 신학교 학장이 돼 달라더군..” 킴벌리가 놀란 얼굴로 말했습니다. “스캇, 당신 지금 장난하는 거예요?” “아니…” “그럼, 뭐라고 대답했다구요?” “싫다고 그랬어.” 킴벌리가 놀란 음성으로 다시 말했습니다. “ 스캇! 잠깐 잠깐만… 지금 뭐라고 말했어요? 싫다니요? 왜, 학장직이 싫다고 했어요?”
“킴벌리, 나는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 학생들에게 무얼 가르쳐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성경이 가르쳐주는 게 뭔지 언젠가 예수님의 심판대에 섰을 때, 단순히… ‘예수님, 저는 스승들에게 배운 대로 가르쳤을 뿐입니다. 그들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 참되다고 보여주었고 저는 그들이 보여준 것을 신뢰해야만 했어요.’ 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 밖에는 모르겠어…” 킴벌리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꼭 포옹해 주었습니다. “스캇, 그런 점이 바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예요,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당신과 결혼했어요, 그렇지만, 우린 기도해야하겠지요” 그녀는 나의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이사장의 제안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성장하는 교회였고, 참 행복했던 그 교회의 목사직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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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3-0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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