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설, 비방, 광고, 도배질 글은 임의로 삭제됩니다.

조선에 방문했던 미국공주 앨리스

페이지 정보

어제뉴스

본문



1905년 9월20일 고종이 미국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인 앨리스와의 공식오찬 때 마련한 음식, 각종 자료를 토대로 신세계 조선호텔 조리팀에서 재현했다. |문화재청 제공

1905년 9월20일 고종이 미국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인 앨리스와의 공식오찬 때 마련한 음식, 각종 자료를 토대로 신세계 조선호텔 조리팀에서 재현했다. |문화재청 제공













“신선로(그릇에 육고기, 해산물, 채소 등을 함께 끓인 열구자탕), 비빔국수(골동면), 숭어찜(수어증), 편육, 생선전(전육), 전복조림, 누름적(회양적·각종재료 익히고 색을 맞춰 꼬챙이에 꿴 음식)….”


1905년 9월20일 고종 황제는 국빈자격으로 대한제국을 방문한 앨리스 루즈벨트를 위해 덕수궁 중명전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앨리스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대통령(재임 1901~1909년)의 딸(장녀)이었다. 앨리스는 미국의 아시아 사절단 일원으로 필리핀과 일본·중국 등을 방문하는 도중 고종의 초청을 받고 몇몇 일행과 함께 3박4일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고종은 21살의 앨리스를 미국 공주로 여겨 국빈으로 대접했다. 거리거리마다 성조기를 매달고 황실가마에 태워 영접했다.





앨리스 루스벨트와의 오찬 때 제공된 메뉴판. 이날의 오찬 음식들은 1902년의 ‘임인진연’이나 고종과 순종의 탄일상과 같은 전통 잔칫상에서 황제에게 올렸던 음식 중에서 선택했다.|뉴욕 공공도서관 소장

앨리스 루스벨트와의 오찬 때 제공된 메뉴판. 이날의 오찬 음식들은 1902년의 ‘임인진연’이나 고종과 순종의 탄일상과 같은 전통 잔칫상에서 황제에게 올렸던 음식 중에서 선택했다.|뉴욕 공공도서관 소장





20일 재현된 오찬 역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렸다. 오찬에는 앞서 거론한 음식 외에도 ‘두텁떡(후병), 약밥(악식), 숙실과(과일을 익혀 다시 과일모양으로 또는 다른 형태로 만든 음식), 배(생리), 밤(생율), 포도, 홍시, 정과(과일이나 연근 도라지, 생강 등을 꿀에 조리거나 재어 만든 음식), 원소병(찹쌀반죽으로 경단을 빚은 뒤 끓는 물에 익혀 꿀물 또는 설탕물에 담가먹는 음료) 등과 초장·겨자·꿀까지 17가지 음식과 3개의 양념이 제공됐다.


이날 오찬은 고종의 탄신일(51세)을 기념해 1902년 치른 연회와 고종·순종 생일상에 나온 음식으로 구성됐다. 식단은 대한제국이 외국인에게 서양식 코스 요리를 대접했다는 기존 견해를 뒤집는다. 식단은 덕수궁이 21일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전시실에서 개막해 11월 24일까지 진행하는 특별전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에 전시된다. 이 전시는 덕수궁이 지난해부터 추진하는 ‘황제의 의·식·주’ 기획전 중 두 번째 행사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가족 사진, 맨 뒤가 앨리스다. 이사아 사절단에는 앨리스와 결혼하게 될 니콜라스 롱워스 의원이 포함돼 있었다. |경향신문 가족 사진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가족 사진, 맨 뒤가 앨리스다. 이사아 사절단에는 앨리스와 결혼하게 될 니콜라스 롱워스 의원이 포함돼 있었다. |경향신문 가족 사진





앨리스의 자서전(<혼잡의 시간들>·1934년)에 따르면 오찬장 헤드테이블에는 고종과 황태자(순종), 그리고 앨리스 등 3명이 앉았다.


“우리는 황실 문양으로 장식한 조선 접시와 그릇에 담긴 조선 음식(Korean food)을 먹었다. 내가 사용한 물건은 내게 선물로 주었고, 작별 인사에서 황제와 황태자는 각각 자신의 사진을 주었다.”


식단표 뒷면에는 황제가 여성과 공식적으로 한 최초의 식사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오찬에는 쇠락해가는 대한제국의 운명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종은 당시 미국을 대양인, 대인배의 나라로 여겼다. 훗날 제2대 주미공사를 지낸 이하영(1858~1929)은 “미국은 조선과 거리가 멀어서 내국 침입이 그다지 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게다가 미국은 황금의 부국이니 조선은 물질적으로 덕을 볼 것이고, 종교지상주의 국가이니 도덕을 존중할 터라 모욕과 야심도 적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믿음 덕분인지 통상조약을 맺은 첫번째 서양국가가 바로 미국(1882년)이었다. 특히 조·미 통상조약 ‘제1조’는 조선과 고종 임금에게 매우 의미심장했다.





명성황후의 능 앞의 수호상에 걸터앉은 앨리스. 무례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명성황후의 능 앞의 수호상에 걸터앉은 앨리스. 무례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즉 “제3국이 한쪽 정부에 부당하게, 또는 억압적으로 행동할 때는 다른 한쪽 정부가 원만한 타결을 위해 주선한다”는 이른바 ‘거중조정’ 조항이 들어있었다. 고종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지않으려는 대인배이자 대양인인 미국의 중재자 역할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는 훗날 드러난다. 먼로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의 외교정책과 제국주의 열강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국제외교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 때(1905년)도 마찬가지였다. 고종은 기울어져가는 대한제국을 살리려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21살 미국 대통령의 딸까지 초정해 융숭하게 대접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 순진했다. 고종은 50여 일 전인 7월29일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일본을 방문한 육군장성 월리엄 태프트(1857~1930·차기 미국 대통령)와 일본수상 가쓰라 타로(桂太郞·1848~1913) 사이에 맺은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까맣게 몰랐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미국과 일본 양국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각각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때 맺은 ‘거중조정’ 조항은 휴지조각이 된지 오래였다. 이 밀약 후 태프트는 귀국했고, 앨리스를 비롯한 남은 일행만 중국을 방문하고 있던 중 고종의 초청으로 대한제국을 방문한 것이다. 고종으로서는 버스 지나간 후 손을 흔든 격이 됐고, ‘앨리스 공주’는 결과적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내민 대한제국 황제를 농락한 셈이 됐다.





앨리스와의 오찬 후 고종은 자신과 황태자의 사진을 앨리스에게 선물했다. |미국 프리어 새클러 갤러리 소장

앨리스와의 오찬 후 고종은 자신과 황태자의 사진을 앨리스에게 선물했다. |미국 프리어 새클러 갤러리 소장





앨리스는 힘없는 대한제국과 대한제국 황제를 매우 깔본 것 같다.


“황제와 마지막 황제가 된 그의 아들은 우리 공관 근처의 궁궐(덕수궁)에서 남의 눈을 피해 생활했다. 며칠 후 궁궐내 유럽식으로 꾸민 장소(중명전)에서 점심을 먹었다. 위층 방으로 안내받아 (접견한 후) 키 작은 황제는 자신의 팔은 내주지 않은채 내 팔을 잡았고, 같이 서둘러 비틀거리며 매우 좁은 계단을 내려가 평범하고 냄새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대한제국의 서양식 연회를 재현한 덕수궁 석조전의 대식당.|문화재청 제공

대한제국의 서양식 연회를 재현한 덕수궁 석조전의 대식당.|문화재청 제공





기껏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대접을 했더니 ‘키작고 무례한 황제’와 ‘냄새나는 식당’ 운운 하며 ‘디스’해댄 것이다. 앨리스는 오찬 때 사용한 식기와 황제·황태자 사진을 선물로 받은 뒤 ‘고종’을 ‘멍한 존재’로 깎아내렸다.


“그들은 황족의 존재감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며 다소 측은하게 별다른 반응없이 멍하게 지냈다.”


앨리스는 이미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알았던 탓에 곧 ‘망할 나라의 군주’임을 알고 한편으로는 측은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깔보는 심정으로 고종과 황태자를 바라봤던 것이다.


공주 대접을 받으며 서울을 방문했던 앨리스의 무례한 행동거지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평소 거침없는 언행으로 유명했던 앨리스는 서울에서도 승마복 차림에 시거를 피워가며 고종을 알현했고, 명성황후 능에 가서는 능을 지키는 수호상 위에 떡하니 걸터앉아 사진을 찍는 오불관언의 무례를 저질렀다.


‘미국의 거중조정’을 기대하면서 앨리스를 초청한 고종으로서는 이 철부지의 ‘공주 코스프레’에 장단을 맞춰준 격이 됐다. 앨리스가 마음껏 대한제국을 농락하고 돌아간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을사늑약(11월17일)에 의해 대한제국 외교권이 박탈됐다. 미국은 가장 먼저 주한공사관을 철수한 국교단절 국가가 됐다.


‘황제의 식탁’에는 이렇게 쓰러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든 살려보려 애쓴, 그러나 너무 순진했던 고종의 애처러운 심정과,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냉엄한 외교관계가 담겨있다.






추천 2

작성일2020-05-02 17:53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5319 보험사 주장 6:4 사고 인기글 pike 2020-05-02 2326 0
5318 1970년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모습 인기글 pike 2020-05-02 2400 2
5317 여자의 명령은 듣지 않던 남자 인기글 pike 2020-05-02 2432 0
5316 고래가 먹다 뱉은 잠수부 인기글 pike 2020-05-02 2474 1
5315 편의점에 나온 가장 비싼 김밥 인기글 pike 2020-05-02 2488 0
5314 살살 쓰다듬으라고! 인기글 pike 2020-05-02 2275 2
5313 분당 폭스바겐남 인기글 pike 2020-05-02 2344 0
5312 뉴욕 직장서 내쫓기는 아시아계 미국인..실업수당 청구 6900%↑ 댓글[1] 인기글 pike 2020-05-02 2355 0
5311 인스타에서 한달에 10만불 버는 여성 인기글 pike 2020-05-02 2756 0
5310 여자친구 32세 생일맞아 여행간 벤 에플렉 인기글 pike 2020-05-02 1936 0
5309 판사도 변호사도 절래절래 하는 메건 마클의 소송건 인기글 pike 2020-05-02 2330 0
5308 자가격리가 지옥이라는 엘런의 집 인기글 pike 2020-05-02 2273 0
5307 5살 생일 맞아 수제 파스타 배달중인 샬롯 공주 인기글 pike 2020-05-02 2290 1
5306 루즈벨트 항공모함이 코로나로 자리를 비우자 중국이 한 만행 인기글 pike 2020-05-02 2203 0
5305 속보 - 북, 대남 군사 도발 인기글 충무공 2020-05-02 2342 0
5304 List of outdoor activities now allowed throughout the Bay Ar… 인기글 푸다닭 2020-05-02 2206 0
5303 슬픈얘기 하나..혜은이 남편이 사업한다고 다말아먹고 빚까지 지엇다고..ㅠㅠ.. 댓글[1] 인기글 하얀눈 2020-05-02 2284 0
5302 428일 엔비시뉴스..영국 악스포드대학 에서 코로나19백신을 9월이후엔 유럽에선 접종하게 될것이라는데.. 댓글[1] 인기글 하얀눈 2020-05-02 2151 0
5301 오 이아이가 귀신꿍꼬또 햇던 아이구나..그런데 예전에는 안보이던게 왜 지금 많이 보이지.. 댓글[1] 인기글 하얀눈 2020-05-02 2163 0
5300 냄새나는 김치통은 이렇게 제거하라는데..설탕이 효과가 잇다고.. 댓글[1] 인기글 하얀눈 2020-05-02 2169 0
5299 노래한곡..2013년 2월에 올라온 소림행자의 노래..^^ 댓글[1] 인기글 하얀눈 2020-05-02 1647 0
열람중 조선에 방문했던 미국공주 앨리스 인기글 어제뉴스 2020-05-02 2239 2
5297 지우개가 자주 없어지는 이유.jpg 인기글첨부파일 푸다닭 2020-05-02 2189 1
5296 쪽쪽 뽀뽀해주는 아기냥이 댓글[1] 인기글 pike 2020-05-02 2235 1
5295 한국 세관에서 진상들 댓글[2] 인기글 pike 2020-05-02 2346 0
5294 요즘 자가운전 타주여행 인기글 딩딩 2020-05-02 2303 0
5293 돈언제 주나요 댓글[3] 인기글 하늘위애새 2020-05-02 2268 0
5292 제천 외국인 입국자 생활시설서 코로나19 확진 판정 인기글 푸다닭 2020-05-02 1638 0
5291 본인 손이 큰지 작은지 아는 방법.jpg 댓글[2] 인기글첨부파일 푸다닭 2020-05-02 2283 0
5290 “OC 해변폐쇄 반대”…주민 수천명 시위 댓글[1] 인기글 푸다닭 2020-05-02 2068 0
게시물 검색
* 본 게시판의 게시물에 대하여 회사가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