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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2 그리고 산이 울렸다
(And the Mountains Echoed) by Khaled Hosseini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언제부터인지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공부가 되고 숙제가 되어 버리면서 그 재미를 잃게 되어 서운했다. 과연 모든 예술은 어렵고 힘들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글을 쓰는 작가라면 인생의 한 번쯤은 베스트셀러의 책을 내놓고 싶을 것이다. 근데 이 작가는 3번째의 이 장편도 벌써 그 자리에 매김 하였다니, 과연 어떤 매력으로 어떤 이야기로 어떤 플릇으로 작품들을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작가는 어린 시절 아프카니스탄을 떠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자랐지만, 그의 뿌리는 조국에 있으며, 나라의 불행이 오히려 더 무한한 애정과 상상력으로 깊고 넓은 이야기를 이렇게 펼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의 빈곤과 전쟁 속에서 살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고 희망도 가지지 못하는 주인공들이지만, 그는 어느 한 곳에서의 인물들로서 이야기를 만들어가지 않는다. 지나친 설명과 부연도 없이 툭툭 독자들을 여기저기로 던져 놓는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각각의 주인공들이 하나씩 자신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면서, 그것들은 갈고리가 되어 또 다른 곳에서의 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에 턱 하니 걸쳐 놓는다. 읽다 보면 그 걸쳐놓은 갈고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잊어버려 몇번은 앞장으로 들락거렸지만, 어쩌면 그것이 의도되었든 되지 않았든 더 많은 손때와 궁금증으로 휘어잡는다. 소설 속의 어떤 인물 하나도 제대로 행복하고 성공하고 화려한 사람이 없다. 어쩌면 가족의 붕괴와 권력과 돈에 의해 헤어지고 짓 밝히고 무시당하고 잊고서 살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삶에 대해 저항하거나 분노하지 않으면서, 각각 한 사람씩 애틋한 사랑의 모습으로 사라지며 또다시 이어간다.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한 판의 연극무대일지라도,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헤어짐도 잊혀짐도 치유해 나가면서, 그것이 바로 인생 본연의 몫을 제대로 하다 가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해준다. 끝까지, 마지막 만남 속에다 망각을 던져 놓으면서도 또 하나의 갈고리는 아주 작지만 먼 곳에서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연 무엇이 예술이며 거창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그릇의 나는 이렇게 믿는다. 자신의 재능으로 혼신을 다해 많은 날들을 애쓰며 노력한 작품들이, 해 저무는 창가에 서 있는 외로운 누군가에게, 웃음과 기쁨과 희망을 주며 행복해지는 삶의 작은 순간순간들을 부여해주는 것이라고.
(And the Mountains Echoed) by Khaled Hosseini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언제부터인지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공부가 되고 숙제가 되어 버리면서 그 재미를 잃게 되어 서운했다. 과연 모든 예술은 어렵고 힘들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글을 쓰는 작가라면 인생의 한 번쯤은 베스트셀러의 책을 내놓고 싶을 것이다. 근데 이 작가는 3번째의 이 장편도 벌써 그 자리에 매김 하였다니, 과연 어떤 매력으로 어떤 이야기로 어떤 플릇으로 작품들을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작가는 어린 시절 아프카니스탄을 떠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자랐지만, 그의 뿌리는 조국에 있으며, 나라의 불행이 오히려 더 무한한 애정과 상상력으로 깊고 넓은 이야기를 이렇게 펼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의 빈곤과 전쟁 속에서 살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고 희망도 가지지 못하는 주인공들이지만, 그는 어느 한 곳에서의 인물들로서 이야기를 만들어가지 않는다. 지나친 설명과 부연도 없이 툭툭 독자들을 여기저기로 던져 놓는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각각의 주인공들이 하나씩 자신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면서, 그것들은 갈고리가 되어 또 다른 곳에서의 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에 턱 하니 걸쳐 놓는다. 읽다 보면 그 걸쳐놓은 갈고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잊어버려 몇번은 앞장으로 들락거렸지만, 어쩌면 그것이 의도되었든 되지 않았든 더 많은 손때와 궁금증으로 휘어잡는다. 소설 속의 어떤 인물 하나도 제대로 행복하고 성공하고 화려한 사람이 없다. 어쩌면 가족의 붕괴와 권력과 돈에 의해 헤어지고 짓 밝히고 무시당하고 잊고서 살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삶에 대해 저항하거나 분노하지 않으면서, 각각 한 사람씩 애틋한 사랑의 모습으로 사라지며 또다시 이어간다.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한 판의 연극무대일지라도,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헤어짐도 잊혀짐도 치유해 나가면서, 그것이 바로 인생 본연의 몫을 제대로 하다 가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해준다. 끝까지, 마지막 만남 속에다 망각을 던져 놓으면서도 또 하나의 갈고리는 아주 작지만 먼 곳에서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연 무엇이 예술이며 거창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그릇의 나는 이렇게 믿는다. 자신의 재능으로 혼신을 다해 많은 날들을 애쓰며 노력한 작품들이, 해 저무는 창가에 서 있는 외로운 누군가에게, 웃음과 기쁨과 희망을 주며 행복해지는 삶의 작은 순간순간들을 부여해주는 것이라고.
2015-08-05 에스터 최의 행복한 쉼터 : 문화 대사
미국 땅에 살다 보니 나에게 이런 날도 있네요. 이번 여름에 제가 아주 멋진 곳에서 매우 특별한 여름휴가를 즐기고 왔음을 말씀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도 완전 공짜로요. 자초지정을 털어 놓자면 친구 잘 만난 덕에 말 그대로 아방궁에서 왕비 같은 대접을 받으며 신선놀음을 즐길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일년 전 한 여름의 뜨거운 폭염이 늦은 저녁까지 식지 않았던 그날, 나는 시원한 바람을 기대하며 어스름한 공원을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공원 모퉁이에서 어떤 할머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한 눈에도 긴급한 상황으로 판단되어 떨림과 두려움으로 어떻게 도와드릴지를 물었습니다. 스테파니라고 이름을 밝힌 노 할머니는 먼저 물을 필요로 했고 병원이 아닌 본인의 집으로 데려다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어르신은 애지 중지 아끼던 당신의 강아지와 산책을 나왔다가 강아지의 목 끈이 풀어지는 바람에 녀석이 어디론가 달아났다고 말했습니다. 구 십 도가 넘는 찜통 더위에 강아지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그 고생을 하셨으니 변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걱정이 된 나는 밤사이 안부를 확인하고자 할머니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근간에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냈노라고 사연을 털어 놓은 할머니는 큰 집에 강아지 마저 없으니 너무 외롭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그냥 돌아설 수가 없어서 나는 강아지 사진을 달라고 하여 수십 장을 크게 확대한 뒤 녀석이 갈만 한 곳을 추적하여 벽에 부치고 다녔습니다. 한 장 한 장 광고지마다 제발 꼭 찾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지요. 4일 후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강아지를 찾고 있다는 벽보를 마이클 이라는 사람이 보았고 길을 잃어 헤매고 있던 강아지를 데려와 성심껏 돌보고 있던 그는 곧 바로 달려와 할머니 품에 강아지를 안겨 준 것입니다. 아! 그 날의 감동이 떠오를 때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이후에 그녀와 나는 엄마와 딸 같은 친구 사이가 되어 종종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분이 나를 초대했습니다. 년 중 행사로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을 불러 모아 휴가를 지내는데 나도 함께 동행해 줄 것을 간청한 것입니다. 몇 날을 고민하던 끝에 심히 부담스럽지만 이 참에 짜릿한 모험도 괜찮겠다 싶어 상기된 얼굴로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무능함에 자존심이 내려 앉았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스물 다섯 명 가족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것이지요. 삶의 현장에서 갈고 닦은 내 영어 실력은 고작 한 시간짜리 대화 수준인데 일주일이나 되는 길고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틸지 상상만해도 머리가 지근지근 아팠습니다. 결국 함께한 저녁 식사 시간에 코피가 터지면서 이제 와서 어쩌지도 못하는 후회스런 슬픔이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굽니까? 매운 고추장의 저력으로 다져진 당당한 한국인이 아니겠는지 요. 곧 소심한 마음을 고쳐먹고 생각을 바꾸어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언어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휴양지에서 살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김치와 된장찌개도 아닌 느끼한 치즈와 버터 바른 빵들을 주식으로 먹으며 눈 뜨면 모든 일상을 영어로 시작해야 하는 고된 훈련을 감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일이 마음먹기 달렸다더니 아, 글쎄 어느 순간 꽉 막혀있던 귀가 뚫리고 벙어리였던 입이 빵 터지고 있음이 깨달아졌습니다. 신기할 만큼 자신이 붙은 나는 목숨처럼 여기던 품위는 내던지고 평소 아줌마다운 기질의 수다로 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입담이 되었습니다. 요즘 연일 핫뉴스로 다루고 있는 한국에서의 메르스에 대한 염려와 남한의 눈부신 발전과 상반된 북한의 암울한 현실, 그리고 거북선을 만들어 나라를 지키신 이순신 장군과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 경복궁의 유례와 한국의 민속촌과 경주에 있는 유적지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궁금해 하는 모든 질문들에 대해 온 몸으로 아주 리얼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한 혹시 필요할지도 몰라서 챙겨간 카드게임인 화투와 윷놀이 등으로 한국의 문화를 정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게다가 식탁에 대한 관습도 확실하게 바꾸어 놓았는데 예절 바른 한국인은 어르신이 먼저 수저를 들고 나야 나머지 가족들이 밥을 먹는다는 것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집 안에서 들어오면 반드시 신발을 벗고 생활한다는 청결함을 강조했더니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며 맨발로 다니는 이변이 생겼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들의 얼굴색만 보고 깨끗한 줄 알았는데 함께 해보니 그들보다 우리가 백번 청결한 바른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는 즉시 맨 입에 독한 커피를 마셔대는 당신네들과는 달리 옛적 우리의 선남 선녀들은 물을 담은 바가지에 버들잎까지 띄워 후후 불어 마시도록 했던 아름다운 일화도 들려주었습니다. 곧 물이 아닌 마음을 마시는 깊음까지 전달하자 우리의 민족의 숨은 매력에 반한 가족들은 계속 어메이징과 원더풀을 외쳤습니다. 어쨌든 매일 아침 커피 대신 깨끗한 생수를 마시면 한국여인들처럼 나이가 들어도 탱글탱글한 피부를 유지한다고 자랑했습니다. 사실은 은근히 나를 두고 한 말이지만 요. 어느 덧 눈 깜짝할 사이 7박 8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공항에서 각기 집으로 향하던 날 아침, 혀 꼬부라진 소리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한국말을 연습하며 호탕하게 웃던 그들이 참으로 고맙고 기특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에멀랜드 빛 물결 속으로 스노클링 하면서 놀았던 바다왕궁의 거북이와 문어가 못내 그리워지면서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번집니다. 그리고 한국문화대사의 수행을 완수한 어깨위로 무궁화 꽃이 활짝 핀 것 같아 또 다시 흐뭇해집니다.
미국 땅에 살다 보니 나에게 이런 날도 있네요. 이번 여름에 제가 아주 멋진 곳에서 매우 특별한 여름휴가를 즐기고 왔음을 말씀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도 완전 공짜로요. 자초지정을 털어 놓자면 친구 잘 만난 덕에 말 그대로 아방궁에서 왕비 같은 대접을 받으며 신선놀음을 즐길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일년 전 한 여름의 뜨거운 폭염이 늦은 저녁까지 식지 않았던 그날, 나는 시원한 바람을 기대하며 어스름한 공원을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공원 모퉁이에서 어떤 할머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한 눈에도 긴급한 상황으로 판단되어 떨림과 두려움으로 어떻게 도와드릴지를 물었습니다. 스테파니라고 이름을 밝힌 노 할머니는 먼저 물을 필요로 했고 병원이 아닌 본인의 집으로 데려다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어르신은 애지 중지 아끼던 당신의 강아지와 산책을 나왔다가 강아지의 목 끈이 풀어지는 바람에 녀석이 어디론가 달아났다고 말했습니다. 구 십 도가 넘는 찜통 더위에 강아지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그 고생을 하셨으니 변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걱정이 된 나는 밤사이 안부를 확인하고자 할머니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근간에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냈노라고 사연을 털어 놓은 할머니는 큰 집에 강아지 마저 없으니 너무 외롭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그냥 돌아설 수가 없어서 나는 강아지 사진을 달라고 하여 수십 장을 크게 확대한 뒤 녀석이 갈만 한 곳을 추적하여 벽에 부치고 다녔습니다. 한 장 한 장 광고지마다 제발 꼭 찾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지요. 4일 후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강아지를 찾고 있다는 벽보를 마이클 이라는 사람이 보았고 길을 잃어 헤매고 있던 강아지를 데려와 성심껏 돌보고 있던 그는 곧 바로 달려와 할머니 품에 강아지를 안겨 준 것입니다. 아! 그 날의 감동이 떠오를 때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이후에 그녀와 나는 엄마와 딸 같은 친구 사이가 되어 종종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분이 나를 초대했습니다. 년 중 행사로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을 불러 모아 휴가를 지내는데 나도 함께 동행해 줄 것을 간청한 것입니다. 몇 날을 고민하던 끝에 심히 부담스럽지만 이 참에 짜릿한 모험도 괜찮겠다 싶어 상기된 얼굴로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무능함에 자존심이 내려 앉았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스물 다섯 명 가족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것이지요. 삶의 현장에서 갈고 닦은 내 영어 실력은 고작 한 시간짜리 대화 수준인데 일주일이나 되는 길고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틸지 상상만해도 머리가 지근지근 아팠습니다. 결국 함께한 저녁 식사 시간에 코피가 터지면서 이제 와서 어쩌지도 못하는 후회스런 슬픔이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굽니까? 매운 고추장의 저력으로 다져진 당당한 한국인이 아니겠는지 요. 곧 소심한 마음을 고쳐먹고 생각을 바꾸어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언어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휴양지에서 살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김치와 된장찌개도 아닌 느끼한 치즈와 버터 바른 빵들을 주식으로 먹으며 눈 뜨면 모든 일상을 영어로 시작해야 하는 고된 훈련을 감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일이 마음먹기 달렸다더니 아, 글쎄 어느 순간 꽉 막혀있던 귀가 뚫리고 벙어리였던 입이 빵 터지고 있음이 깨달아졌습니다. 신기할 만큼 자신이 붙은 나는 목숨처럼 여기던 품위는 내던지고 평소 아줌마다운 기질의 수다로 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입담이 되었습니다. 요즘 연일 핫뉴스로 다루고 있는 한국에서의 메르스에 대한 염려와 남한의 눈부신 발전과 상반된 북한의 암울한 현실, 그리고 거북선을 만들어 나라를 지키신 이순신 장군과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 경복궁의 유례와 한국의 민속촌과 경주에 있는 유적지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궁금해 하는 모든 질문들에 대해 온 몸으로 아주 리얼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한 혹시 필요할지도 몰라서 챙겨간 카드게임인 화투와 윷놀이 등으로 한국의 문화를 정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게다가 식탁에 대한 관습도 확실하게 바꾸어 놓았는데 예절 바른 한국인은 어르신이 먼저 수저를 들고 나야 나머지 가족들이 밥을 먹는다는 것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집 안에서 들어오면 반드시 신발을 벗고 생활한다는 청결함을 강조했더니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며 맨발로 다니는 이변이 생겼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들의 얼굴색만 보고 깨끗한 줄 알았는데 함께 해보니 그들보다 우리가 백번 청결한 바른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는 즉시 맨 입에 독한 커피를 마셔대는 당신네들과는 달리 옛적 우리의 선남 선녀들은 물을 담은 바가지에 버들잎까지 띄워 후후 불어 마시도록 했던 아름다운 일화도 들려주었습니다. 곧 물이 아닌 마음을 마시는 깊음까지 전달하자 우리의 민족의 숨은 매력에 반한 가족들은 계속 어메이징과 원더풀을 외쳤습니다. 어쨌든 매일 아침 커피 대신 깨끗한 생수를 마시면 한국여인들처럼 나이가 들어도 탱글탱글한 피부를 유지한다고 자랑했습니다. 사실은 은근히 나를 두고 한 말이지만 요. 어느 덧 눈 깜짝할 사이 7박 8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공항에서 각기 집으로 향하던 날 아침, 혀 꼬부라진 소리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한국말을 연습하며 호탕하게 웃던 그들이 참으로 고맙고 기특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에멀랜드 빛 물결 속으로 스노클링 하면서 놀았던 바다왕궁의 거북이와 문어가 못내 그리워지면서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번집니다. 그리고 한국문화대사의 수행을 완수한 어깨위로 무궁화 꽃이 활짝 핀 것 같아 또 다시 흐뭇해집니다.
2015-08-02 글을 쓰면서,,,,,
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물지게로 물을 나르는 지게꾼에게 오래되어 금가고 깨진 항아리가 물었다. "주인님은 왜 깨지고 쓸모없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는지요?" 했더니 주인님은 "우리가 오래 함께 물을 길으면서 걸어온 길들을 보아라. 그 먼지 나든 길가에, 깨진 너의 항아리 사이로 흘러내린 물 때문에, 꽃도 피고 나무도 자라고 아름답지 않으냐.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가치없는 거라고 하며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거란다." 위로해 주었다한다. 깨진 항아리의 이야기 속 - 조금은 모자라고 깨지고 볼품없지만, 오래 사랑받고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먼지 풀풀 날리는 길가에 작은 꽃도 피우면서살아가는 사랑과 귀중함을 배워가고 싶다. 작은 무엇 하나에도 눈빛을 주며 새삼스럽게 바라보고 싶다. 하찮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생함을 가지고서 머리와 가슴과 손짓으로 만져보면서 느끼는 마음을, 글로서 그림으로서 표현하고 싶다. 무엇이 더 소중하고 무엇이 더 위대하며 더 아름답다는 선입감을 버려둔 채로, 진솔한 벗어버린 그 자체로서 바라보고 싶다. 가슴 속에 느껴서 오래 묵혀 두었든 느낌들이 시간이 지나 어쩌면 조금은 익어져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뚜껑을 열면, 가끔은 아주 샛노랗게 잘 익은 채 로 본 모습을 잃지 않은 체 있지만, 어떤 때는 냄새나고 곰팡이 슬어 아주 못쓰게 된 것들도 있다. 어찌 매일 잘 되기만, 빛깔 좋기만 바라면서 살 수 있을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의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치유이며 다독거림이다. 아무런 것도 아닌 것에 흥분하며 붓을 들고 연필을 들 때도 있지만, 오래되어 조금은 깨어지고 보잘것 없을지라도 길가에 흘리든 물 조각처럼 나도 오래 조금씩 흘려서 꽃 피우고 싶다. 나의 삶과 어쩌면 조금은 다른 이의 인생에 알듯 모를 듯 꽃을 피우게 만들어주고 나무도 자라게 해주는, 그런 깨진 항아리일지라도 그렇게 글을 쓰고 또 그림 그리고 싶다.
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물지게로 물을 나르는 지게꾼에게 오래되어 금가고 깨진 항아리가 물었다. "주인님은 왜 깨지고 쓸모없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는지요?" 했더니 주인님은 "우리가 오래 함께 물을 길으면서 걸어온 길들을 보아라. 그 먼지 나든 길가에, 깨진 너의 항아리 사이로 흘러내린 물 때문에, 꽃도 피고 나무도 자라고 아름답지 않으냐.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가치없는 거라고 하며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거란다." 위로해 주었다한다. 깨진 항아리의 이야기 속 - 조금은 모자라고 깨지고 볼품없지만, 오래 사랑받고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먼지 풀풀 날리는 길가에 작은 꽃도 피우면서살아가는 사랑과 귀중함을 배워가고 싶다. 작은 무엇 하나에도 눈빛을 주며 새삼스럽게 바라보고 싶다. 하찮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생함을 가지고서 머리와 가슴과 손짓으로 만져보면서 느끼는 마음을, 글로서 그림으로서 표현하고 싶다. 무엇이 더 소중하고 무엇이 더 위대하며 더 아름답다는 선입감을 버려둔 채로, 진솔한 벗어버린 그 자체로서 바라보고 싶다. 가슴 속에 느껴서 오래 묵혀 두었든 느낌들이 시간이 지나 어쩌면 조금은 익어져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뚜껑을 열면, 가끔은 아주 샛노랗게 잘 익은 채 로 본 모습을 잃지 않은 체 있지만, 어떤 때는 냄새나고 곰팡이 슬어 아주 못쓰게 된 것들도 있다. 어찌 매일 잘 되기만, 빛깔 좋기만 바라면서 살 수 있을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의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치유이며 다독거림이다. 아무런 것도 아닌 것에 흥분하며 붓을 들고 연필을 들 때도 있지만, 오래되어 조금은 깨어지고 보잘것 없을지라도 길가에 흘리든 물 조각처럼 나도 오래 조금씩 흘려서 꽃 피우고 싶다. 나의 삶과 어쩌면 조금은 다른 이의 인생에 알듯 모를 듯 꽃을 피우게 만들어주고 나무도 자라게 해주는, 그런 깨진 항아리일지라도 그렇게 글을 쓰고 또 그림 그리고 싶다.
2015-07-03 에스터 최의 행복한 쉼터 : 달려라, 나타
학창시절 나는 한동안 추리소설의 묘미에 흠뻑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김성종 작가가 쓴 '여명의 눈동자'라는 역사 대하소설을 탐독한 후로는 내 민족에 대한 강한 애정이 싹트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글 속에는 당대 세 명의 젊은 조선인 학도병 최대치와 미 정보부 요원인 위생병 장하림, 그리고 위안부인 윤여옥을 통해 일제치하의 식민지 시절의 고통과 해방,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통한의 파란 만장한 역사의 뒤안길에서 몸부림쳐야 했던 우리 민족의 처절한 통곡이 절절이 배어 있었습니다. 열 권의 책을 읽어가는 동안 일본의 태평양 전쟁 당시 회오리 바람 속으로 빨려 들어간 나는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절규, 비탄으로 몸을 떨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일본군의 위안부로 착출 되어 꽃다운 나이에 짐승보다도 더 무참하게 짓밟혔던 윤여옥과 같은 삶의 여정을 걸어온 우리네 한 많은 여인들, 힘을 잃었던 지난 한국역사 사건의 증인인 그분들을 생각하면 통분과 죄송함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연유로 인해 나는 무조건 일본제품을 배제하고 한국제품을 선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미국 땅에 도착하자 마자 필수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자동차도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 제품인 현대자동차를 가족으로 맞아 들였습니다. 그러나 13년이란 세월 동안 우리를 위해 뛰고 달려준 '나타'(소나타의 애칭)는 234,350마일이 되자 기력이 쇠진하여 중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나타를 살려보고자 백방으로 뛰었지만 끝내 별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낙담 하던 중에 불현듯 어떤 용기가 생겼습니다. 한국에 있는 현대자동차 본사에 편지를 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 동안의 나타 공적과 사진 등을 첨부하여 택배로 부친 지 정확히 다섯째 되는 날, 본사로 부터 긴급 연락을 받았다며 미주 책임자께서 제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아! 우리 나타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던지요. 문을 두드리면 열린다는 기적을 나는 그때 실감나게 경험했습니다. 통화 결과 슬프지만 불치병에 걸린 나타와는 이제 그만 이별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자상한 설명을 듣고 녀석과의 헤어짐을 결단해야 했지만, 태평양을 건너온 한 이민자의 애국심을 알아준 현대자동차가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 으뜸가는 자동차업계의 롤모델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나의 무모한 것 같은 도전적인 행동을 본 친구들과 이웃들은 매우 흥미로운 관심으로 "혹시 자동차 선물 받았어요?" 라며 묻곤 했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심장을 감찰한 하늘은 결단코 내가 공짜로 새 자동차나 선물 받아보려고 취한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타주에 계신 어떤 지인께서 본인의 애지중지 아끼시던 자동차를 보내 주셨는데 전에 타던 우리 소나타의 차종과 모델, 색깔이 똑 같았습니다. 이 일이 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다시 우리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나타를 위해 쓸고 닦으며 온갖 정성을 다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세심한 종합진찰로 건강관리를 철저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150,000마일 밖에 안된 녀석의 몸은 이곳 저곳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아! 나는 지금 가슴이 타들어갑니다. 이 미국 땅에서 TV에 토요타 캠리와 현대 자동차의 광고가 나란히 화면에 뜰 때마다 나는 내심 우리나라 제품을 얼마나 응원했는지 모릅니다. 프리웨이에서 일본자동차가 곁으로 다가오면 우리 나타는 더욱 멋진 우아한 자태로 한국자동차의 마크를 휘날리며 의기양양해 하던 일이 자랑스럽기만 했는데 말입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모든 것을 이기고만 싶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들은 식민지배와 침략, 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만행을 사죄조차 않을뿐더러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지만 얼마 전에는 대대적으로 독도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sfkorean.com이 인터넷 상에서 사라지며 해킹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선조가 만들 낸 민족 고유의 음식인 김치까지 자기네 것인 양 떠벌이고 있는 것도 괘씸하며 구십 도로 깍듯이 머리 숙여 인사하는 그들의 경배 속엔 두 가지 마음이 뻔히 들여다 보여서 신뢰가 전혀 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잘못이라도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선하고 착한 우리 민족은 그들의 진정한 사과를 기다리면서도 선한 실력 싸움에는 반드시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나타야! 애국가를 부르며 다시금 힘내어 달려보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학창시절 나는 한동안 추리소설의 묘미에 흠뻑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김성종 작가가 쓴 '여명의 눈동자'라는 역사 대하소설을 탐독한 후로는 내 민족에 대한 강한 애정이 싹트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글 속에는 당대 세 명의 젊은 조선인 학도병 최대치와 미 정보부 요원인 위생병 장하림, 그리고 위안부인 윤여옥을 통해 일제치하의 식민지 시절의 고통과 해방,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통한의 파란 만장한 역사의 뒤안길에서 몸부림쳐야 했던 우리 민족의 처절한 통곡이 절절이 배어 있었습니다. 열 권의 책을 읽어가는 동안 일본의 태평양 전쟁 당시 회오리 바람 속으로 빨려 들어간 나는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절규, 비탄으로 몸을 떨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일본군의 위안부로 착출 되어 꽃다운 나이에 짐승보다도 더 무참하게 짓밟혔던 윤여옥과 같은 삶의 여정을 걸어온 우리네 한 많은 여인들, 힘을 잃었던 지난 한국역사 사건의 증인인 그분들을 생각하면 통분과 죄송함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연유로 인해 나는 무조건 일본제품을 배제하고 한국제품을 선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미국 땅에 도착하자 마자 필수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자동차도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 제품인 현대자동차를 가족으로 맞아 들였습니다. 그러나 13년이란 세월 동안 우리를 위해 뛰고 달려준 '나타'(소나타의 애칭)는 234,350마일이 되자 기력이 쇠진하여 중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나타를 살려보고자 백방으로 뛰었지만 끝내 별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낙담 하던 중에 불현듯 어떤 용기가 생겼습니다. 한국에 있는 현대자동차 본사에 편지를 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 동안의 나타 공적과 사진 등을 첨부하여 택배로 부친 지 정확히 다섯째 되는 날, 본사로 부터 긴급 연락을 받았다며 미주 책임자께서 제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아! 우리 나타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던지요. 문을 두드리면 열린다는 기적을 나는 그때 실감나게 경험했습니다. 통화 결과 슬프지만 불치병에 걸린 나타와는 이제 그만 이별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자상한 설명을 듣고 녀석과의 헤어짐을 결단해야 했지만, 태평양을 건너온 한 이민자의 애국심을 알아준 현대자동차가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 으뜸가는 자동차업계의 롤모델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나의 무모한 것 같은 도전적인 행동을 본 친구들과 이웃들은 매우 흥미로운 관심으로 "혹시 자동차 선물 받았어요?" 라며 묻곤 했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심장을 감찰한 하늘은 결단코 내가 공짜로 새 자동차나 선물 받아보려고 취한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타주에 계신 어떤 지인께서 본인의 애지중지 아끼시던 자동차를 보내 주셨는데 전에 타던 우리 소나타의 차종과 모델, 색깔이 똑 같았습니다. 이 일이 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다시 우리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나타를 위해 쓸고 닦으며 온갖 정성을 다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세심한 종합진찰로 건강관리를 철저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150,000마일 밖에 안된 녀석의 몸은 이곳 저곳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아! 나는 지금 가슴이 타들어갑니다. 이 미국 땅에서 TV에 토요타 캠리와 현대 자동차의 광고가 나란히 화면에 뜰 때마다 나는 내심 우리나라 제품을 얼마나 응원했는지 모릅니다. 프리웨이에서 일본자동차가 곁으로 다가오면 우리 나타는 더욱 멋진 우아한 자태로 한국자동차의 마크를 휘날리며 의기양양해 하던 일이 자랑스럽기만 했는데 말입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모든 것을 이기고만 싶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들은 식민지배와 침략, 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만행을 사죄조차 않을뿐더러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지만 얼마 전에는 대대적으로 독도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sfkorean.com이 인터넷 상에서 사라지며 해킹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선조가 만들 낸 민족 고유의 음식인 김치까지 자기네 것인 양 떠벌이고 있는 것도 괘씸하며 구십 도로 깍듯이 머리 숙여 인사하는 그들의 경배 속엔 두 가지 마음이 뻔히 들여다 보여서 신뢰가 전혀 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잘못이라도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선하고 착한 우리 민족은 그들의 진정한 사과를 기다리면서도 선한 실력 싸움에는 반드시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나타야! 애국가를 부르며 다시금 힘내어 달려보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2015-07-01 만남도 헤어짐도
살면서의 이 모든 만남도 헤어짐도 다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있음을, 자랄 것은 다 자라버린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주 오래전 같은 학교를 다니며 서로 비슷한 길에 서서, 붓을 들고 함께 그림을 그리며 멋진 작품을 꿈꾸던 친구들을 만나 짧은 여행을 떠났다. 지나가 버려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냥 내게 주어진 것 같았던 습관 같은 남편과 아들도 아예 없었던 거처럼, 20살의 나 그대로 서 있었다. 온전한 나 하나 만으로서 친구들과의 시간들은 끝없는 이야기와 웃음과 순수함 그것만으로도 긴 세월 훨훨 날려 버리며, 문듯 눈가의 주름도 흰머리도 세상의 아픔들도 구름처럼 사라져 버렸다. 혼자 오래 살고 있는, 몸이 좋지 않은, 세상의 화려함을 잃어버린 누군가는 있었지만, 너무도아름다운 하나하나의 친구들 - 모두가 떠나는 마지막 날, 보내야 하는 언제 다시 만나 이렇게 같이 있을까 싶은 서운함에 눈물부터 흘러내리며 껴안고 또 껴안았다. 오래전 이미 나에게서 떠나 버렸다고 아예 마음의 빗장 속에 닫아 두었던 젊음의 청춘이 순식간에 왔다 다시 사라진다고 느꼈었기에, 더 서운하고 더 붙잡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 자신도 완벽히 잊어버렸든 옛날의 나를 기억해주며, 나의 모자람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많은 실수들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오롯이 잊고 있었던 옛날의내가 다시 나타나,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잘 살고 있다고 머리 쓰다듬어도 주었다. 예전의 내가 있었었기에 지금 이 순간, 땅에 단단히 다리를 딛고 서있는 것이고, 그때의 그 아픔과 기쁨과 실수로 다져졌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그래, 떠나 버렸다고 믿었던 청춘의 다시 만남도 헤어짐도 그저 내 마음 안에서 느끼고 있었던 것이지, 그것은 없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던 것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든 부끄럼 없는 나를 위해 더 머리 숙이며 살라고 가르쳐 주었다.
살면서의 이 모든 만남도 헤어짐도 다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있음을, 자랄 것은 다 자라버린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주 오래전 같은 학교를 다니며 서로 비슷한 길에 서서, 붓을 들고 함께 그림을 그리며 멋진 작품을 꿈꾸던 친구들을 만나 짧은 여행을 떠났다. 지나가 버려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냥 내게 주어진 것 같았던 습관 같은 남편과 아들도 아예 없었던 거처럼, 20살의 나 그대로 서 있었다. 온전한 나 하나 만으로서 친구들과의 시간들은 끝없는 이야기와 웃음과 순수함 그것만으로도 긴 세월 훨훨 날려 버리며, 문듯 눈가의 주름도 흰머리도 세상의 아픔들도 구름처럼 사라져 버렸다. 혼자 오래 살고 있는, 몸이 좋지 않은, 세상의 화려함을 잃어버린 누군가는 있었지만, 너무도아름다운 하나하나의 친구들 - 모두가 떠나는 마지막 날, 보내야 하는 언제 다시 만나 이렇게 같이 있을까 싶은 서운함에 눈물부터 흘러내리며 껴안고 또 껴안았다. 오래전 이미 나에게서 떠나 버렸다고 아예 마음의 빗장 속에 닫아 두었던 젊음의 청춘이 순식간에 왔다 다시 사라진다고 느꼈었기에, 더 서운하고 더 붙잡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 자신도 완벽히 잊어버렸든 옛날의 나를 기억해주며, 나의 모자람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많은 실수들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오롯이 잊고 있었던 옛날의내가 다시 나타나,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잘 살고 있다고 머리 쓰다듬어도 주었다. 예전의 내가 있었었기에 지금 이 순간, 땅에 단단히 다리를 딛고 서있는 것이고, 그때의 그 아픔과 기쁨과 실수로 다져졌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그래, 떠나 버렸다고 믿었던 청춘의 다시 만남도 헤어짐도 그저 내 마음 안에서 느끼고 있었던 것이지, 그것은 없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던 것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든 부끄럼 없는 나를 위해 더 머리 숙이며 살라고 가르쳐 주었다.
2015-06-02 탁월한 선택
요즈음 세계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재앙'이라는 단어가 속출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사건과 상황을 설명하는 표현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달포 전인 4월에 이어 5월에는 네팔에서의 격렬한 지진발생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소식에 우리 모두는 서늘한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8월에는 우리의 고장인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 6.0 규모의 지진으로 샌프란시스코 일대 100만 명이 강한 진동을 느낌과 동시에 세계 최대 와인산지인 나파 벨리 지역이 크게 파손되었던 아픔을 기억합니다. 게다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곳 캘리포니아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물 전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지구의 지각변동과 밤 사이에 일어나는 예기치 않는 사고등으로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불안하다 못해 무서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도 시급한 이 때에 나는 무엇인가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불의한 사고를 대비하여 미리 마음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일이지요. 구체적으로 그 날을 예비한 구급 약품과 양식을 저축해 놓는 일입니다. 몸의 단백질 섭취와 열량을 위해 비프저키를 비롯한 미숫가루, 초콜릿과 쿠키, 그리고 신변의 보호를 위해 호루라기와 마스크, 손전등과 겨울 옷가지 등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식수는 아예 여러 박스 비축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 사료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챙겨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여차하면 준비된 배낭을 짊어지고 달음질할 태세로 현관문 옆에 항상 대기해 놓았습니다. 좀 창피하긴 하지만 행여 샤워 중일 때나 변기에 앉아 있을때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궁리를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전투태세를 완벽하게 끝내고 있는 나에게 지인 한 분이 스마트 폰으로 카톡 한 개를 보내왔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나에게 이야기 하기' 글 중의 일부입니다. '너무 잘하려 하지 말라 하네. 이미 살고 있음이 이긴 것이므로.(중략)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 하네. 천천히 가도 얼마든지 먼저 도착할 수 있으므로. 죽도록 온 존재로 사랑하라 하네. 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는 사랑하기 위함이므로. 향나무는 자기를 찍은 도끼에도 향을 묻힌다네요' 이 짧은글 몇 소절이 아침햇살처럼 내 마음에 쏟아져 스며들었습니다. '빚'이라는 글 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빛'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단단히 꾸렸던 짐을 미련 없이 풀어 놓습니다. 용케 살아 남아 미안해 하는 것보다 아직 턱 없이 못다 베푼 사랑, 죽을 힘 다해 퍼주고는 잘 죽을까 합니다. 수필가 에스터 최
요즈음 세계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재앙'이라는 단어가 속출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사건과 상황을 설명하는 표현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달포 전인 4월에 이어 5월에는 네팔에서의 격렬한 지진발생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소식에 우리 모두는 서늘한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8월에는 우리의 고장인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 6.0 규모의 지진으로 샌프란시스코 일대 100만 명이 강한 진동을 느낌과 동시에 세계 최대 와인산지인 나파 벨리 지역이 크게 파손되었던 아픔을 기억합니다. 게다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곳 캘리포니아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물 전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지구의 지각변동과 밤 사이에 일어나는 예기치 않는 사고등으로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불안하다 못해 무서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도 시급한 이 때에 나는 무엇인가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불의한 사고를 대비하여 미리 마음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일이지요. 구체적으로 그 날을 예비한 구급 약품과 양식을 저축해 놓는 일입니다. 몸의 단백질 섭취와 열량을 위해 비프저키를 비롯한 미숫가루, 초콜릿과 쿠키, 그리고 신변의 보호를 위해 호루라기와 마스크, 손전등과 겨울 옷가지 등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식수는 아예 여러 박스 비축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 사료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챙겨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여차하면 준비된 배낭을 짊어지고 달음질할 태세로 현관문 옆에 항상 대기해 놓았습니다. 좀 창피하긴 하지만 행여 샤워 중일 때나 변기에 앉아 있을때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궁리를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전투태세를 완벽하게 끝내고 있는 나에게 지인 한 분이 스마트 폰으로 카톡 한 개를 보내왔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나에게 이야기 하기' 글 중의 일부입니다. '너무 잘하려 하지 말라 하네. 이미 살고 있음이 이긴 것이므로.(중략)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 하네. 천천히 가도 얼마든지 먼저 도착할 수 있으므로. 죽도록 온 존재로 사랑하라 하네. 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는 사랑하기 위함이므로. 향나무는 자기를 찍은 도끼에도 향을 묻힌다네요' 이 짧은글 몇 소절이 아침햇살처럼 내 마음에 쏟아져 스며들었습니다. '빚'이라는 글 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빛'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단단히 꾸렸던 짐을 미련 없이 풀어 놓습니다. 용케 살아 남아 미안해 하는 것보다 아직 턱 없이 못다 베푼 사랑, 죽을 힘 다해 퍼주고는 잘 죽을까 합니다. 수필가 에스터 최
2015-06-01 선생님께
[샌프란시스코 한국 문학인 협회]에서 매달 읽는 책 덕분에 지적인 풍요를 누리는 삶입니다. 더구나 지난달에 읽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뇌리를 파고들어 선생님의 뜻대로 모두 필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절절한 아름다움은 전신에 전류가 되어 흐르면서, 저도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문학을 당신의 운명이라고 말씀하시는 우리들의 선생님, 선생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문학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문학은 곧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웃을, 사회를, 국가를, 나아가서는 인류를 사랑하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고요. 선생님, 저는 사회나 국가, 인류까지는 몰라도 나 자신과 이웃만이라도 진지하게 사랑할 수 있는 작가이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립니다. 선생님,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프란츠 쿠사버 카푸스]에게 쓴 편지에는 "나는 글을 꼭 써야 한다" 는 답이 나오면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산달이 되도록 가슴속에 잉태하였다가 분만하라고. 모든 인상과 느낌의 모든 싹이 완전히 자체속에서, 어둠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속에서, 무의식 속에서, 우리 자신의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 속에서 완성에 이르도록 내버려두라고, 그러고 나서 깊은 겸손과 인내심을 갖고 새로운 명료함이 탄생하는 시간을 기다리라고, 이것만이 예술가답게 사는 것이라는. 그리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시간을 헤아리는 일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여기서는 1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심지어 10년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릇 예술가라고 하는 존재는 세지도 헤아리지도 않아야 한다고요. 나무처럼 성장해 하는 존재. 수액을 재촉하지도 않고 봄 폭풍의 한가운데에 의연하게 서서 혹시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여름은 오니까. 여름은 마치 자신들 앞에 영원의 시간이 놓여 있는 듯 아무 걱정도 없이 그리고 여유 있게 기다리는 참을성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다고. 인내가 모든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 릴케는 또 말합니다.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당신의 성장을 기뻐하라고요. 또 말합니다. 꼭 필요한 것은 위대한 내면의 고독뿐이라고. 선생님, 10통의 길지 않은 편지들이었지만 남은 생을 두고 두고 읽고 또 읽고 싶은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을 권해주신 선생님, 어버이날이있고 스승의 날이 있는 이 계절에 감격과 환희로 감사의 글을 끝냅니다. 감사합니다.
[샌프란시스코 한국 문학인 협회]에서 매달 읽는 책 덕분에 지적인 풍요를 누리는 삶입니다. 더구나 지난달에 읽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뇌리를 파고들어 선생님의 뜻대로 모두 필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절절한 아름다움은 전신에 전류가 되어 흐르면서, 저도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문학을 당신의 운명이라고 말씀하시는 우리들의 선생님, 선생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문학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문학은 곧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웃을, 사회를, 국가를, 나아가서는 인류를 사랑하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고요. 선생님, 저는 사회나 국가, 인류까지는 몰라도 나 자신과 이웃만이라도 진지하게 사랑할 수 있는 작가이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립니다. 선생님,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프란츠 쿠사버 카푸스]에게 쓴 편지에는 "나는 글을 꼭 써야 한다" 는 답이 나오면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산달이 되도록 가슴속에 잉태하였다가 분만하라고. 모든 인상과 느낌의 모든 싹이 완전히 자체속에서, 어둠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속에서, 무의식 속에서, 우리 자신의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 속에서 완성에 이르도록 내버려두라고, 그러고 나서 깊은 겸손과 인내심을 갖고 새로운 명료함이 탄생하는 시간을 기다리라고, 이것만이 예술가답게 사는 것이라는. 그리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시간을 헤아리는 일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여기서는 1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심지어 10년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릇 예술가라고 하는 존재는 세지도 헤아리지도 않아야 한다고요. 나무처럼 성장해 하는 존재. 수액을 재촉하지도 않고 봄 폭풍의 한가운데에 의연하게 서서 혹시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여름은 오니까. 여름은 마치 자신들 앞에 영원의 시간이 놓여 있는 듯 아무 걱정도 없이 그리고 여유 있게 기다리는 참을성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다고. 인내가 모든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 릴케는 또 말합니다.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당신의 성장을 기뻐하라고요. 또 말합니다. 꼭 필요한 것은 위대한 내면의 고독뿐이라고. 선생님, 10통의 길지 않은 편지들이었지만 남은 생을 두고 두고 읽고 또 읽고 싶은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을 권해주신 선생님, 어버이날이있고 스승의 날이 있는 이 계절에 감격과 환희로 감사의 글을 끝냅니다. 감사합니다.
2015-05-05 어머니 날 즈음에
산그늘의 봄 서인숙 산은 제 모습을 모른다. 모르는 아픔이 있다. 화창한 봄날 산은 제 모습을 호수를 향해 던졌다 호수는 기다린 듯 물결을 치솟다 잠잠하게 산을 감싸 안았다 나무 우거진 숲 속은 원시이듯 맨살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수목의 언어들이 피워 오른 물의 영토 산은 황홀한 웃음을 터뜨리다 노을 쏟아 낸다. 해는 산을 넘었다. 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80대의 엄마가 쓰신, 격려의 시 한편 . 가슴속에 쏴 하는 아픔이 내게로 던져진다. 산다는 것은, 나이의 딱 그 숫자만큼 아팠다가 나았다가 하며 만들어진 나이테처럼, 굳은살로 무거워진 무게만큼 아팠다는 것이리라. 내가 지독히도 좋아했었고 또 그보다 더 미워하고 싫어하는 바로 위 핏줄의 연결인 엄마의, 내려다보는 사랑인 것이다. 난 아직도 버둥거리며 거추장스러워하며 그 사랑에 힘들어하지만, 내가 넘을 수 없는 절대적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산은 제 모습을 모른다고 하신다. 모르는 아픔이 있다고 하신 거처럼 나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많이 아프고 더 모자라고 그래서 영원한 자식인 것이다. 언제쯤 나도 당신처럼 될 수 있고, 당신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면서 - 모르는 자식이 아닌 조금은 알아주는 자식으로- 노을을 쏟아내며, 당신의 자랑스러움이 될 수 있을지...
산그늘의 봄 서인숙 산은 제 모습을 모른다. 모르는 아픔이 있다. 화창한 봄날 산은 제 모습을 호수를 향해 던졌다 호수는 기다린 듯 물결을 치솟다 잠잠하게 산을 감싸 안았다 나무 우거진 숲 속은 원시이듯 맨살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수목의 언어들이 피워 오른 물의 영토 산은 황홀한 웃음을 터뜨리다 노을 쏟아 낸다. 해는 산을 넘었다. 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80대의 엄마가 쓰신, 격려의 시 한편 . 가슴속에 쏴 하는 아픔이 내게로 던져진다. 산다는 것은, 나이의 딱 그 숫자만큼 아팠다가 나았다가 하며 만들어진 나이테처럼, 굳은살로 무거워진 무게만큼 아팠다는 것이리라. 내가 지독히도 좋아했었고 또 그보다 더 미워하고 싫어하는 바로 위 핏줄의 연결인 엄마의, 내려다보는 사랑인 것이다. 난 아직도 버둥거리며 거추장스러워하며 그 사랑에 힘들어하지만, 내가 넘을 수 없는 절대적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산은 제 모습을 모른다고 하신다. 모르는 아픔이 있다고 하신 거처럼 나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많이 아프고 더 모자라고 그래서 영원한 자식인 것이다. 언제쯤 나도 당신처럼 될 수 있고, 당신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면서 - 모르는 자식이 아닌 조금은 알아주는 자식으로- 노을을 쏟아내며, 당신의 자랑스러움이 될 수 있을지...
2015-05-01 폼생폼사
그 얘기를 전해 듣는 순간부터 멀쩡하던 배가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위장이 울렁거려 입맛까지 싹 달아났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살맛도 없어졌습니다. 콩 심은 곳에 콩 나고 팥 싶은데 팥이 나련만 좁쌀 알을 심었을 그녀가 어찌하여 품지도 않은 황금알을 독차지 했는지 불거진 내 심통은 영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그녀와 이웃사촌으로 지내온 지 어언 15년, 먼 형제보다 가까운 이웃이 백 번 낫다는 말대로 서로간에 속내 다 털어 보이며 살아온 관계인 것 같은데 그녀에게 찾아온 뜻밖의 횡재가 왜 나를 이토록 괴롭게 하는지 그것이 더 환장할 노릇입니다. 이 참에 말이야 바른 말인데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한 날부터 나는 실상 많은 것을 베풀었습니다. 알뜰하다 못해 짠순이인 그녀에게 밥값은 물론 영화, 여행, 쇼핑 등 만날 때마다 지불되는 돈은 거의 제 차지였습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이민의 땅에서 뛰고 달리며 달러를 벌어 생존하기는 그녀나 나나 도토리 키 재기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내 처지가 상대보다는 조금은 숨 돌릴 수 있다는 배려로 나는 매번 쿨 하게 행동했지요. 그럴 때마다 미안해진 친구가 종종 내게 던진말은 " 고마워, 언젠가 내가 잘 되면 그 땐 너에게 비단방석 깔아 줄께. 호호호.." 그런데 정말 그녀에게 대박이 터졌습니다. CNA(간호보조사)로 일하는 그녀에겐 유달리 가깝게 지내던 환자가 있었는데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소유하고 있던 당신의 집과 재산을 몽땅 이 친구에게 넘겨 준 것입니다. 버젓이 당신 자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동양 아줌마한테 송두리째 그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 준, 코 크고 눈 파란 이 나라 사람의 본심을 이해하기란 너무나 버겁습니다. 하여튼 그녀는 쓰나미보다 더 무섭다는 렌트비 내는 날짜에 떨지 않아도 되고, 주행 중 자동차가 허락 없이 정차하는 일에 당혹해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빵과 우유를 사기 위해 달려가던 원 달러($1) 가게의 출입을 졸업했으며, 'Good will' 스토아에서 중고품 옷과 신발을 고르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도 완전히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백조로 변신한 친구에게 눈을 맞추며 당연히 화문석 호화로운 비단 방석에 앉혀 주겠거니 고대하던 나는 몇 날 안되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갑자기 거부가 된 그녀가 이곳 저곳에서 들이 내미는 손이 못내 부담스러웠던지 잠수함을 타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그렇지, 나마저 버려두고 가다니... 참으로 치사한 친구입니다. 그 날 이후 절반 이상을 살아온 내 삶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남들처럼 이렇다 할 배경이 없는 나는 은근슬쩍 튀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매주 한 번, 일확 천금을 꿈꾸며 로토를 사들인 날 수를 합하면 강산이 두 번 변했을 테고, 박수 받기 위해 주머니를 털어 선행을 주도한 일은 열 손가락이 넘습니다. 어떻게든 무대에 올라서서 주인공이 되어 찬사를 받고 싶기만 한 나! 하늘은 여전히 폼.생.폼.사 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향해 꾸짖어 말합니다. "이 철없는 것아, 세상 이치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여"
그 얘기를 전해 듣는 순간부터 멀쩡하던 배가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위장이 울렁거려 입맛까지 싹 달아났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살맛도 없어졌습니다. 콩 심은 곳에 콩 나고 팥 싶은데 팥이 나련만 좁쌀 알을 심었을 그녀가 어찌하여 품지도 않은 황금알을 독차지 했는지 불거진 내 심통은 영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그녀와 이웃사촌으로 지내온 지 어언 15년, 먼 형제보다 가까운 이웃이 백 번 낫다는 말대로 서로간에 속내 다 털어 보이며 살아온 관계인 것 같은데 그녀에게 찾아온 뜻밖의 횡재가 왜 나를 이토록 괴롭게 하는지 그것이 더 환장할 노릇입니다. 이 참에 말이야 바른 말인데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한 날부터 나는 실상 많은 것을 베풀었습니다. 알뜰하다 못해 짠순이인 그녀에게 밥값은 물론 영화, 여행, 쇼핑 등 만날 때마다 지불되는 돈은 거의 제 차지였습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이민의 땅에서 뛰고 달리며 달러를 벌어 생존하기는 그녀나 나나 도토리 키 재기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내 처지가 상대보다는 조금은 숨 돌릴 수 있다는 배려로 나는 매번 쿨 하게 행동했지요. 그럴 때마다 미안해진 친구가 종종 내게 던진말은 " 고마워, 언젠가 내가 잘 되면 그 땐 너에게 비단방석 깔아 줄께. 호호호.." 그런데 정말 그녀에게 대박이 터졌습니다. CNA(간호보조사)로 일하는 그녀에겐 유달리 가깝게 지내던 환자가 있었는데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소유하고 있던 당신의 집과 재산을 몽땅 이 친구에게 넘겨 준 것입니다. 버젓이 당신 자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동양 아줌마한테 송두리째 그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 준, 코 크고 눈 파란 이 나라 사람의 본심을 이해하기란 너무나 버겁습니다. 하여튼 그녀는 쓰나미보다 더 무섭다는 렌트비 내는 날짜에 떨지 않아도 되고, 주행 중 자동차가 허락 없이 정차하는 일에 당혹해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빵과 우유를 사기 위해 달려가던 원 달러($1) 가게의 출입을 졸업했으며, 'Good will' 스토아에서 중고품 옷과 신발을 고르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도 완전히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백조로 변신한 친구에게 눈을 맞추며 당연히 화문석 호화로운 비단 방석에 앉혀 주겠거니 고대하던 나는 몇 날 안되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갑자기 거부가 된 그녀가 이곳 저곳에서 들이 내미는 손이 못내 부담스러웠던지 잠수함을 타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그렇지, 나마저 버려두고 가다니... 참으로 치사한 친구입니다. 그 날 이후 절반 이상을 살아온 내 삶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남들처럼 이렇다 할 배경이 없는 나는 은근슬쩍 튀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매주 한 번, 일확 천금을 꿈꾸며 로토를 사들인 날 수를 합하면 강산이 두 번 변했을 테고, 박수 받기 위해 주머니를 털어 선행을 주도한 일은 열 손가락이 넘습니다. 어떻게든 무대에 올라서서 주인공이 되어 찬사를 받고 싶기만 한 나! 하늘은 여전히 폼.생.폼.사 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향해 꾸짖어 말합니다. "이 철없는 것아, 세상 이치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여"
2015-04-04 에스터 최의 행복한 쉼터 : 닭 대가리
이른 아침 누군가가 문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잠이 덜 깬 실눈으로 현관문을 열자 뜻밖에 옆집 남자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순간 너무 당황하여 문을 쾅 하고 닫아 버렸습니다. 그리곤 아차 싶어 다시 문을 열자 그 남자는 몹시 화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습니다." your car door is open" '이 새벽에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람' 나는 눈을 껌벅이며 잠시 멍청해졌습니다. 그러나 몇 초 후 사태를 감지한 나는 한 걸음에 자동차를 파킹해 놓은 곳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이런 젠장 …'자동차 안은 직격탄을 맞은 것보다 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기분 정말 꽝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한번은 공원 주차장에서, 또 한번은 다른동네 주택가에서, 그리고 이번엔 우리집 파킹장에 버젓이 주차해 놓은 안전지대에서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동차에 손을 댄 녀석이 어떤 놈인지 나타나만 봐라. 그냥 단 한 번에 이단 옆차기로 날려 버리리라' 열을 품어내다가 나는 금새 맥이 쭉 빠져버렸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신 경찰나리의 말씀이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정황으로 비추어 볼 때 내가 자동차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가 닭 대가리란 말인가?' 위로는 고사하고 건망증으로 치부하는 경찰의 태도에 기분이 더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실은 마음이 꺼림직하긴 했습니다. 평소 자동차 문조차 잘 닫지 않고 내려 배터리가 나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그건 그렇고 나의 재산목록 1호인 자동차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은 옆집 남자가 우리집을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몇 년 동안 이웃으로 살면서도 얼굴 마주하여 그 흔한 'How are you?' 인사 한번 나눈 적이 없었기에 그의 돌출 행동이 고맙기 보다는 겁이 났습니다. 혼자 사는 그 남자는 밝은 대낮엔 집에 잠적해 있다가 캄캄한 밤에만 밖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끔 한밤중에는 괴성을 지르곤 해서 종종 경찰이 다녀가기도 하고 누군가가 그를 방문해 올 때도 남자의 큰 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여튼 알수 없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바로 내 옆 집에 살고 있다는 것에 나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면으로 그의 얼굴을 대한 오늘아침, 웬일인지 그의 푸른 눈이 하루 종일 아른거렸습니다. 그렇게 맑고 깊은 눈은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야심한 밤에 울부짖곤하던 그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아름다운 눈 속엔 어떤 비밀이 숨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저녁 평소대로 황혼이 지기 전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건너편에 살고 있는 수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함께 걸으며 오늘의 빅뉴스인 자동차 사건을 얘기 하면서 옆집 남자의 공헌담까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수잔이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참으로 안됐어. 그 젊은 양반, 이라크 전쟁에서 너무 큰 쇼크를 받아 정신이 반은 나갔다지? 참으로 보기 드문 성실하고 착한 마이클이었는데 말야. 속히 그 전쟁의 아픔을 잊어야 할 텐데..." 수잔의 말을 듣고 있는 내 마음이 송곳에 찔린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마이클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다가왔습니다. 적군에게는 악마였으나 아군에게는 영웅이었던 남자, 공식적으로 160명을 비공식적으로는 255명을 저격 사살한 미해군 전설의 저격수 '크리스카일'처럼 삶과 죽음을 넘나 들었던 또 다른 실화의 주인공이 바로 내 이웃, 옆 집 남자였습니다. 나는 고민합니다. 전쟁에서 밀려나 수호신의 그림자가 되어 이웃을 지켜주고 있는 그의 고독을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기도합니다. 몇 번이고 자동차를 털리게 한 '닭 대가리'인 나처럼 그도 전쟁 속 파편의 기억들일랑은 깡그리 잊어버리는 또 다른 '닭 대가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른 아침 누군가가 문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잠이 덜 깬 실눈으로 현관문을 열자 뜻밖에 옆집 남자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순간 너무 당황하여 문을 쾅 하고 닫아 버렸습니다. 그리곤 아차 싶어 다시 문을 열자 그 남자는 몹시 화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습니다." your car door is open" '이 새벽에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람' 나는 눈을 껌벅이며 잠시 멍청해졌습니다. 그러나 몇 초 후 사태를 감지한 나는 한 걸음에 자동차를 파킹해 놓은 곳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이런 젠장 …'자동차 안은 직격탄을 맞은 것보다 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기분 정말 꽝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한번은 공원 주차장에서, 또 한번은 다른동네 주택가에서, 그리고 이번엔 우리집 파킹장에 버젓이 주차해 놓은 안전지대에서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동차에 손을 댄 녀석이 어떤 놈인지 나타나만 봐라. 그냥 단 한 번에 이단 옆차기로 날려 버리리라' 열을 품어내다가 나는 금새 맥이 쭉 빠져버렸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신 경찰나리의 말씀이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정황으로 비추어 볼 때 내가 자동차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가 닭 대가리란 말인가?' 위로는 고사하고 건망증으로 치부하는 경찰의 태도에 기분이 더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실은 마음이 꺼림직하긴 했습니다. 평소 자동차 문조차 잘 닫지 않고 내려 배터리가 나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그건 그렇고 나의 재산목록 1호인 자동차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은 옆집 남자가 우리집을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몇 년 동안 이웃으로 살면서도 얼굴 마주하여 그 흔한 'How are you?' 인사 한번 나눈 적이 없었기에 그의 돌출 행동이 고맙기 보다는 겁이 났습니다. 혼자 사는 그 남자는 밝은 대낮엔 집에 잠적해 있다가 캄캄한 밤에만 밖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끔 한밤중에는 괴성을 지르곤 해서 종종 경찰이 다녀가기도 하고 누군가가 그를 방문해 올 때도 남자의 큰 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여튼 알수 없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바로 내 옆 집에 살고 있다는 것에 나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면으로 그의 얼굴을 대한 오늘아침, 웬일인지 그의 푸른 눈이 하루 종일 아른거렸습니다. 그렇게 맑고 깊은 눈은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야심한 밤에 울부짖곤하던 그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아름다운 눈 속엔 어떤 비밀이 숨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저녁 평소대로 황혼이 지기 전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건너편에 살고 있는 수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함께 걸으며 오늘의 빅뉴스인 자동차 사건을 얘기 하면서 옆집 남자의 공헌담까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수잔이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참으로 안됐어. 그 젊은 양반, 이라크 전쟁에서 너무 큰 쇼크를 받아 정신이 반은 나갔다지? 참으로 보기 드문 성실하고 착한 마이클이었는데 말야. 속히 그 전쟁의 아픔을 잊어야 할 텐데..." 수잔의 말을 듣고 있는 내 마음이 송곳에 찔린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마이클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다가왔습니다. 적군에게는 악마였으나 아군에게는 영웅이었던 남자, 공식적으로 160명을 비공식적으로는 255명을 저격 사살한 미해군 전설의 저격수 '크리스카일'처럼 삶과 죽음을 넘나 들었던 또 다른 실화의 주인공이 바로 내 이웃, 옆 집 남자였습니다. 나는 고민합니다. 전쟁에서 밀려나 수호신의 그림자가 되어 이웃을 지켜주고 있는 그의 고독을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기도합니다. 몇 번이고 자동차를 털리게 한 '닭 대가리'인 나처럼 그도 전쟁 속 파편의 기억들일랑은 깡그리 잊어버리는 또 다른 '닭 대가리'였으면 좋겠습니다.
2015-04-01 2014년 노벨문학상 작가 패트릭 모디아노의 '지평'을 읽고서
지평의 뜻부터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생기는 선으로 보이는 풍경이라는 뜻이다. 무엇과 무엇이 만났었고 또 누구와 누구가 만났다고 하여 생기는 것 - 관계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2차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의 혼란과 가치관의 상실속에서 시작된, 관계의 지독한 상실속에서 외롭다 못해 처절한 청춘의 남녀가 지하철 앞에서 만난다. 무엇인지 제대로 된 공포의 실체도 모르는 체 도망 다니는 20살 남짓의 여자와, 인간관계의 첫 시작인 부모로부터의 학대에 숨어다니고 있는 남자의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랑 이야기다. 그런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과 미래라는 거대한 계획은 갑자기 타인에 의한 작은 일에 뽑히면서 이별은 시작되었고, 그관계들은 어느덧 긴 기억의 창고에 갇혀 버린다. 40년 후의 남자는 오랜 시간 상실되었던 기억 속의 파편들을 작은 수첩에 적어 가면서 다시 그 여행 - 관계는 시작되고, 작은 단어 하나와 이름의 첫 글자 하나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불빛처럼 떠오르면서, 잊고 있었다는 끝나지 않은 그 사랑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요즈음의 나 자신도 문득 떠오르는 단어들이, 생각지도 않았든 이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들었던 웃음소리까지 기억나게 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이름은 잊었지만 작은 노래 속의 한 구절이 오래전에 있었든 사랑의 흉터 자리를 다시 가려워 긁게 하고, 미움 속에 헤어졌든 어디에선가 분명히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친구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어디에서부터 기억들이 지워져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많은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은 마치 밤 기차 속 여행처럼, 누구는 다음 종착지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서 눈빛 한번 없이 씩씩하게 내렸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은 체마지못해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바라보며 떠났을 것이다. 사랑하면 내 곁에 남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내게 남겨 놓았던 그 만남 - 관계는 아직도 이곳에 사는 내 기억과 심장과 살갗 밑에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며 그 또한 바로 내가 만든 나 자신인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타고 있는 이밤 기차는 누군가를 태우고 또 누군가는 내려놓으면서도, 쉼 없이 오늘도 만남을 만들어 가면서 지금도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평의 뜻부터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생기는 선으로 보이는 풍경이라는 뜻이다. 무엇과 무엇이 만났었고 또 누구와 누구가 만났다고 하여 생기는 것 - 관계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2차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의 혼란과 가치관의 상실속에서 시작된, 관계의 지독한 상실속에서 외롭다 못해 처절한 청춘의 남녀가 지하철 앞에서 만난다. 무엇인지 제대로 된 공포의 실체도 모르는 체 도망 다니는 20살 남짓의 여자와, 인간관계의 첫 시작인 부모로부터의 학대에 숨어다니고 있는 남자의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랑 이야기다. 그런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과 미래라는 거대한 계획은 갑자기 타인에 의한 작은 일에 뽑히면서 이별은 시작되었고, 그관계들은 어느덧 긴 기억의 창고에 갇혀 버린다. 40년 후의 남자는 오랜 시간 상실되었던 기억 속의 파편들을 작은 수첩에 적어 가면서 다시 그 여행 - 관계는 시작되고, 작은 단어 하나와 이름의 첫 글자 하나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불빛처럼 떠오르면서, 잊고 있었다는 끝나지 않은 그 사랑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요즈음의 나 자신도 문득 떠오르는 단어들이, 생각지도 않았든 이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들었던 웃음소리까지 기억나게 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이름은 잊었지만 작은 노래 속의 한 구절이 오래전에 있었든 사랑의 흉터 자리를 다시 가려워 긁게 하고, 미움 속에 헤어졌든 어디에선가 분명히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친구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어디에서부터 기억들이 지워져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많은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은 마치 밤 기차 속 여행처럼, 누구는 다음 종착지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서 눈빛 한번 없이 씩씩하게 내렸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은 체마지못해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바라보며 떠났을 것이다. 사랑하면 내 곁에 남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내게 남겨 놓았던 그 만남 - 관계는 아직도 이곳에 사는 내 기억과 심장과 살갗 밑에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며 그 또한 바로 내가 만든 나 자신인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타고 있는 이밤 기차는 누군가를 태우고 또 누군가는 내려놓으면서도, 쉼 없이 오늘도 만남을 만들어 가면서 지금도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15-03-01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며
얼마만큼이 나의 몫일까 인생에서,,,,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한참을 울었다.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책임을 위해 희생하며 온갖 힘든 일을 하다, 나이들어 뒤돌아 보든 어느 날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께 이야기한다. 당신이 등뒤에 매어 주신 - 나의 몫에 온 힘을 다했다고 응석 부리며, 참으로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나자신의 감정까지 덧붙여서 제대로 이입하며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게도 분명히 버티며 지켜가며 최선을 다해야 하는 나만의 몫인 인생이 있을 것이다. 혹 아직도 그 몫이 무엇인지 제대로 찾지도 못한 체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조바심내지만, 아마 지금의 오늘 이 자리가 진정 나의 몫이라고 여기고 싶다. 귀찮고 힘들어도, 그만두고서 숨고 싶어도, 끝까지 묵묵히 천천히 진심으로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내게 주어진 몫을 다하였다며 자랑하게 될 거라 믿고 싶다. 그 어떤 다른 선택보다 당신이 주신 그 길이 옳았다고 자신하면서. 그래, 얼마만큼이 나의 몫인지 모르겠지만, 떠나야 하는 그 어느날. 그동안의 많은 일 과장하며,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끝냈다며 마음껏 응석 부릴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얼마만큼이 나의 몫일까 인생에서,,,,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한참을 울었다.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책임을 위해 희생하며 온갖 힘든 일을 하다, 나이들어 뒤돌아 보든 어느 날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께 이야기한다. 당신이 등뒤에 매어 주신 - 나의 몫에 온 힘을 다했다고 응석 부리며, 참으로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나자신의 감정까지 덧붙여서 제대로 이입하며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게도 분명히 버티며 지켜가며 최선을 다해야 하는 나만의 몫인 인생이 있을 것이다. 혹 아직도 그 몫이 무엇인지 제대로 찾지도 못한 체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조바심내지만, 아마 지금의 오늘 이 자리가 진정 나의 몫이라고 여기고 싶다. 귀찮고 힘들어도, 그만두고서 숨고 싶어도, 끝까지 묵묵히 천천히 진심으로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내게 주어진 몫을 다하였다며 자랑하게 될 거라 믿고 싶다. 그 어떤 다른 선택보다 당신이 주신 그 길이 옳았다고 자신하면서. 그래, 얼마만큼이 나의 몫인지 모르겠지만, 떠나야 하는 그 어느날. 그동안의 많은 일 과장하며,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끝냈다며 마음껏 응석 부릴 수 있으면 더 좋겠다.
2015-02-08 깨어 있음에
모두가 깨어 있으라고들 한다. 더 많이 느끼고 더 성장하고 더욱더 제대로 사람처럼 잘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깨어 있음으로써 느끼게 되는 하루하루의 기쁨이 과연 우리는 얼마나 감사히 받아 드리고 있을까. 눈 뜨는 일과의 시작에서부터 눈을 감는 하루의 끝자락 사이,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이 신체의 기능부터 모든 것이 당연한 듯 그냥 스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얼마나 무심하게, 무감각하게 이 많은 소중한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감사하고 있을까. 진정으로 깨어 있어 느끼는 삶은 감사의 연속임을. 비록 모순과 역설과 이율배반이 인간 인식일지라도, 또한 고통이 제2의 축복이라는 신앙적 관점이 아니라도, 이 모든 것은 삶의 부분임을 깨달으며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삶은 살아 있는 자체가 은총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기에 느끼는 삶이 너무도 귀함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느끼게 된다. 이렇게 깨어 있어 느끼는 삶은 나에게 더욱 더 가족과 친지의 귀중함을, 삶의 아름다움을 뇌리와 가슴에 젖어들게 한다.
모두가 깨어 있으라고들 한다. 더 많이 느끼고 더 성장하고 더욱더 제대로 사람처럼 잘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깨어 있음으로써 느끼게 되는 하루하루의 기쁨이 과연 우리는 얼마나 감사히 받아 드리고 있을까. 눈 뜨는 일과의 시작에서부터 눈을 감는 하루의 끝자락 사이,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이 신체의 기능부터 모든 것이 당연한 듯 그냥 스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얼마나 무심하게, 무감각하게 이 많은 소중한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감사하고 있을까. 진정으로 깨어 있어 느끼는 삶은 감사의 연속임을. 비록 모순과 역설과 이율배반이 인간 인식일지라도, 또한 고통이 제2의 축복이라는 신앙적 관점이 아니라도, 이 모든 것은 삶의 부분임을 깨달으며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삶은 살아 있는 자체가 은총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기에 느끼는 삶이 너무도 귀함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느끼게 된다. 이렇게 깨어 있어 느끼는 삶은 나에게 더욱 더 가족과 친지의 귀중함을, 삶의 아름다움을 뇌리와 가슴에 젖어들게 한다.
2015-01-05 흐르는 세월 앞에서
세월여류(歲月如流 ) 라고 했던가요. 참으로 세월은 빨리도 흘러가고 있네요. 일부러라도 시간을 세지 않으려 무심한 듯 봄의 꽃 비도 맞았었고, 끝날 것 같지 않았든 여름의 뜨거움도 좋아하려 했었고, 가을의 진홍색 감들이 이미 익어 농해가는 것도 모른 척하며 일부러 열매를 따지도 않았는데도 결국 차가운 겨울비와 함께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새로운 숫자를 바꾼 체 환한 모습으로 새해는 왔습니다. 무엇을 하였으며 또 무엇을 따로 하여야 한다는 압박감은 가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른 시간은 나를 재촉하며 등을 떠미네요. 마음 밭에 서성이면서 작은 무어라도 하나 키우고 싶어 책상 앞에 앉아 봅니다만, 금세 허리도 다리도 저려 그만 바깥의 소리와 냄새와 재미있는 딴 짓거리로 마음이 팔려 멍하니 있습니다. 아무려면, 맛 나는 거 먹으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거보다 신 나고 재미있고 행복한 일이 어디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혼자 있음 마음속 구석 자리의 바람 소리가 싫어 얼른 다시 책상 앞으로 다가갑니다. 내심 좋아서 즐기면서 하여야지 하며 진정 주인인 척 여유 부려 보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갈 때도 있네요. 그래도 다 내려놓고서 즐기렵니다 그래야 나의 여유가 오히려 거름이 되어 더 단단한 열매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같은 정열을 가진것도 아니고 예술을 위해 피나는 고통의 순간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만, 하고 싶다는 간절함만은 미처 파 보지 못한 우물 속의 물처럼 오랫동안 흐르고 있었고 언제나 내게 목마름의 갈증을 적셔 주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끝을 맺는 마침표를 아주아주 한참 뒤에 찍는다 해도 늦지 않을 것이며 이 모든 게 바로 나의 것, 나의 몫으로 허락된 것이라 믿으렵니다. 그리고 수 없는 날들이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하여도, 마냥 시간만 세며 초조해하는 거 보다 이제는 이토록 빨리 흐르는 세월을 아끼면서 작은 열매일지라도 단단하게 새롭게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그냥 저절로 시간이 가면 되는 것이 아닌 - 진정 새로운 것이 영글어졌으면 합니다.
세월여류(歲月如流 ) 라고 했던가요. 참으로 세월은 빨리도 흘러가고 있네요. 일부러라도 시간을 세지 않으려 무심한 듯 봄의 꽃 비도 맞았었고, 끝날 것 같지 않았든 여름의 뜨거움도 좋아하려 했었고, 가을의 진홍색 감들이 이미 익어 농해가는 것도 모른 척하며 일부러 열매를 따지도 않았는데도 결국 차가운 겨울비와 함께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새로운 숫자를 바꾼 체 환한 모습으로 새해는 왔습니다. 무엇을 하였으며 또 무엇을 따로 하여야 한다는 압박감은 가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른 시간은 나를 재촉하며 등을 떠미네요. 마음 밭에 서성이면서 작은 무어라도 하나 키우고 싶어 책상 앞에 앉아 봅니다만, 금세 허리도 다리도 저려 그만 바깥의 소리와 냄새와 재미있는 딴 짓거리로 마음이 팔려 멍하니 있습니다. 아무려면, 맛 나는 거 먹으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거보다 신 나고 재미있고 행복한 일이 어디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혼자 있음 마음속 구석 자리의 바람 소리가 싫어 얼른 다시 책상 앞으로 다가갑니다. 내심 좋아서 즐기면서 하여야지 하며 진정 주인인 척 여유 부려 보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갈 때도 있네요. 그래도 다 내려놓고서 즐기렵니다 그래야 나의 여유가 오히려 거름이 되어 더 단단한 열매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같은 정열을 가진것도 아니고 예술을 위해 피나는 고통의 순간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만, 하고 싶다는 간절함만은 미처 파 보지 못한 우물 속의 물처럼 오랫동안 흐르고 있었고 언제나 내게 목마름의 갈증을 적셔 주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끝을 맺는 마침표를 아주아주 한참 뒤에 찍는다 해도 늦지 않을 것이며 이 모든 게 바로 나의 것, 나의 몫으로 허락된 것이라 믿으렵니다. 그리고 수 없는 날들이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하여도, 마냥 시간만 세며 초조해하는 거 보다 이제는 이토록 빨리 흐르는 세월을 아끼면서 작은 열매일지라도 단단하게 새롭게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그냥 저절로 시간이 가면 되는 것이 아닌 - 진정 새로운 것이 영글어졌으면 합니다.
2014-12-05 그때 그 여행에서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모든 것이 마냥 제자리에 잘 있고 한없이 평화롭고 행복하지만, 지금 있는 여기를 떠나 그냥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어 마음도 몸도 다 간지럽다. 어느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내 깊은 속 안의 감정들이 졸고 있는 것 같고, 이 졸음을 깨우기 위해서는 무언가 해야만 하는 조급함에 휩싸이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래서 서둘러 갈 곳을 정하고 가방을 챙기면서, 떠난다는 짜릿한 바람기를 은근히 즐기며 그날을 기다린다. 오랫동안 꿈꾸어 오든 페루 여행에서의 첫날은 어디서 부는지도 모를 텁텁한 바람의 낯설음과 비릿한 냄새로 시작되었다. 낯선 곳에서의 설레임보다는 아리고 쓰린 이 느낌들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며 첫날 잠을 설쳤다. 새로운 것을 보는 기쁨과 처음인 곳에서의 들뜬 가벼움이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다 가라앉은 체 무게에 무게를 더하면서, 잉카의 모습들은 차라리 애처로웠다. 거대한 돌덩이들을 높은 산꼭대기까지 움직여 하나하나 조각을 하고, 그 목적인 삶의 영원한 지속을 위해 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딛고서 이룩한 선조들의 후예인 지금의 그들은, 아직도 체 별로 가진 것 없는 가난의 얼굴들이었다. 차라리 소리쳐 온 세계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상상을 초월한 조상의 유물들을 보여주며 살아가면 지금보다 나으리 리만, 그들은 묵묵히 지금의 가진 그것만으로도 신비하리만큼 아픔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과거 조상들의 욕심으로 남겨진 웅장한 모습과 미래의 알지 못하는 금빛의 오아시스를 꿈꾸는 거 보담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더없이 익숙한 오늘이 더 편하고 행복한 거라는 걸 깨닫고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허름한 옷차림에 머리엔 꽃 하나 꼽고 등 뒤에 작은 애기 업고서, 한 손 가득 꽃나무가지를 들고 미소 지으며 가다 눈빛으로 마주친 낯선 땅의 그녀에게서, 난 내 슬픔의 뒤집힘이 무엇이었으며 또 가끔 내가 왜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욕심이었다....... 살던 곳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곳에서의 도망 -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의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서라 깨닫는다. 있던 곳을 낯선 먼곳에서, 마음으로 다시 만나보고 만져주며 사랑한다고 해주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나의 익숙한 모습을 바라보다, 황급히 목마른 모습으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긴 편한 잠으로 한참을 안도한다. 떠난다는 이유가 싫어서 미워져서가 아니라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믿으면서, 어디로 가야 또 나를 새로이 만날수 있을지 상상하며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까만 밤을 뒤척인다.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모든 것이 마냥 제자리에 잘 있고 한없이 평화롭고 행복하지만, 지금 있는 여기를 떠나 그냥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어 마음도 몸도 다 간지럽다. 어느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내 깊은 속 안의 감정들이 졸고 있는 것 같고, 이 졸음을 깨우기 위해서는 무언가 해야만 하는 조급함에 휩싸이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래서 서둘러 갈 곳을 정하고 가방을 챙기면서, 떠난다는 짜릿한 바람기를 은근히 즐기며 그날을 기다린다. 오랫동안 꿈꾸어 오든 페루 여행에서의 첫날은 어디서 부는지도 모를 텁텁한 바람의 낯설음과 비릿한 냄새로 시작되었다. 낯선 곳에서의 설레임보다는 아리고 쓰린 이 느낌들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며 첫날 잠을 설쳤다. 새로운 것을 보는 기쁨과 처음인 곳에서의 들뜬 가벼움이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다 가라앉은 체 무게에 무게를 더하면서, 잉카의 모습들은 차라리 애처로웠다. 거대한 돌덩이들을 높은 산꼭대기까지 움직여 하나하나 조각을 하고, 그 목적인 삶의 영원한 지속을 위해 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딛고서 이룩한 선조들의 후예인 지금의 그들은, 아직도 체 별로 가진 것 없는 가난의 얼굴들이었다. 차라리 소리쳐 온 세계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상상을 초월한 조상의 유물들을 보여주며 살아가면 지금보다 나으리 리만, 그들은 묵묵히 지금의 가진 그것만으로도 신비하리만큼 아픔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과거 조상들의 욕심으로 남겨진 웅장한 모습과 미래의 알지 못하는 금빛의 오아시스를 꿈꾸는 거 보담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더없이 익숙한 오늘이 더 편하고 행복한 거라는 걸 깨닫고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허름한 옷차림에 머리엔 꽃 하나 꼽고 등 뒤에 작은 애기 업고서, 한 손 가득 꽃나무가지를 들고 미소 지으며 가다 눈빛으로 마주친 낯선 땅의 그녀에게서, 난 내 슬픔의 뒤집힘이 무엇이었으며 또 가끔 내가 왜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욕심이었다....... 살던 곳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곳에서의 도망 -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의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서라 깨닫는다. 있던 곳을 낯선 먼곳에서, 마음으로 다시 만나보고 만져주며 사랑한다고 해주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나의 익숙한 모습을 바라보다, 황급히 목마른 모습으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긴 편한 잠으로 한참을 안도한다. 떠난다는 이유가 싫어서 미워져서가 아니라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믿으면서, 어디로 가야 또 나를 새로이 만날수 있을지 상상하며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까만 밤을 뒤척인다.
2014-11-07 입동 유감(立冬 有感) …입동 유언 (立冬 遺言)
태양과 초록이 짙은 여름을 건너 결실과 베품의 가을이 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 가을은 ‘가을인가’ 하고 창을 열면 벌써 입동(立冬)이 찾아듭니다. 입동은 겨울이 들어서는 날이라는 뜻으로 절기상 이날부터 겨울의 시작점이 됩니다. 입춘, 입하, 입추와 같은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4립의 하나로 양력으로는 11월 7~8일로 겨울채비를 하기 시작하며 대표적인 겨울 준비가 김장입니다. 인생을 봄,여름 ,가을 ,겨울 4계절로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꽃처럼 젊음이 만발하는 유년과 학창시절을 지나 이성에도 눈을 뜨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태어나서 20살까지 피어나는 봄을 느낍니다. 가정을 이루고 성공을 위해 힘껏 달음박질 하며 자신감과 패기와 욕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30,40대가 여름으로 활개를 칩니다. 한여름 더위처럼 욕심이 한풀 꺽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인생의 절정이랄 수 있는 50,60대로 그간의 삶에 대한 결실을 접하게 됩니다. 그간 뜨거운 더위와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아 자식들이 결혼해 떠나갈 때 열매와 함께 잎새마저 다 털어내고 김장을 준비하는 노후 생활 처럼 겨울 나기를 준비하는70,80대가 겨울로 시렵습니다. 이민 생활을 살아가며 가을에서 입동을 맞는 인생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힘있게 뿌리 내린 나무처럼 정신적 유산을 유업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노랗고 발알갛게 단풍으로 물드는 꿈결같은 여정으로 입동의 추위가 찾아들기 전에 따뜻한 겨울 채비로 여유로운 노후도 설계합니다. 특히 가을이 깊어가면서 가을의 나이로 깊어지는 사람들이 장례 컨설팅과 유언장 준비로 찾아드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연소득 7만달러 미만인 사람중에 유언장을 가진자가 절반인데 비해 그보다 고소득자인 경우는 65%가 유언장을 준비했다는 갤럽 여론 조사입니다. 유언을 남겼는지 여부는 사망일로부터 대개 30일 안에 밝혀야 하며 샌프란시스코 거주자가 서울에 출장갔다가 변을 당했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의 거주지 주소인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상속이 집행되어야 합니다. 유언은 18세 이상의 성년으로서 정신상태가 건강하고 자신의 재산상태나 가족관계에 관한 건전하고 일반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남길 수 있습니다. 유언장은 사후 유언의 내용에 시비를 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증인2명이 서명한 유언장을 남기는게 좋고 만일을 대비하여 법조인이나 은행 혹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그 사본을 맡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유언이 국가에 보고되고 반드시 공식기록이 남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 등을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달갑지가 않습니다. 또한 유언의 작성 및 집행은 재산이 있는 곳에서 가능하며 유언의 집행 시간도 1~2년가량 소요될 뿐 아니라 상당한 금액의 변호사 비용도 따라 옵니다.. 장례식에 시신을 앞에 두고 유언의 내용을 둘러싸고 자식들 혹은 친척 사이에 다툼이 생기는 상황을 많이 보게 되는데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처럼 사후에 집행되는 유언이라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유언에 의한 재산상속시 배우자는 면세가 되지만 남은 배우자도 사망시에는 그 몫이 자식들에게 상속되어 60만 달러가 넘는 부분에 대해 연방정부에 상당한 세금을 납부해야 됩니다. 특히 이유 없이 부모의 유언으로부터 제외되었다거나 유언의 내용이 자신에게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누구든지 유언의 내용에 대해 이의 (contest)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유언자가 치매상태에서 유언장을 작성했거나 유언에 '지나친 간섭' 흑은 '부당한 압박’등의 증거를 확보해 타인의 영향이 가해진 경우라던지 증인의 서명,공증이 없는 유언장에 대해 상속에 불만이 있는자등은 이의 제기를 하곤 합니다. 또한 유언이 두 개 이상 작성되었을 경우에는 시기적으로 최근 것이 유효하고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유효한 유언으로 해석됩니다. 현재는 이런 유언장의 이의 제기,상속세등 문제점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60만 달러 이상의 주택이나 재산을 가진 입동의 시기로 접어든 많은 분들이 김장을 담구듯 노후대책-겨울 나기 준비책, 유언의 대안으로 '리빙 트러스트'를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풍성한 가을되시고 따뜻한 겨울나기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이 목적이지 법률적인 조언이 아니므로 단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김병오 공인 법무사,내일 장례 컨설턴트 Tel (408)688-1416 E-mail:dkimlegal@gmail.com
태양과 초록이 짙은 여름을 건너 결실과 베품의 가을이 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 가을은 ‘가을인가’ 하고 창을 열면 벌써 입동(立冬)이 찾아듭니다. 입동은 겨울이 들어서는 날이라는 뜻으로 절기상 이날부터 겨울의 시작점이 됩니다. 입춘, 입하, 입추와 같은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4립의 하나로 양력으로는 11월 7~8일로 겨울채비를 하기 시작하며 대표적인 겨울 준비가 김장입니다. 인생을 봄,여름 ,가을 ,겨울 4계절로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꽃처럼 젊음이 만발하는 유년과 학창시절을 지나 이성에도 눈을 뜨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태어나서 20살까지 피어나는 봄을 느낍니다. 가정을 이루고 성공을 위해 힘껏 달음박질 하며 자신감과 패기와 욕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30,40대가 여름으로 활개를 칩니다. 한여름 더위처럼 욕심이 한풀 꺽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인생의 절정이랄 수 있는 50,60대로 그간의 삶에 대한 결실을 접하게 됩니다. 그간 뜨거운 더위와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아 자식들이 결혼해 떠나갈 때 열매와 함께 잎새마저 다 털어내고 김장을 준비하는 노후 생활 처럼 겨울 나기를 준비하는70,80대가 겨울로 시렵습니다. 이민 생활을 살아가며 가을에서 입동을 맞는 인생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힘있게 뿌리 내린 나무처럼 정신적 유산을 유업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노랗고 발알갛게 단풍으로 물드는 꿈결같은 여정으로 입동의 추위가 찾아들기 전에 따뜻한 겨울 채비로 여유로운 노후도 설계합니다. 특히 가을이 깊어가면서 가을의 나이로 깊어지는 사람들이 장례 컨설팅과 유언장 준비로 찾아드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연소득 7만달러 미만인 사람중에 유언장을 가진자가 절반인데 비해 그보다 고소득자인 경우는 65%가 유언장을 준비했다는 갤럽 여론 조사입니다. 유언을 남겼는지 여부는 사망일로부터 대개 30일 안에 밝혀야 하며 샌프란시스코 거주자가 서울에 출장갔다가 변을 당했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의 거주지 주소인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상속이 집행되어야 합니다. 유언은 18세 이상의 성년으로서 정신상태가 건강하고 자신의 재산상태나 가족관계에 관한 건전하고 일반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남길 수 있습니다. 유언장은 사후 유언의 내용에 시비를 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증인2명이 서명한 유언장을 남기는게 좋고 만일을 대비하여 법조인이나 은행 혹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그 사본을 맡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유언이 국가에 보고되고 반드시 공식기록이 남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 등을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달갑지가 않습니다. 또한 유언의 작성 및 집행은 재산이 있는 곳에서 가능하며 유언의 집행 시간도 1~2년가량 소요될 뿐 아니라 상당한 금액의 변호사 비용도 따라 옵니다.. 장례식에 시신을 앞에 두고 유언의 내용을 둘러싸고 자식들 혹은 친척 사이에 다툼이 생기는 상황을 많이 보게 되는데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처럼 사후에 집행되는 유언이라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유언에 의한 재산상속시 배우자는 면세가 되지만 남은 배우자도 사망시에는 그 몫이 자식들에게 상속되어 60만 달러가 넘는 부분에 대해 연방정부에 상당한 세금을 납부해야 됩니다. 특히 이유 없이 부모의 유언으로부터 제외되었다거나 유언의 내용이 자신에게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누구든지 유언의 내용에 대해 이의 (contest)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유언자가 치매상태에서 유언장을 작성했거나 유언에 '지나친 간섭' 흑은 '부당한 압박’등의 증거를 확보해 타인의 영향이 가해진 경우라던지 증인의 서명,공증이 없는 유언장에 대해 상속에 불만이 있는자등은 이의 제기를 하곤 합니다. 또한 유언이 두 개 이상 작성되었을 경우에는 시기적으로 최근 것이 유효하고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유효한 유언으로 해석됩니다. 현재는 이런 유언장의 이의 제기,상속세등 문제점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60만 달러 이상의 주택이나 재산을 가진 입동의 시기로 접어든 많은 분들이 김장을 담구듯 노후대책-겨울 나기 준비책, 유언의 대안으로 '리빙 트러스트'를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풍성한 가을되시고 따뜻한 겨울나기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이 목적이지 법률적인 조언이 아니므로 단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김병오 공인 법무사,내일 장례 컨설턴트 Tel (408)688-1416 E-mail:dkimlegal@gmail.com
2014-11-05 포도원에서 진행되는 결혼식
태양의 열기는 해 질 무렵인데도 뜨거웠다. 이 뜨거운 여름날, 한껏 차려입고 초대에 응한 나는 높은 하이힐의 고통도 잊은 채 그저 눈물이 흐름을 막을 길 없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랑으로 포화되어 있는 그 곳에서, 내 가슴의 한켠에서 일고 있는 아련한 파도 - 화려한 꽃들 위로, 눈부신 자리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지나간 나의 청춘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힘들지도 슬프지 않았는데도, 진실로 행복하고 마냥 꿈같이 흘러간 시간들이었다고 말할 수가 없음이리라. 무모했고 소중함도 감사할 줄도 몰랐기에 그저 뜨거운 청춘으로 아팠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 화려한 순간들이 지난 후의 빈자리가 내 눈앞에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나는 애써 이 모든 영상을 지워 버리며, 이 아름다운 한 쌍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둘이서 함께 가야만 하는 날들의 오랜 여정을 생각하며, 온 마음으로 축복해 주었고 꼭 행복해야 한다고 힘껏 품어 주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상상해 보았다. 누가 내게 다시 그 시절의 그 나이로 되돌아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았다. 젊음의 온갖 반짝이는 아름다움에도, 돌아가고 쉽지는 않았다. 그 때의 의미 없는 방황과 청춘의 허비와 무지...비록 그 하나하나가 내 뼈와 살 속으로 스며들어 오늘의 나를 이룩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로부터, 나로 인해 만들어진 지금의 모자람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감사할 수 있는 세월의 무게에 행복을 느끼는 시점에 와 있기에. 하여, 손안의 작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간 내 젊은 시절을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삶의 세찬 바람까지를 품을 수 있는 오늘의 여유와 나날이 둥그러져 가는 삶을 가슴으로 나누며 영위하는 이 시간을 축복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모든 인연들이 더욱 더 소중해지며 또 다시 눈물이 흘렀다. 조금 전 태양의 열기 안에서, 그 포도원의 결혼식장에서 흘린 눈물과는 아주 아주 다른 색감의 눈물이...
태양의 열기는 해 질 무렵인데도 뜨거웠다. 이 뜨거운 여름날, 한껏 차려입고 초대에 응한 나는 높은 하이힐의 고통도 잊은 채 그저 눈물이 흐름을 막을 길 없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랑으로 포화되어 있는 그 곳에서, 내 가슴의 한켠에서 일고 있는 아련한 파도 - 화려한 꽃들 위로, 눈부신 자리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지나간 나의 청춘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힘들지도 슬프지 않았는데도, 진실로 행복하고 마냥 꿈같이 흘러간 시간들이었다고 말할 수가 없음이리라. 무모했고 소중함도 감사할 줄도 몰랐기에 그저 뜨거운 청춘으로 아팠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 화려한 순간들이 지난 후의 빈자리가 내 눈앞에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나는 애써 이 모든 영상을 지워 버리며, 이 아름다운 한 쌍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둘이서 함께 가야만 하는 날들의 오랜 여정을 생각하며, 온 마음으로 축복해 주었고 꼭 행복해야 한다고 힘껏 품어 주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상상해 보았다. 누가 내게 다시 그 시절의 그 나이로 되돌아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았다. 젊음의 온갖 반짝이는 아름다움에도, 돌아가고 쉽지는 않았다. 그 때의 의미 없는 방황과 청춘의 허비와 무지...비록 그 하나하나가 내 뼈와 살 속으로 스며들어 오늘의 나를 이룩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로부터, 나로 인해 만들어진 지금의 모자람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감사할 수 있는 세월의 무게에 행복을 느끼는 시점에 와 있기에. 하여, 손안의 작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간 내 젊은 시절을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삶의 세찬 바람까지를 품을 수 있는 오늘의 여유와 나날이 둥그러져 가는 삶을 가슴으로 나누며 영위하는 이 시간을 축복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모든 인연들이 더욱 더 소중해지며 또 다시 눈물이 흘렀다. 조금 전 태양의 열기 안에서, 그 포도원의 결혼식장에서 흘린 눈물과는 아주 아주 다른 색감의 눈물이...
2014-10-05 자화상
4번째 자화상을 그리려 거울 앞에 앉았다. 몇 번의 숫자, 그 변화의 번호가 무심코 내가 살아온 세월의 모습 - 그 하나하나의 의미로 매겨진다. 20대 사랑을 시작하고서 그렸든 제일 처음의 것은, 눈도 코도 얼굴도 다 날아다니고 있다. 그만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랑에 취해 떠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삶의 두려움을 몰라 억지의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모습이다. 두 번째의 것은 온 얼굴의 근육들이 제대로 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체, 산다는 것의 도전에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면서 살던 때의 모습이다. 뭘 그리 눈에 불을 켜고서 살았을까 싶지만 내가 봐도 싫다. 욕심과 오기가 얼굴 밑에 놓여져서 거울 속에서도 바로 제대로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자화상은 세월도 흘렀고 모든 것이 편안해졌지만, 여전히 힘세어 보이고 억세다.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른 채, 아직도 자신을 편안히 껴안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네 번째의 얼굴을 그리고자 다시 캔버스 옆 거울 앞에 앉지만, 이제는 두렵다. 지금까지 그렸던 자화상들이 바로 내가 살아온 흔적들이 그대로 보이고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그리는 나의 모습은, 하나의 물체로서 그냥 나라는 것을 내려두고 바로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일부러 포장하지도 않고 얼굴에 새겨진 것들 - 그 속안의 것들인 세월의 자국까지 그린다는 것이다. 바로 나를 드러내어 스스로를 씻어내고 깨끗해지는 고해의 순간처럼 - 잘못된 그때를 기억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약속으로 매김 하는 고백인 것이다. 무언가를 들어내지 않고서는 남아있는 공간을 만들 수 없듯이, 나를 드러내고 자리를 비워두지 않고서는 진정한 것이 나올 수 없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배워간다. 그냥 내가 지니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보여지는 자화상을 그리는 작업의 숫자는, 얼마나 오래 만들어질런지는 모르지만 계속하고 싶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되리라고 믿으면서. 네 번째 나의 자화상 얼굴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표현되어지고 나타나, 또 다시 나를 뒤돌아 보게 하면서, 언제 마지막 내 이름으로 마무리가 될런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는 정말 예쁘고 우아하고 멋지고 아주 환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를 기대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 이 거울 앞에 앉는다.
4번째 자화상을 그리려 거울 앞에 앉았다. 몇 번의 숫자, 그 변화의 번호가 무심코 내가 살아온 세월의 모습 - 그 하나하나의 의미로 매겨진다. 20대 사랑을 시작하고서 그렸든 제일 처음의 것은, 눈도 코도 얼굴도 다 날아다니고 있다. 그만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랑에 취해 떠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삶의 두려움을 몰라 억지의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모습이다. 두 번째의 것은 온 얼굴의 근육들이 제대로 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체, 산다는 것의 도전에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면서 살던 때의 모습이다. 뭘 그리 눈에 불을 켜고서 살았을까 싶지만 내가 봐도 싫다. 욕심과 오기가 얼굴 밑에 놓여져서 거울 속에서도 바로 제대로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자화상은 세월도 흘렀고 모든 것이 편안해졌지만, 여전히 힘세어 보이고 억세다.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른 채, 아직도 자신을 편안히 껴안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네 번째의 얼굴을 그리고자 다시 캔버스 옆 거울 앞에 앉지만, 이제는 두렵다. 지금까지 그렸던 자화상들이 바로 내가 살아온 흔적들이 그대로 보이고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그리는 나의 모습은, 하나의 물체로서 그냥 나라는 것을 내려두고 바로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일부러 포장하지도 않고 얼굴에 새겨진 것들 - 그 속안의 것들인 세월의 자국까지 그린다는 것이다. 바로 나를 드러내어 스스로를 씻어내고 깨끗해지는 고해의 순간처럼 - 잘못된 그때를 기억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약속으로 매김 하는 고백인 것이다. 무언가를 들어내지 않고서는 남아있는 공간을 만들 수 없듯이, 나를 드러내고 자리를 비워두지 않고서는 진정한 것이 나올 수 없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배워간다. 그냥 내가 지니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보여지는 자화상을 그리는 작업의 숫자는, 얼마나 오래 만들어질런지는 모르지만 계속하고 싶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되리라고 믿으면서. 네 번째 나의 자화상 얼굴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표현되어지고 나타나, 또 다시 나를 뒤돌아 보게 하면서, 언제 마지막 내 이름으로 마무리가 될런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는 정말 예쁘고 우아하고 멋지고 아주 환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를 기대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 이 거울 앞에 앉는다.
2014-09-01 가보지 않은 길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 유명한 노벨 수상자인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고 한다. 난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마냥 시간을 제멋대로 넘쳐 흘러가게만 하고 있는 것일까? 익숙하지 않은 낯설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편안하지 않다는 것 때문에, 아니 게으름 때문일 거다.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맞게 온갖 핑계로 덧칠하며 살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더 이상의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 나이로 되돌아와 버렸다. 생각해보면 매일매일 맞이하는 아침의 날도 가보지 않은 새 길이지만, 그 오늘은 새롭고 불편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하루를 다시 시작하며 오늘은 더 잘하려 애써 보는 것이다. 하루가 잘 못 된다고 일 년 내내, 평생을 잘못되게 살지 않듯이 그냥 부딪혀서 가보는 것이고, 망설임보다는 작지만 따뜻한 자신을 향한 격려를, 용기를 주면서 가보고 싶다. 일상의 먹고 자고 또 생활해야 하는 기본인 숨 쉬는 것의 - 살아간다는 것을 해결하고 나면, 무언지는 모르는 그 헛헛한 목마름에 한 밤을 뒤척이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 왜 살고 있고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의 벽에 부딪혀, 뜻하지 않은 후회의 눈물도 자책과 함께. 그냥 이렇게 마냥 살아야 한다는 것에만 매달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스스로 이루어가고 지켜야 하는 그런 삶의 길이 꼭 있을 거라는 늦은 자각이다. 새로 맞이하는 오늘이 두렵지 않듯이, 그래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무서워 말고 가 보는 거다. 어쩌면 길을 잃고 헤매는 날이 오더라도 그냥 맨땅에 주저 앉아 울면서 후회하는 날이 있을지라도 가보는 것이다. 모르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넘어져 무릎에 생채기가 날 때도 있고 엉뚱한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것이 행운이 되어 또 다른 뜻밖의 길을 찾게 되고 또 다른 신비한 만남도 생기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잘 가든 길만 걸어가면서 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대로 습관처럼 살다가 가고 싶지 않다. 미처 가보지 않은 또 다른 길이 바로 내가 가야 하는 운명이 될지도 모르니까. 머뭇거리지 말고 씩씩하게 걸어가 보자. 그래도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흉내는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 유명한 노벨 수상자인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고 한다. 난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마냥 시간을 제멋대로 넘쳐 흘러가게만 하고 있는 것일까? 익숙하지 않은 낯설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편안하지 않다는 것 때문에, 아니 게으름 때문일 거다.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맞게 온갖 핑계로 덧칠하며 살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더 이상의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 나이로 되돌아와 버렸다. 생각해보면 매일매일 맞이하는 아침의 날도 가보지 않은 새 길이지만, 그 오늘은 새롭고 불편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하루를 다시 시작하며 오늘은 더 잘하려 애써 보는 것이다. 하루가 잘 못 된다고 일 년 내내, 평생을 잘못되게 살지 않듯이 그냥 부딪혀서 가보는 것이고, 망설임보다는 작지만 따뜻한 자신을 향한 격려를, 용기를 주면서 가보고 싶다. 일상의 먹고 자고 또 생활해야 하는 기본인 숨 쉬는 것의 - 살아간다는 것을 해결하고 나면, 무언지는 모르는 그 헛헛한 목마름에 한 밤을 뒤척이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 왜 살고 있고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의 벽에 부딪혀, 뜻하지 않은 후회의 눈물도 자책과 함께. 그냥 이렇게 마냥 살아야 한다는 것에만 매달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스스로 이루어가고 지켜야 하는 그런 삶의 길이 꼭 있을 거라는 늦은 자각이다. 새로 맞이하는 오늘이 두렵지 않듯이, 그래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무서워 말고 가 보는 거다. 어쩌면 길을 잃고 헤매는 날이 오더라도 그냥 맨땅에 주저 앉아 울면서 후회하는 날이 있을지라도 가보는 것이다. 모르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넘어져 무릎에 생채기가 날 때도 있고 엉뚱한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것이 행운이 되어 또 다른 뜻밖의 길을 찾게 되고 또 다른 신비한 만남도 생기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잘 가든 길만 걸어가면서 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대로 습관처럼 살다가 가고 싶지 않다. 미처 가보지 않은 또 다른 길이 바로 내가 가야 하는 운명이 될지도 모르니까. 머뭇거리지 말고 씩씩하게 걸어가 보자. 그래도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흉내는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2014-08-01 희망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져 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한발자욱, 꿈을 위해 가고 있는 날들을 만나면서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이랍니다. 작은 것이지만 모아지고 합쳐져서 끝내 크게 될 거라는 그런 희망인 거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엄마의 책상 위 글귀는 스피노자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였습니다. 남자 같은 필체로 커다랗게 매년 새로이 써여지는 그 글은, 너무도 뚜렷이 내 안에 박혀 있어 도저히 빼낼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꼭 해야만 하는 일에 매달리셨는지, 기억 속의 엄마는 노란 임신복의 한여름의 더위에서도 기다란 땀을 흘리며 책상 위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계셨거든요. 엄마로서의 삶보다 자신을 위한 희망이 너무도 강해, 부러져 버릴까 어린 마음에도 내내 두려웠던 엄마였는데, 지금은 바로 내가 불현듯 그런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 오랜 세월 책상 앞에 엎드려 글을 쓰든 엄마가 꿈을 이루어 아름다운 시인이 되고, 아직도 책상 앞 컴퓨터에서 희망을 잃지 말라는 글들을 저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저녁 때의 밥상을 기다리고 있든 저희들보다 더 소중했었느냐고 차마 물어보지도 못한 체입니다만, 어느새 저도 감히 희망을 아니 꿈을 품고서 그 사과나무를 심고자 빨간 태양의 치열한 뜨거움도 파란 한밤의 바늘같은 냉철함도 예리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상 밖의 일에 서툴러 수 없는 실수와 부끄러움과 턱없이 모자라는 능력에 낯 뜨거워, 기둥 속의 기둥 뒤에 숨어서 그냥 있든 곳으로 되돌아가는 게 나을지 후회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밤의 나약한 나를 뻔뻔한 낮의 강함으로 숨겨주곤 합니다. 굳이 오지 않는 내일을 위해 무어 그리 기운 쏟고 있느냐는 철없던 시절의 저의 의문도, 이제는 스스로가 답을 찾을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의 마지막이 온다고 하더라도 비록 세월의 흉터가 움푹 파여진 땅일지라도, 희망을 심으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주어진 것들을 허비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하루가 쌓이고 모아져서 크게 사람다워질 거라고 믿을 겁니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Santa Clara county Art Fair에서 2년 대상과 장려상 수상 개인전 개최 2009년 "Butterfly - 나비 그 흔적들" - Aegis Gallery, Saratoga 현재 Aegis Gallery of Fine Art Gallery 회원으로 작품 활동 중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져 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한발자욱, 꿈을 위해 가고 있는 날들을 만나면서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이랍니다. 작은 것이지만 모아지고 합쳐져서 끝내 크게 될 거라는 그런 희망인 거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엄마의 책상 위 글귀는 스피노자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였습니다. 남자 같은 필체로 커다랗게 매년 새로이 써여지는 그 글은, 너무도 뚜렷이 내 안에 박혀 있어 도저히 빼낼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꼭 해야만 하는 일에 매달리셨는지, 기억 속의 엄마는 노란 임신복의 한여름의 더위에서도 기다란 땀을 흘리며 책상 위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계셨거든요. 엄마로서의 삶보다 자신을 위한 희망이 너무도 강해, 부러져 버릴까 어린 마음에도 내내 두려웠던 엄마였는데, 지금은 바로 내가 불현듯 그런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 오랜 세월 책상 앞에 엎드려 글을 쓰든 엄마가 꿈을 이루어 아름다운 시인이 되고, 아직도 책상 앞 컴퓨터에서 희망을 잃지 말라는 글들을 저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저녁 때의 밥상을 기다리고 있든 저희들보다 더 소중했었느냐고 차마 물어보지도 못한 체입니다만, 어느새 저도 감히 희망을 아니 꿈을 품고서 그 사과나무를 심고자 빨간 태양의 치열한 뜨거움도 파란 한밤의 바늘같은 냉철함도 예리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상 밖의 일에 서툴러 수 없는 실수와 부끄러움과 턱없이 모자라는 능력에 낯 뜨거워, 기둥 속의 기둥 뒤에 숨어서 그냥 있든 곳으로 되돌아가는 게 나을지 후회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밤의 나약한 나를 뻔뻔한 낮의 강함으로 숨겨주곤 합니다. 굳이 오지 않는 내일을 위해 무어 그리 기운 쏟고 있느냐는 철없던 시절의 저의 의문도, 이제는 스스로가 답을 찾을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의 마지막이 온다고 하더라도 비록 세월의 흉터가 움푹 파여진 땅일지라도, 희망을 심으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주어진 것들을 허비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하루가 쌓이고 모아져서 크게 사람다워질 거라고 믿을 겁니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Santa Clara county Art Fair에서 2년 대상과 장려상 수상 개인전 개최 2009년 "Butterfly - 나비 그 흔적들" - Aegis Gallery, Saratoga 현재 Aegis Gallery of Fine Art Gallery 회원으로 작품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