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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03 ] [SF 저널 인터뷰] 신재현 - 샌프란시스코 총 영사

한국 및 북가주 한인 동포들의 위상, 권익 증진을 위해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는 반듯한 외교관

산타클라라 본보 회의실에서 신재현 SF 총영사를 만났다. 훤칠하게 큰 키에 따뜻한 얼굴로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띠며 진지한 태도에 한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 21회를 통해 외교관으로 외교부에 입부해 뉴욕 총영사관 민원실장, 홍콩 총영사관 부총영사, 외교부 인사기획관, 북핵 외교기획 단장과 북미국장등을 두루 역임하며 지난 30년간 한국의 국위선양과 국익만을 생각하며 한치의 나태함없이 정확하고 성실히 그리고 부지런히 노력해왔다.

그는 외조부모님과 어머님을 그의 인생전반에 걸친 주요 멘토로 존경하며 가정을 소중히 여긴다. 신 총영사는 아내의 문화, 예술, 음악, 미술등 다양한 장르에 대한 훌륭한 이해력을 존중하며 또한, 그녀가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며 가정과 자녀들을 잘 보살피고, 매 순간 순간을 즐기며 삶에 여유를 느낄 줄 아는 그녀의 성품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는 자상하고 믿음직한 가장이다. 그는 학창시절 동경했던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외교관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국익과 국민의 번영을 위해 언제나 바른 생각으로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주어진 환경에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는 매 순간이 무척 고맙고 행복하다고 전한다. 그 처럼 바른 정신과 바른 자세로 바른 목표를 향해 항해 해 가는 바른 행동인들이 많아 질 수록 이 세상이 더욱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밝아지리라 믿는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본인 소개 (Self-introduction)

신재현 입니다. 주 SF총영사로 부임한지10개월이 되었습니다. SF 총영사관은 북가주, 콜로라도, 유타, 와이오밍 주와 실질적인 우호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고, 지역 국민과 재외 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가주 지역은 한.미 양국과 양국민을 잇는 가교와 관문 역할을 해 온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며, 도산 안창호 선생, 장인환.전명운 의사등 많은 우리의 선열들이 위기에 처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온 지역이며 현재는 미래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는 실리콘벨리지역이 있기에 한.미 양국간의 미래 지향적 관계 발전에 주요역할을 담당할 것이라 생각하며 이에 더욱 큰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추억 (Memories when young)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얼마 안되어 아버님께서 돌아가셨기에 아버님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항상 어머님과 외조부모님과 아주 가깝게 지냈습니다.

저는 막연히 어릴때 부터 혼자사시는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님께 외 아들로서 효도하고 싶었기에 항상 반듯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매사에 성실하고 부지런 하신 외조부모님과 어머님께서는 학업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말씀하시길 세상에는 많은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들이 있는데 ‘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 하셨습니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외조부모님과 어머님의 존경스러운 인격과 바르고 따뜻한 품성이 제 삶에 큰 특혜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릴때 부터 집안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무조건 맡겨진 일에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고등학교때는 ‘4당 5락’이라는 말이 흔히 돌았는데 ‘4시간 자면 당선되고 5시간자면 떨어진다’를 문자 그대로 믿고 4시간만 수면했던 기억도 납니다. 저희 가족들은 외조부모님으로 부터 모두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저는 평상시에 12시 쯤 잠자리에 들어 아침 5시 30분정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고 계획합니다. 제가 참을성과 절제력, 집중력등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특히 외할머님과 어머님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가정분위기로 인해 저도 저절로 습관화 되면서 좋은 인성을 조금이나마 본 받아온 것 같습니다.

어릴때 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특히 농구, 배구등 구기 종목과 수영등 대부분의 운동 종목을 모두 좋아했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나면 머리도 맑아지고 정신 집중도 잘 되었습니다. 다 방면의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는데, 자연에 관한 책이나 역사책, 위인전등을 즐겨 읽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 보다 책을 통해 수 많은 훌륭한 분들의 생각과 경험과 지혜등을 배우는것이 무척 효과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고등학교까지 고향인 부산에서 살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좋은 조언자들 (Mentors)

제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이끌어주신 분들로는 첫번째로 어머님, 외할머님, 외할아버님 세분입니다. 제가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 울타리가 되어주셨고, 지켜주셨습니다. 정신적으로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모습을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셨고, 이로 인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분 들께서는 삶의 지혜나 인생의 철학등을 수시로 말씀해 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즉, 첫번째로 저의 안전한 환경적인 울타리가 되어주셨고 두번째로 정신적 측면에서 성장하도록 깨우쳐 주셨습니다.

요즘은 30년 동안 저희 가정을 보살피고 자상하게 이끌어준 아내가 무척 고맙고 좋습니다. 여러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사고 방식등에 대해 공감하며 대화를 많이 하며 서로 더욱 이해하고 더 존중하는 마음이 듭니다.

제가 어릴 때 받았던 가정 교육의 모토가 되었던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 중에서 된 사람이 되어라’라는 가정 철학에 제 아내 또한 충분히 공감하고 ‘자신의 상황을 만족할 줄 알아라 본분을 지키고 분수를 알고 다른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라고 저희 자녀들에게 가르쳐주며 아내 스스로도 본이 되는 모습을 볼때 기쁩니다. 저희들은 저희들의 혹은 자녀의 출세나 성공에 대해 혹은, 학업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외교관의 신분상 문화와 언어가 확연히 다른 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새로운 언어를 익혀야 하고 주요한 사람들과 만나 교류하고 문화를 나누며 협력해야 하는데 외교관의 아내들은 외교관 보다 안보이는 곳에서 더욱 많은 일들을 담당하게 되곤 합니다. 특히 UN에서 근무할때는 주말 비상 근무와 야근을 대부분 지속 하게 되었었고, 아프리카 세네갈에 갔을때는 불어권이어서 불어를 익혀야 했으며, 각종 만찬, 리셉션등 각종 공식석상에 부부동반으로 참석을 하며, 어린 자녀들을 키워야 했고, 외교관 부인들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각종 봉사활동에 전념해야 하는등 곁에서 바라볼때 초인적이다 싶을 정도로 저의 아내가 열심히 살아주었습니다.

30년간 아내와 함께 살아오면서 서로 질책이나 핀잔을 준 기억이 없습니다. 이는 제가 야근과 업무로 바쁘고 가정에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내의 품성이 삶을 음미할 줄 알고, 소소한 생활에 감사할 줄 아는 넉넉한 인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회에 나와 일을 해 나가며 만나뵈었던 선배님들 과 훌륭한 주변분들께도 여러가지로 많이 교훈을 얻었고 배웠습니다. 첫번째 공무를 맡았을때 공관장님이셨던 박수길 주 UN대사님, 외교관으로 공직자로서 정말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양성철, 한승주, 홍석현 주미 대사님들도 국가를 위해 개인적 삶을 거의 대부분 희생하시고 진정한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모범적인 분들을 바로 곁에서 모실 수 있었던 것이 제게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외교관이 된 계기 (Motive to become a diplomat)

어릴때 책읽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위인전을 많이 읽었는데 독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 4/1/1815~7/30/1898)재상에 대한 전기가 무척 감명깊었습니다.

보통 비스마르크는 철혈재상으로 거대한 독일의 막강한 힘을 휘둘렀던 분이라고 세상에 인식되고 있는데, 사실 당시 독일은 통합된 힘이 있는 막강한 국가가 아니었었고 당시 ‘프로이센’의 외교관이자 독일을 통일해 독일 제국을 이룩한 비스마르크 재상은 탁월한 외교를 통해 독일이라는 국가를 통합해 독일의 힘을 극대화 시킨 인물이었고 이 분의 전기를 통해 국가 발전을 이룩하도록 돕는 ‘외교’라는 분야에 큰 관심과 동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며 학문을 계속하고 싶은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대학 3학년이 되면서, 홀로 계신 어머님과 주변분들께서 대학 졸업 후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겠냐고 조언들을 주셨고 어린시절 부터 동경해왔던 외교관이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외무고시 공부를 시작한지 2개월 만에 1차에 합격을 하게 되었고, 약 1년여간 열심히 공부해 21차 외무고시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평상시의 삶 (Daily life)

제 삶에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큽니다.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내와 산책하며 대화하고, 함께 음식점에도 가고 합니다. 여건이 되는 한 함께 음악회등에 참석해서 정서적으로 안정과 행복감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간혹 골프를 치냐는 질문들을 많이 하시는데 골프는 별로 칠 기회가 없었습니다.

첫 번째 해외 연수를 나가게 되었을때 영국으로 가게 되었는데 나라에서 월급도 주면서 연수를 시켜주는 것이 고마운 마음에 한국 공무원으로서 성적을 잘 받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성적을 잘 받는 것이 연수의 목적에 충실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골프를 치려면 많은 시간이 들어야 했고, 당시 제 생각에 제가 시작하기에 분수에 넘치는 운동이라 생각했고 골프를 쳐서 얻는 실리 보다는 언어, 문화, 외교,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공부를 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네갈에서 지낼때는 국가에 골프장이 단 한 곳이 있었는데, 골프를 익힐 시간에 불어를 한 문장이라도 더 익혀야 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각자 생각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지만 저는 시간이 날때 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독서하며 공부하며 익히는 것에 더욱 관심이 많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가 어떻게 하면 국력을 신장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다른 국가의 국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좋은 점들을 배우고 국가간의 네트워크 국민간의 네트워크를 증진해 힘을 키워나가면 좋겠습니다. 음악 쪽은 어릴때 바이얼린을 조금 배운 것 정도 인데,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여러 국가의 주요 공직자나 타 국가 공관장들과 음악과 미술에 대해서도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페라나 와인등에 대한 생활의 소소한 것 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면 좋습니다. 제가 부족한 부문에 대해 제 아내가 음악이나 문화 예술 진흥에 더 이해력이 있어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딸과 아들과 대화도 하고 부모가 바라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독려 해 주고 있습니다. 또 저희 가정의 모토, ‘된 사람’으로 살도록 서로 격려하며 분수에 맞게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외교관이 되고 싶은 청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Any advise for young people who want to be a diplomat?)

외교관으로서 기본 임무는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 재외 동포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임을 항상 자각해야 합니다. 즉, 외교관은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잘 맺도록 서로 협력하고 발전하도록 세계 각 지역에서 모국의 문화와 역사 예술등을 전파하고 협력을 꾀하며 민간교류를 활성화 시키고 서로 네트워크를 이룩하고 좋은 우정을 나누는것에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조언을 한다면,첫번째로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화려하거나 멋진 파티만 하는것이 아님을 먼저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전 세계 여러 곳으로 파견이 되는데, 어디로 가게 되든 지 국가를 위한 목적을 달성하는것이 최우선 되어야 합니다. 자신과 가정의 평안하고 화려한 삶을 누리기 보다는 국가의 이익과 공익 증진에 기여하며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분들이 외교관이 되시면 좋을 것 입니다.

특히 특이한 점은 임기를 정해서 2~3년 주기로, 본국과 해외 각 지역으로 옮겨서 생활을 해야 하므로, 외교관 자신 뿐 아니라 아내와 자녀등 모든 가족이 함께 한 마음으로 주기적으로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로는,좋은 일을 하기위해 다른 문화, 역사 다른 인종과 관계를 만들고 좋은 결과를 위해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사회의 사람들, 색 다른 문화 역사등에 대해 쉼 없이 공부해 가며, 따뜻한 이해력과 넓은 포용력으로 발령된 지역의 지역주민들을 감쌀 수 있는 자세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여하한 경우에도 항상 분수를 지키며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한쪽에서만 이득을 볼수가 없다는 진리가 전 세계의 모든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상호 균형을 맞추어 협력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부지런하고 성실한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외교관으로 주어진 일에 충실히 임하다 보면 세상에서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살수 있는 점이 큰 장점 이라고 생각합니다.

북가주 동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Anything to say to Korean-Americans)

총영사관은 동포사회가 있음에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특수한 사회로 연방과 지방 정부의 힘이 균형을 이루며 각각 막강한 지휘권을 발휘합니다. 영사관에서 연방의원들 뿐 아니라 지방 정부 그리고 주요 인물들과 최선을 다해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주요한 점은 우리 한인 동포사회가 그리고 한인들께서 주도적으로 미 연방, 지방 정부, 주요 인물들과 관계를 증진해 나가는 것이 가장 탁월한 방법 입니다.

한인 동포들께서 모국과 또 우리 한인 동포들의 후예들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유권자 등록도 모두 하시고 투표에도 꼭 동참하시는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를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잘 해 오고 있는 유태인 커뮤니티, 그리고 아시안 계에서는 중국인 커뮤니티, 그리고 베트남 커뮤니티에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잘 해오고 있습니다. 우리 한인들도 분명히 더 잘 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인 동포들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하시면서, 거시적인 안목으로 유권자 등록과, 투표에 반드시 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인들의 투표가 한표 두표 모여 한인 후손들의 발전과 입지를 넓혀줌과 동시에 모국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인 동포사회가 정치력 신장에 관심을 갖고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함이 직면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즉, 센서스 참여,유권자 등록, 투표 참여를 꼭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로 인해 동포사회의 역량을 나타낼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 후손이 잘 성장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미 주류정치인들과 여러 유대관계를 맺으시고 한인들의 힘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주요 인물들을 다각도로 돕고 긴밀한 네트워크를 키워나갈 것을 적극 장려합니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각종 선출직에 투표를 해주고, 자원봉사와 재원을 지원하면서 서로 네트워크를 강화해 나가며 우의를 나누고 서로 필요한 도움을 주고 받으며 동반 성장해 나갑니다. 동포사회가 힘을 키워 나가며, 한인사회에서 차세대 지도자가 나와서 한인동포를 다각도로 대변할 수 있게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 동포사회에서 인재가 나왔을 때는 너나 할것 없이 최선을 다해 밀어주며, 좋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 주고, 지지기반을 확보할수 있도록 한 마음으로 단결해 나가면 아주 큰 힘을 발휘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북가주에는 특별히 초창기때 부터 좋은 분들과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어 왔기에 더욱 역량과 잠재력이 원대 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인 동포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기대합니다.

저와 저희 총영사관 직원들은 신속.정확.친절한 민원 봉사에 만전을 기하고, 국가와 국민, 한인 동포여러분들의 안전및 권익보호와 신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북가주 여러분들의 애정어린 관심과 건설적인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SF 저널 인터뷰] - 샌프란시스코 총 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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